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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위기 분쟁의 미래] 파키스탄 민주화 10년전의 환희와 10년후의 상처

파키스탄 총리 해임 사태로 불거진 ‘내홍’

이유경 기자입력 : 2017.08.09 00:18:00 | 수정 : 2017.08.09 14:16:10

[쿠키뉴스=태국 방콕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이번 파키스탄 총리 해임 사태로 민주화 과정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높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10년 전 민주적 총선으로 회복됐던 민주주의의 몇 장면을 소개합니다. 

사진①=이유경

이번 총리 해임과정에서 ‘안티 나와즈 샤리프’ 캠페인을 적극 전개한 야당 대표 임란 칸은 크리켓 선수 출신 정치인이다. 2008년만 해도 (사진) ‘부토’와 ‘샤리프’ 두 가문이 장악한 주류정치권에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비춰지며 젊은 층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기성 정치인의 행보와 다르지 않은 인물이 됐다. 그 역시 현재 부패혐의에 연루돼 있다. 

사진=이유경

10년전 파키스탄 정치는 쿠테타로 권력을 찬탈한 '무샤라프 아웃'의 의미가 컸다. 그 전선에는 총선 보이콧을 통해 무샤라프 체제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정당들의 연대도 있었다. 사진은 보이콧 정당들의 '반 무샤라프' 시위 장면이다. 

사진=이유경

파키스탄의 민주주의가 회복된 2008년 대규모 시위에는 법조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파키스탄 변호사들이 이슬라마바드 법률 사무소 즐비한 거리에서 '반 무샤라프' 구호를 외치며 행진중이다.

사진=이유경

이슬라마바드 변호사 사무실이 즐비한 구역. 10년전 반 무샤라프 운동에 동참하던 변호사들이 여러차례 시위를 벌이던 장소다. 이번 대법원의 총리 해임이 신뢰성에 논란을 빚은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토대로 했다는 점에서 사법부 역할에 대한 해석이 복합적으로 나오고 있다.

사진=이유경

1973년 파키스탄 헌법. 이후 이 헌법은 18번(2010년) 개정됐다. 80년대 지아울학 시대에는 그의 이슬람화 정책과 민간정치인 견제 장치가 담겼다. 그 시기 개정된 62조, 63조가 이번 총리 해임에 헌법적 근거가 됐다. 아이러니 하게도 62조, 63조 폐지 혹은 개정에 나와즈 샤리프 진영은 꾸준히 반대해왔고 결국 그 조항을 근거로 나와즈 샤리프는 총리직을 발탁당했다.  

사진=이유경

2008년 총선당시 투표장 모습. 군부 독재자 무샤라프를 정치적으로 패배시키고 민주주의를 회복한 선거였다. 이후 2013년 선거에서 파키스탄은 역사상 최초로 민간권력에서 민간권력으로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이번 총리 해임 사태는 그 민주화 경험에 상처를 줬다는 지적이 높다. 

사진=이유경

2008년 총선당시 제 1당을 얻지는 못했으나 가장 의외의 선전을 보인 당은 이번에 해임된 나와즈 샤리프가 이끄는 '파키스탄 무슬림리그 나와즈퍄 (PML-N)'다. 샤리프의 지지자들이 당사앞에서 환호하고 있다. 나와즈 샤리프는 2008년 총선 선전에 힘입어 2013년 총선 압승으로 다시 한 번 총리직에 올랐다가 이번에 해임됐다.

사진=이유경

2007년 12월 암살당한 베나지르 부토 총리 사진위에 한 파키스탄 시민이 꽃잎을 뿌리고 있다. 부토는 망명길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암살당했다. 암살 배후에는 군부 독재자 무샤라프의 연루의혹이 짙고 관련 재판이 여전히 그러나 느리게 진행중이다. 아버지 줄피카르 부토 (Zulfikar Bhutto)는 79년 군부독재자 지아울 학 정권하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부토 가문의 정치역사는 파키스탄 사회 군과 민간 정치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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