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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화의 영문학 기행] 열일곱 번째 이야기

더블린, 시민의 복종은 도시의 행복이니라

기자입력 : 2018.09.14 13:00:00 | 수정 : 2018.09.14 12:58:19

벨파스트 시청을 떠난 버스가 1시간쯤 달렸을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창밖의 풍경이 바뀐 듯하다. 영국-아일랜드 국경을 언제 넘어섰는지는 모르겠으나 도로의 길가 쪽 차선이 노랑으로 바뀌어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도로의 길가 차선을 하얀색으로 도색하는데 반해 아일랜드는 노란색으로 도색을 하고 있단다.

야트막한 야산의 능선에 펼쳐지는 그리 크지 않는 초지.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바람을 느낀다

창밖으로 보이는 초지의 규모가 영국보다 조금 작고 비탈진 느낌이 든다. 그리고 숲이 많다. 숲에 우거진 나무의 잎들이 거칠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바람이 거세진 듯하다. 누군가의 아일랜드 여행기에서 ‘보리밭에 부는 바람’만 기억에 남는다고 했던가? 아일랜드 독립의 슬픈 역사를 담은 영화 제목이 기억에 남아 있는 탓이리라.

슬픈 역사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 천지사방을 뒤덮은 초록이 싱그럽다. 구름이 낮게 깔린 것까지도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가 자란 동네와 닮은 점이 많아서일까? 아일랜드섬의 지형은 중앙평원을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둘러싸는 형국이다.

아일랜드(Ireland), 지리적으로 아일랜드섬과 혼동을 줄 수 있어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부르도록 1948년 법으로 정하였다. 하지만, 아일랜드 헌법에서는 아일랜드어로는 에이레(Éire), 영어로는 아일랜드(Ireland)를 정식명칭으로 정하고 있다.

아일랜드 섬의 북동쪽을 차지하고 있는 영국의 북아일랜드와 국경을 마주하고, 동쪽은 브리턴섬과의 사이에 있는 아일랜드해, 서쪽은 대서양으로 둘러싸여 있다. 면적은 8만4421㎢이며 해안선의 길이는 2797㎞이다. 수도는 더블린이다. 2016년 기준으로 657만2728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아일랜드어로는 에이레(Éire)라고 한다. 켈트 신화에 나오는 에린(Éirinn)이 바로 이곳이다. 영어이름, 아일랜드(Ireland) 역시 에이레와 땅을 의미하는 영어 랜드(land)를 합친 것이다. 켈트신화에 등장하는 에른마스의 딸 가운데 하나인 에리우(고대 아일랜드어: Ériu)을 현대 아일랜드어로 표기한 것이 에이레이며, 에린은 에이레의 여성 격이다.

빙하기가 끝난 뒤에도 해수면이 낮아 유럽대륙과 연결되어 있던 아일랜드섬과 브리튼섬은 기원전 6000년 무렵 대륙으로부터 분리되었다. 클레어(Clare)주에 있는 동굴에서 발굴된 곰의 뼈와 석기 등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아일랜드에 인간이 거주한 기록은 기원전 1만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 중석기인들은 기원전 4000년까지도 수렵 혹은 채집으로 생활한 것으로 보인다.

미스주에 있는 뉴그랜지 신석기 유적 <사진=Wikipedia>

미스(Meath)주에 있는 뉴그랜지(Newgrange)유적은 기원전 3200년경 전후의 것으로 보이는 아일랜드식 통로 돌무덤(Irish Passage Stone Tomb)이다. 이를 포함한 신석기 유적을 고찰해보면 이들이 이베리아반도에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2000년 무렵 켈트족들이 들어왔는데, 아마도 영국 혹은 대륙의 갈리아지방에서 왔을 것이다.

아일랜드에 대한 공식기록은 그리스와 로마의 지리학자들이 처음 남겼다. 프톨레미는 그의 저서 알마게스트(Almagest)에서 브리튼섬을 메갈레 브레타니아(Megale Brettania)로 아일랜드섬을 미크라 브레타니아(Mikra Brettania)로 표시했으며, 나중에 쓴 지리학(Geography)에서는 아일랜드섬을 이오우레르니아(Iouernia)로 브리튼섬을 알비온(Albion)이라 했다.

프톨레미는 서기 100년 무렵의 아일랜드에는 모두 16개의 왕국이 있다고 기록했다. 7세기 들어 왕권이 분명해지면서 이를 총괄하는 왕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브리튼섬을 지배하던 로마제국은 아일랜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덕분에 그들이 히베르니아(Hibernia)라고 부르던 아일랜드의 켈트족은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보존할 수 있었다.

8세기말 바이킹 세력이 확산될 무렵 아일랜드 역시 그들의 침공 대상이었다. 따라서 아일랜드의 해안 곳곳에 바이킹 마을이 건설됐다. 더블린 역시 852년에 바이킹이 켈트족을 쫓아내고 건설한 도시이다.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아일랜드로 옮겨온 많은 성직자와 학자들로 아일랜드의 문예가 흥성하게 됐는데, 바이킹의 침략으로 그 성과의 대부분이 멸실되고 말았다.

1169년 5월 1일 600여명의 캄브로-노르만(Cambro-Norman) 기사단이 오늘날 웩스포드(Wexford)주의 바노프 스트란드(Bannow Strand)에 상륙한 것이 영국이 아일랜드를 처음 침략한 기록이다. 1171년 영국의 헨리2세는 아일랜드 서쪽의 코넉스트(Connaught) 왕국과 동남쪽의 랭스터(Leinster)왕국 사이의 주도권 싸움을 계기로 아일랜드를 침공해 몇몇 아일랜드왕국을 점령했다.

1261년 피닌 맥카시의 캘트족의 군대가 카란 전투에서 노르만족을 격파한 것을 시작으로 켈트족의 저항이 격해졌고, 1348년 흑사병이 아일랜드를 휩쓸면서 노르만족의 아일랜드 지배는 약화됐다. 하지만 1542년 영국의 헨리8세는 아일랜드를 모두 정복하고 아일랜드왕국을 세워 국왕을 겸하였다. 이때부터 영국 성공회와 아일랜드 가톨릭 사이의 갈등이 시작됐다.

16542년 아일랜드로 이주한 영국인 3천명이 학살당한 사건을 계기로 올리버 크롬웰은 그보다 더한 복수와 함께 스코틀랜드계의 청교도 켈트족을 대대적으로 이주시켰다. 이들이 북쪽 얼스터지역에서 원주민을 밀어내고 정착하면서 오늘날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는 결과를 낳았다.

1798년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아일랜드 사람들은 대규모 독립운동을 시작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영국의 탄압은 더욱 혹독해져갔다. 결국 1801년에 그레이트 브리튼 및 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으로 통합되고 말았다.

세관 부두에 서 있는 대기근 추모비. 로완 길레스피( Rowan Gillespie)가 1997년에 제작한 것으로 피골이 상접한 사람들이 변변치 않은 물건을 들고 이민선으로 향하는 모습 <사진=Wikipedia>

감자가 아일랜드에 전해진 이후로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주식으로 했다. 경제성을 고려하여 럼퍼라는 품종만을 키우던 것이 화근이 되어 1848년 대규모의 감자전염병이 퍼지는 바람에 감자를 수확할 수 없었다.

밀이나 고기 수급에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영국인들은 이를 구호품으로 사용하지 않는 바람에 무려 200만명의 아일랜드 사람들이 굶어죽었고, 200만 명은 죽음을 피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대기근이 들기 전에 아일랜드 850만 명이던 인구가 반토막이 나고 말았다.

감자 대기근을 계기로 아일랜드인의 반영 감정은 심각해졌다. 대니얼 오코넬(Daniel O'Connell)의 민족주의운동,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와 존 밀링턴 싱(John Millington Synge) 등이 주도한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이 일어났다.

더불어 20세기 초까지 무장 봉기가 수도 없이 있었지만, 모두 진압되다가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을 결성해 조직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결국 1921년 12월, 영국-아일랜드 조약이 체결되어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아일랜드섬의 독립을 얻어냈다.

1921년 독립 전후의 아일랜드 사회를 담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포스터. 그해 제59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사진=Wikipedia>

독립 전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통하여 아일랜드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영화가 있다. 우리가 아일랜드를 여행하는 동안 가이드가 보여주었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다. 헨리2세의 아일랜드 침공으로부터 따지면 700년 가까운 긴 세월 영국의 지배를 받아온 아일랜드 사람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을 가진 아일랜드사람은 애써 영국의 탄압을 무시하며 살았지만, 탄압이 아일랜드 사람들의 근본적인 자존심을 다치게 하는 경우에는 격한 반발로 이어졌던 것이다. 

영화는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과정과 영국-아일랜드 간에 체결된 정전협정을 두고 아일랜드 독립운동 세력 간에 벌어진 내전까지도 담아내고 있다. 2006년 제59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일제 강점기의 우리나라의 사회현상과 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영국 지성을 대표한 버트런드 러셀경은 “영국인들은 아일랜드 땅을 계속 지배하려면 터무니없이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1921년까지 아일랜드 사람들을 특별한 매력과 신비한 통찰력을 지닌 존재로 여겼다”라고 했다지만, 이 영화를 보면 전혀 그런 느낌이 남지 않는다. 오히려 요즈음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등장하는 일본인들이 조선을, 그리고 조선인을 보던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더블린이 가까워질 무렵 두텁던 구름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파란 하늘이 드러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 한참을 달리니 두텁던 구름이 벗어지면서 파란 하늘이 조금 드러난다. 더블린이 우리를 환영하는 듯하다. 6시반 더블린시내 예전의 차이나타운에 있는 한식당에 도착했다.

미리 주문을 넣은 듯 식탁에는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니 김치, 오이무침 등 기본반찬에 잡채와 불고기가 이어서 나왔다. 양념과 간이 적당해서 먹기가 좋다. 한 공기 밥을 뚝딱 먹고 숙소 클레이톤Clayton)호텔로 이동했다.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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