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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 가니 홍콩 독감 오더라”

감염병 공습 국경은 없다③

김양균 기자입력 : 2019.01.01 04:00:00 | 수정 : 2019.01.04 15:26:27

감염병은 진화한다. 

지난 며칠 사이에 몇 차례의 남북 보건의료 협력이 이뤄졌다. 지난 달 28일 남한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경기도 안양의 홍역 발생 정보를 북측에 통보했다. 통일부와 보건복지부는 이번 홍역 발생 정보 통보에 대해 “남북 간 감염병 전파를 차단하고, 북한에서도 이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앞으로 북한도 전염성이 높은 감염병 발생 시 우리 측에 통보하게 된다. 

지난해 11월 7일 ‘남북 보건의료 분과회담’을 시작으로 12월 12일 ‘실무회의 논의’ 등이 있었다. 남북 간 전염성이 높은 홍역, 메르스 등 감염병이 발생하면 이를 수시 공유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지난달 26일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남북한 철도·도로 착공식이 열리기도 했으며, 민관 차원의 남북 협력을 위한 방안이 계속 논의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간 철도 및 도로의 개통은 여러 의미를 갖는다. 철도길이 끊겨 사실상 ‘섬’이 돼버린 남한의 오랜 바람은 부산에서 시베리아를 횡단해 유럽까지 이르는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 구축이다. 

이와 동시에 감염병 확산 및 유입의 위험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국가 간 물리적 장벽이 존재해도 감염병까지 막아내기에는 여러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리고 최근의 남북 간 교류 확대에 있어 감염병의 위협은 다소 간과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웃나라인 중국의 사례를 보자.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홍콩은 본토로부터 유래한 신종 감염병의 위협에 대한 대책은 21세기 최초의 전 지구적 전염병으로 기록된, 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 이하 사스) 이후 본격화됐다. 이후 메르스 등 여러 감염병의 위협이 있었지만, 사스를 뛰어넘은 건 이미 한번 접했던 ‘바이러스’의 공습이었다. 

◇ ‘사스’ 지나가자 ‘홍콩 독감’이 왔다

2004년 사스가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서 홍콩 정부의 대응에 대한 여러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통적으로 사스의 전염 속도가 워낙 폭발적이어서 덜 준비된 상태로 대응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홍콩 정부는 질병 예방통제센터 등의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제2의 사스 사태 대비에 나섰다. 

특히 중국 본토와 홍콩 간의 전염병에 대한 연구 및 역학 정보 공유는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진척됐다. ‘감염병의 허브’라는 오명을 떨치기 위한 홍콩 정부와 의학자들의 연구도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2015년 ‘홍콩 독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금융사에 재직하던 데이빗 창(가명·28)도 홍콩 독감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2월 4일 오후 7시 홍콩 침사추이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인 하버시티 2층. 이곳에서 기자는 창다웨이씨(가명·55)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상의를 입고 기다리라’는 약속이 전부였다. 만나기로 한 시간이 지나도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1시간여를 지나 짧은 머리에 갈색 점퍼를 입은 중년 사내가 기자에게 손짓했다. 그는 데이빗 창의 아버지였다. ‘보안’을 요구한 이유는 그가 정부 측 인사였기 때문이었다.  

잠자코 걸음을 옮기던 사내는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허름한 4층 건물은 불이 꺼져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3층의 ‘안전가옥’으로 오르기 전 일층의 ‘동네병원’은 불이 유독 환했다.  

홍차가 어느 정도 우려지자 그가 담뱃불을 붙였다. “사스 때 어머니가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십년이 지나 아들은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했어요.”

2015년 2월 14일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데이빗은 “몸이 좋지 않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5일  아들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해열제는 말을 듣지 않았다. 기침도 심했다. 창다웨이는 차를 끓여 데이빗에게 먹였다. 

16일 데이빗은 회사에 가지 못했다. 두통과 근육통도 생겼다. 이때부터 구토도 시작됐다. 화장실에서 한참을 나오지 못했다. 물조차 넘기지 못했다. 

17일 데이빗은 호흡에 문제가 생겼다. 구급차로 프린세스마가렛 국립병원에 실려 간 아들에게 의사는 “인플루엔자”라고 설명했다. 그때까지 창다웨이는 아들이 일어나지 못하리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사흘 뒤 데이빗은 사망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한 집에 한 명꼴로 환자가 나왔죠. 저도 아들에게서 독감을 옮아 앓았습니다. ‘내가 데이빗 대신 목숨을 잃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창다웨이는 중국-홍콩간 예민한 정치적 관계가 감염병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홍콩은 과거에도 인플루엔자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적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꽤 준비를 잘해왔지만, 감염병은 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유래한 감염병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침묵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니까요.” 

품안의 녹음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염려가 돼 잠시 질문에 뜸을 들인 사이 그가 물었다. “남북 간의 감염병도 마찬가지로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는 일이 있지 않나요?” 기자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

*이 기사는 「국민건강 증진 공공 캠페인」 (한국인터넷신문협회-한국의학연구소 주최)에 선정된 기획보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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