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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어서 권리 포기하는 성폭력 피해자…민사소송법이 2차 가해

지영의 기자입력 : 2018.11.08 05:00:00 | 수정 : 2018.11.08 00:20:50

#A씨는 헤어진 남차친구에게 강간 당했다. 가해자가 행사한 폭력으로 신체·정신적 피해를 입은 A씨는 트라우마로 인해 직장까지 그만둬야 했다.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민사소송을 걸 수 없었다. A씨의 신상정보를 제공받은 가해자가 출소 후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현행 민사소송법은 소송을 제기할 시 가해자가 받는 소장과 판결문에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기재된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연락처와 주소 등이다. 원·피고의 인적사항을 정확하게 기재하지 않으면 소송을 진행할 수 없다.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신원이 확실해야 집행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민사소송을 포기하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신진희 변호사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실제 상담 사례 중에서 입은 피해가 심각하고, 보복 우려가 높을수록 민사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억지로 합의하게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피해자의 정보가 보호되는 형사소송 선에서 마무리해 합의금이라도 받아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서다.

성폭력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포기하는 경우 사실상 피해를 배상받을 대안이 없다. 피해자가 피해배상을 청구할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민사소송을 제기하거나, 형사재판 진행 시 법원에 배상명령 신청을 하는 것이다. 배상명령제도는 범행으로 인해 발생한 물리적 피해, 치료비 및 위자료에 대해 법원이 직접 배상을 명령하는 제도다. 문제는 배상명령에 ‘정신적 피해’는 인정되지 않는다. 성폭력이 피해자가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는 범죄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봉책인 셈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불리한 민사소송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성과는 없다. 지난 1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사소송법을 일부 개정하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신체의 안전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개인정보가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조항과,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직권 또는 원고의 요청에 따라 원고의 성명과 주소 등 신원을 가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지난 5월 "가해자인 피고의 방어권이 제약될 우려가 있다"는 검토 의견을 냈다. 또 법 개정의 실익이 적으며, 전자소송 시스템에서 특정 정보(피해자 인적사항)만 선별해 삭제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민사소송에 형사소송과 같은 피해자 보호 조항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여성의전화 최인혜 여성인권상담소장은 “성폭력처벌특별법에 따라서 형사소송에서는 가명을 쓰거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가리는 등 피해자 보호 규정이 있다. 민사소송에서도 동일한 조항을 만들어 피해자들이 안전하게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소장은 민사소송 개정에 난색을 표한 법사위 의견에 대해 “형사소송에서 가능한 일을 민사소송에서만 어렵다는 것은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사법위가 피해자 보호 의식과 고민이 없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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