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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2015 메르스 백서’에 교훈이 없다?

책장에 고이 모셔진 백서… “2번은 펼쳐 볼 이유조차 없었다”

오준엽 기자입력 : 2018.09.14 00:05:00 | 수정 : 2018.09.13 23:18:25

2015년 4월24일, 원예사업을 하는 68세 남성 A씨가 중동지역을 방문해 2주간 체류하다 귀국했다. 중동에 체류 중 현지 구매상과 인사를 나눴을 뿐 낙타와 접촉했거나 관련 음식을 섭취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귀국 7일 후 몸살과 발열 증상이 나타났고, 의원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이에 담당의사의 권유로 평택성모병원에 3일간 입원 후 퇴원했고, 또 다른 의원에서도 진료를 받았지만 몸 상태는 나빠지기만 했다. 심지어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까지 보였다.

5월18일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한 후에야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소견이 나왔고, 20일 확진판정을 받았다. 국내 첫 메르스 환자였다. 이에 정부는 질병관리본부장을 총괄로 하는 ‘중앙방역대책본부’를 설치하고 대응에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사실상 종료된 후 그간의 진행경과와 대처 등에 대해 정리하고 평가해 2016년 7월 말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15 메르스 백서’에 따르면 메르스 확진자 186명 중 38명이 사망하고 6729명이 자택이나 시설에 격리됐다.

메르스와 같은 신종감염병에 대한 사전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전문성을 갖춘 인력은커녕 전문가를 뒷받침할 행정력마저 부족했다. 정보는 차단돼 원활한 대처나 협력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외에도 정부의 메르스 대응에 부족함이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감염병 관리체계 3대 주체의 문제점 <그림=2015 메르스 백서 중 발췌>


여기에 더해 국가방역뿐 아니라 의료체계에 내재된 모순이 전면적으로 드러났고, 많은 국민들이 메르스로 일상 활동에 제약을 받았으며 국가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했다. 문제는 일련의 정리와 평가가 거의 전부라는 점이다.

감염병 전문가들 중 일부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달라진 점이 거의 없다. 여전히 부실하고 미흡하다. 민간에서의 자체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비싼 비용을 치르며 체득한 국민들의 경험이 없었다면 언제고 또 사회적 위험에 노출될지 알 수 없다”고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 왜 이런 부정적 평가가 내려질까?

이들은 당장 정부가 내놓은 ‘2015 메르스 백서’부터가 문제라고 말한다. 백서를 발간한 목적과 이유에 부합하지 못하는 수준인데다 백서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이나 분량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당국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음은 전 국민이 알고 있다.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여러 관계자들은 문책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런데 백서에는 온갖 공문만 잔뜩 들어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온갖 것이 비밀이다. 회의 참석자 명단마저도 제대로 알 수 없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도 어렵다. 어떤 경과를 거쳐 잘못된 결정이 내려졌는지 알 수가 없다. 문제의 원인과 경과에 대한 반성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결국 페이지만 많고 디테일이 엉망”이라고 혹평했다.

실제 정부의 메르스 백서는 470쪽이 넘는 분량을 자랑한다. 전공서적만큼 두껍다. 게다가 대부분은 메르스 사태가 확산된 경과와 대응에 할애하고 있다. 문제로 지적된 점들이나 향후 검토해야할 주제들에 대해서 제시하고는 있지만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거나 핵심에서 벗어나는 경우들도 많아 보였다.

한 감염병 전문가는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한 번 펼쳐본 후 두 번은 보지 못할 책”이라며 “최대한 많은 내용을 충실히 담으려는 노력은 보였지만 일단 분량에서 압도된 후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혼잡스럽기만 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병원 내 감염관리 담당자도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비치만 해 놨다. 사실 백서가 다 그렇지 않느냐”면서 “백서를 바탕으로 지침이 만들어지고 그때그때 배포되니 그걸 보고 따르는 게 빠르다. 사실 핵심만 요약돼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도 남는다”고 말했다.

앞서 대학병원 교수도 “우리나라는 문제가 생기면 매뉴얼을 만든다. 매뉴얼은 약속이다. 그런데 정부부처의 매뉴얼이 수천개는 될 것”이라며 수많은 약속들을 제대로 알기도 어렵고, 따라서 약속이 지켜지기도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부처가 만든 매뉴얼을 다른 부처가 점검해야 서로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과 공공이 각각에게 필요한 매뉴얼이 다르다”면서 단순히 변명하듯 그간의 상황을 정리하고 이야기를 취합해놓는다고 끝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를 쉽게 접할 수 있고 알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내용을 명확화 해야한다”면서 “여전히 1번 환자의 감염경로는 밝혀지지 않았고, 사회·경제적 영향은 제대로 평가되지 않고 있다. 제대로 점검하고 평가하고 스스로를 비판해보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오준엽 기자 oz@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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