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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2015년에도 김원봉 선생에 최고급 독립유공자 훈장 전달 언급

이영수 기자입력 : 2019.06.06 18:39:41 | 수정 : 2019.06.06 18:39:43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전에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 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고 자신의 sns에 마음을 밝혔었다.

2015년 8월 15일 문재인 새정치민주대연합 대표 시절 “영화 ‘암살’에는 항일의 역사와 친일의 역사, 그리고 변절의 역사가 담겨 있다. 또 해방 후 친일세력의 득세와 반민특위의 실패, 잊혀진 독립운동의 역사도 함께 담겨 있다. ‘김구 현상금 5만엔, 김원봉 현상금 8만엔.’ ‘암살’에 나오는 대사이다”라고 페이스북에 소개했다.

당시 문재인 대표는 “약산 김원봉 선생. 일제 경찰이 백범 김구 선생보다 더 높은 현상금을 내걸 정도로 항일 투쟁의 치열함에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분. 하지만 정작 해방된 조국에서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불우했던 독립투사. 먼저 남에서 그는, 일제 고등계 악질 형사였다가 미군정 하에서 수도 경찰청 고위 경찰로 변신한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붙잡혀가 가혹한 고문과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남북협상 때 김구 선생 등과 함께 북으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고 남아 북한 정부의 고위직이 되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않아 숙청됐다. 그 때문에 그는 북에서도 금기하는 인물이 됐고, 남에서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항일투쟁의 동지였던 그의 아내 박차정 지사는 해방 전 해에 사망했기 때문에 건국 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고, 부산의 생가가 복원되고 총을 든 모습의 동상까지 세워지는 예우를 받았지만, 약산은 잊혀졌다. 임시정부 군무부장, 광복군 부사령관에 마지막 국무위원이기도 했지만, 의열단 단장이란 직책만 알려지고 있을 뿐, 일제시대 거의 모든 폭탄 투척과 요인 암살 사건의 배후에 그가 있었다는 활약상은 가려졌다. 우리의 독립운동사가 그만큼 빈약해진 것이다. 지난 달, 약산의 친조카, 9남2녀였던 약산의 형제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막내여동생 김학봉 여사의 아들 김태영 박사를 만났다. 참여정부 때 약산의 고향 밀양을 중심으로 약산을 기념하는 운동이 꽤 활발하게 일어났으나 이명박 정부 이후 모두 중단됐다고 한다. 지금도 약산 김원봉 기념사업회는 정부가 인가를 안해줘서 ‘약산장학회’라는 이름으로 기념운동의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소개했다.

문 대표는 “참여정부 이전까지 사회주의 계열은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제외됐다. 참여정부 때 일제시대 사회주의 운동도 독립운동의 방편이었다고 보고 사회주의 계열까지 독립유공자 서훈에 추가했으나 해방 전의 사회주의 운동까지만이었다. 해방 후의 사회주의 활동가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서훈에서 제외됐다. 해방 전의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가까지 포상하고 나니 경북 안동 일대가 독립유공자가 가장 많은 고장이었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안동에 독립기념관이 건립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는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나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일제시대 독립운동은 독립운동대로 평가하고, 해방 후의 사회주의 활동은 별도로 평가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독립운동사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길이고, 항일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라며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 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고 전했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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