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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인문학기행] 독일, 열네 번째 이야기

백조가 사는 곳, 슈방가우

오준엽 기자입력 : 2019.06.09 18:12:52 | 수정 : 2019.06.09 18:13:00

8시에 숙소를 나설 무렵 다행히 비가 멎는다. 이날 첫 번째 일정은 어제 지나온 퓌센 방향으로 이동해 슈반가우(Schwangau) 인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과 호엔슈반가우 성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 어제 분위기가 좋은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 묵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날 퓌센 지역에서 동급의 숙소가 동이 났기 때문에 인근에서 대체숙소를 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슈반가우로 가는 길에 만난 집은 샬레양식의 통나무집으로 알프스 지역의 전통가옥이다. 처마가 길게 돌출돼있고, 크고 넓은 창문과 예쁘게 장식된 발코니 등이 특징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집들은 나무로 발코니를 내는 샬레(chalet) 양식으로 알프스 지역의 전통가옥이라고 했다. 샬레(chalet)라는 단어는 스위스 서부와 프랑스의 사보이 지방 등에서 사용되던 프랑코-프로방스방언(Franco-Provençal 또는 Arpitan)에서 온 것으로 목동들이 쓰던 오두막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휴가철에만 사용하는 별장의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크고 넓은 창문과 발코니가 특징인 샬레 양식의 주택은 통상 돌로 된 기초 위에 통나무로 지은 2층집을 말한다. 지붕의 경사가 완만해 처마가 돌출돼있다. 18세기 스위스와 독일에서 장식적 요소가 더해져 유명해졌기 때문에 스위스 샬레 양식이라고도 한다. 

마을을 벗어난 버스는 가파르게 서 있는 산들 사이의 좁은 계곡을 따라 구절양장(九折羊腸)처럼 돌아드는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금세 방향을 바꿔야 할 정도로 도로가 감아드는데도 기사는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나보다. 좌석 앞에 있는 작은 탁자 위에 물건을 올려놓을 수 없을 정도로 차가 흔들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국경을 나타내는 표지 [사진=Wikipedia]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서 오늘 첫 일정인 호헨슈방가우(Hohenschwangau)로 가려면 어제 온 길을 따라 오스트리아로 넘어갔다가 다시 독일의 퓌센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빠른 길이다. 국경을 두 번씩이나 넘는데 출입국 사무소는커녕 여권을 보자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도로에 파란바탕에 별들이 둥글게 늘어서있는 유럽연합(EU)의 표지가 보이는 곳이 국경이다. 이는 유럽 국가들이 공통의 출입국 관리정책을 적용하여 출입국 절차를 최소화함으로서 국가 간 통행에 제한이 없도록 한다는 솅겐 협정(Schengen agreement)에 따른 것으로 1985년 벨기에, 프랑스, 독일,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 5개국 사이에 처음 체결됐다. 

1990년에는 솅겐 국가(Schengenland)란 이름으로 알려진 솅겐 영역 안에서 국경 검문소나 검사소를 폐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 솅겐 조약으로 격상했으며, 아일랜드와 영국을 제외한 모든 EU가입국과 EU에 참여하지 않은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4개국(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포함 총 26개국이 조약에 서명했다.

호헨슈방가우에 가까워지면서 하늘에서 구름이 걷힌다. 절벽 위에 높다랗게 올라탄 호헨슈방가우 성(Schloss Hohenschwangau)은 노란색으로 칠해진 탓인지 손에 잡힐 듯하다. 성 아래 주차장에서 버스를 내렸지만 호웬슈방가우 성은 주차장에서 올려보는 것으로 끝이었다. 슈방가우에서의 일정은 일명 백조의 성이라 부르는 노이슈반슈타인 성만 보기로 돼있었기 때문이다. 

슈방가우의 주차장 옆 언덕 위에 올라앉는 호엔슈방가우 성.

슈반가우에 있는 호웬슈방가우와 노이슈반스타인 성은 복잡한 사연이 얽혀있다. 12세기 무렵의 역사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슈반가우 마을의 요새는 19세기에 지은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 자리에 있던 것이다. ‘슈방가우 위쪽’이라는 의미의 호엔슈방가우 성은 1397년에 슈반스타인(Schwanstein)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언급됐다. 

백조의 산이라는 의미의 성은 요새 아래에 있는 알프지(Alpsee) 호수 옆에 있는 언덕 위에 세워졌다. 19세기 들어 새로운 슈반스타인이라는 의미의 노이슈반스타인 성이 요새 자리에 지어지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15세기에서 16세기 중반까지 이 지역은 바바리아의 비텔스바하 공작(Wittelsbach dukes of Bavaria)의 소유였지만, 1535년 아우그스부르크의 상인 요한 파움가르트너(Johann Paumgartner)에게 매각됐다. 새 주인은 이탈리아의 건축가 루시오 디 스파찌(Lucio di Spazzi)에게 아래쪽 성의 재건을 맡겼지만 옛 요새는 방치돼 폐허로 변했다. 

1829년 이 지역을 여행하던 바바리아의 선거후 막시밀리안 2세는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1832년 쇠락한 슈반스타인 성을 인수해 재건에 나섰다. 1833년에 네오고딕 양식을 적용한 성의 재건축은 처음에는 독일 건축가 도메니코 콰글리어(Domenico Quaglio)가 맡았다가 1837년 콰글리오가 사망한 뒤에는 두 명의 건축가가 이어받아 1855년에 마무리됐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바라보면, 성이 있는 언덕의 왼쪽으로 알프지(Alpsee)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슈반지(Schwansee)가 보인다.

호엔슈방가우 성에는 슈방가우(Schwangau, ‘백조가 사는 곳’이라는 의미)의 역사를 비롯해, 중세 성배 전설의 영웅 파르치발(Parzival)와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Lohengrin)같은 중세 독일의 낭만적 이야기의 주인공을 담은 90여점의 벽화로 장식돼있다. 호엔슈방가우 성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루드비히 2세의 후원을 받은 리카르드 바그너(Richard Wagner)가 영감을 얻어 1848년에는 로엔그린을, 1882년에는 파르치발과 같은 오페라를 작곡하게 된다. 

호엔슈방가우는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II)와 그의 아내 프러시아의 마리(Marie) 그리고 그들의 두 아들 루드비히(Ludwig)와 오토(Otto) 등이 사냥을 하면서 여름별장으로 사용했다. 1864년 막시밀리안 2세가 사망한 뒤에 루드비히가 루드비히 2세로 왕위를 이어받았다. 루드비히는 호웬슈타인성을 좋아했지만 루드비히 2세가 결혼을 하지 않음에 따라 모후인 마리 역시 호웬슈타인성에 머물게 되면서 슈반가우의 옛 성터에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지어 칩거하기에 이르렀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의 와중에서도 호웬슈방가우 성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 1923년 바이에른 주의회는 바바리아 왕실의 후손이 성에 거주할 권리를 인정했다. 현재는 바바리아의 프란츠(Franz) 공작이 거주하고 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호엔슈방가우 성이 손에 잡힐 듯하다.

각설하고 호웬슈방가우 성 아래 주차장에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올라가려면 걸어서 가거나, 마차를 타거나, 셔틀버스를 타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우리는 셔틀을 타고 가서 걸어내려 오기로 했다. 숲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숨찬 듯 오르던 버스는 마리엔 다리(Marienbrücke) 못미처서 사람들을 내려놓는다.

아름다운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로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마리엔 다리는 막시밀리언 2세의 왕비 마리의 이름을 붙인 다리다. 1845년 막시밀리언 2세는 옛 성 아래로 흐르는 푈라트(Pölat)강 계곡에 나무다리를 걸었다. 1866년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건설하기로 한 루드비히 2세는 나무다리를 대체할 다리를 건설하기로 했다. 

다리를 설계한 하인리히 고트프리드 거버(Heinrich Gottfried Gerber)가 1년 만에 건축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세계 최초로 현대적인 캔틸레버 트러스 교량(cantilever truss bridge)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팔보라고 옮기는 캔틸레버 트러스교량을 거버 트러스교라고도 한다. 다리를 건설할 때 하중을 지지하는 동바리를 설치하지 않는 대신 이동식 작업차를 이용해 미리 조합한 3~5m 길이의 마디(segment)를 이어나가 연결하는 방식이다.

마리엔 다리는 경첩이 없는 아치로도 유명한데 아치의 형태가 변형되지 않고 난간 역시 원형 그대로 유지돼온 역사적인 건축물이다. 아쉽게도 겨울철에는 눈과 얼음이 덮인 다리에 올라서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출입이 통제된다. 다리는 푈라트 강 위로 90m 높이에서 깎아지른 절벽을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겨울철에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셔틀버스에서 내린 장소에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가는 길은 마리엔 다리를 건너가지 않고도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슈방가우의 주차장에서 탄 셔틀이 선 곳은 마리엔 다리 근처다. 마리엔 다리에 서면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아름다운 자태를 바라볼 수 있다(좌상). 마리엔 다리는 세계 최초의 현대식 캔틸레버 트러스교량이다(좌하). 성 반대편으로 눈을 돌려 계곡을 내려다보면 깎아지른 절벽 아래 푈라트 강이 가물가물하게 보인다(우).

마리엔 다리에 올라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굽어보다. 울창한 숲 위에 둥실 떠오른 성의 모습이 디즈니영화에 등장하는 백조의 성 그대로다. 성 뒤로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호수가 펼쳐져 조화를 이룬다. 하지만 성 반대편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계곡 아래 푈라트 강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여 무릎에 힘이 빠질 정도로 아찔한 느낌이 든다. 고소공포증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마리엔 다리에 올라서는 것이 겁날 지경이다. 대인기피증이 지독했다는 루트비히 2세가 이런 다리를 건설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마리엔 다리에서 물러나 숲길을 따라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내려갔다. 숲 사이로 보이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아담하고 예뻐 보이지만, 오솔길을 따라 절벽 위에 올라앉은 성을 올려다보면 까마득하게 높아 보인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입구까지는 가보았지만, 이 성을 보러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입장권을 구할 수 없었다는 가이드 설명에 따라 외관만 구경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그래도 오후 일정으로 잡혀있는 오버아머가우(Oberammergau)에 있는 린더호프 성 역시 루트비히 2세가 지은 성으로, 그 내부를 구경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숲속 오솔길에서 바라본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모습은 그야말로 절묘한 자태를 자랑한다(우상). 어디에서 비상을 시작했는지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낙하산이 성루 위로 둥실 떠올랐다(우하). 성이 올라앉은 절벽 아래 오솔길에서 성을 올려다보면 위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좌).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책임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9 현재, 동 기관 평가책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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