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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위기 분쟁의 미래] 파키스탄 군정보국 ‘공작정치’ 계속할까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 해임사태로 불거진 민군 갈등

이유경 기자입력 : 2017.08.04 00:03:00 | 수정 : 2017.08.29 10:48:32

[편집자 주] 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가 국제분쟁과 인권, 민주화 과정의 진통 등 지구촌의 여러 이슈를 매주 선보입니다. 이유경 기자는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의 인터뷰와 주류언론이 간과하는 이면의 이야기 등 다양한 방식과 콘텐츠로 시각의 지평을 넓혀줄 것입니다.  

2007년말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암살당한 후 파키스탄 전역으로 번진‘반 무샤라프’ 운동에는 파키스탄 법조인들도 적극 동참했다. 군부 독재자 무샤라프는 1999년 나지브 샤리프로부터 쿠테타로 권력을 뺏고, 2007년에는 망명길에서 돌아온 부토 전 총리 암살에도 연루의혹을 받고 있다. 무샤라프 시대의 종언은 이듬해 2008년 2월 총선패배로 확실해졌고 파키스탄 민주주의는 다시 회복됐다. 사진은 당시 시위로 피흘리는 동료 사진을 뒤로하고 대화중인 파키스탄 변호사들. 사진=이유경



[쿠키뉴스 태국 방콕=이유경 국제분쟁전문기자] 지난 2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의회는 총 342석중 221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샤히드 카칸 아바시 전 ‘석유 및 에너지부’ 장관을 임시 총리로 선출했다. 아바시 총리는 지난 달 28일 대법원 판결로 해임된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의 뒤를 잇게 된다. 나와즈 샤리프의 동생인 샤바즈 샤리프(현 펀자브지방 주지사)는 형의 낙마로 공석이 된 의석을 두고 치러질 보궐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다. 당선은 확실시된다. 동생 샤리프가 총리에 오를 때까지 아바시가 임시총리를 맡는다는 게 집권당인 파키스탄 무슬림리그 나와즈파(PML-N)의 시나리오다. 

이번 총리 해임을 두고 부패 정치인을 심판한 사법부 판단을 믿어야 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는 파키스탄 국내정치의 특수성과 주변국을 둘러싼 남아시아 정세를 고려하면 여러 각도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번 해임은 2013년 파키스탄 역사상 최초로 ‘민간정부에서 민간정부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한 민주화 경험에 크나큰 상처를 입혔다. 쿠데타와 암살로 얼룩진 파키스탄 현대사에 선거로 선출된 총리가 임기를 마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와즈 총리가 내년 6월까지 무사했다면 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후 임기를 마친 첫 민간총리가 될 뻔했다.

샤리프 일가에 대한 ‘부패 혐의’ 조사는 지난해 4월 파나마 페이퍼스 폭로로 시작됐다. 그러나 대법원이 해임을 판결한 건,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어서가 아니었다. 대법원은 ‘정직’(Sadiq)하지 않고 ‘올바’(Ameen)르지 않은 자는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수 없다는 헌법 62조를 인용했다. 파키스탄 헌법 62조와 63조는 그 모호성으로 인해 오랫동안 논란이 돼온 조항이다. 이는 1986년 군부 독재자였던 지아울학(Ziaul-Haq) 시대에 민간정치인에 대한 견제 장치로 도입된 조항이다. 

파키스탄 진보정당인 아와미노동당(AWP)은 총리 해임 판결 직후 “논란 많은 62조와 63조를 적용하여 선출총리를 해임한 것에 우려를 표명”하고 이 조항의 폐지를 권고했다. 저명한 인권변호사 아스마 자항기르는 파나마 페이퍼스 관련 조사가 “범죄자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정권교체를 노린 절차”라고 지적해왔다. 그의 메시지는 명쾌하다. 

“나와즈 샤리프는 처벌받아야 한다. 작금의 의혹이 오로지 적법한 사법 절차에 따라 유죄로 판명된다면.” 

이번 총리 해임과정에서 ‘안티 나와즈 샤리프’ 캠페인을 적극 전개한 야당 대표 임란 칸은 크리켓 선수 출신 정치인이다. 2008년만 해도 ‘부토’와 ‘샤리프’ 두 가문이 장악한 주류정치권에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비춰지며 젊은 층의 지지를 받았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기성 정치인의 행보와 다르지 않은 인물이 됐다. 그 역시 현재 부패혐의에 연루돼 있다. 사진=이유경


◇군부독재시절 개악된 헌법 조항으로 총리 해임 

“지난 10여 년간 미디어 발달로 파키스탄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조금씩 성숙해지고 있다. 한때 (쿠데타가 발생하면) ‘스위트’(남아시아 간식)를 나누며 군인들에게 환호하던 시절도 있었다. 더 이상은 아니다. 그것을 잘 아는 군이 사법기관을 통해 간접적인 방식을 택한 것이다.” 

10여 년 동안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이슈를 밀착 취재해 온 <라디오프리유럽(RFE)>의 파슈토어 편집장 다우드 카탁의 말이다. 그는 기자와 온라인상의 인터뷰를 통해 “사법부와 군이 손을 직접 잡았다는 게 아니라 군이 샤리프 가족에 불리한 정보들을 제공하면서 (사법판단에) 영향을 주는 식의 은밀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판결에 근거를 제공한 건 지난 5월 급조된 협동조사위원회(JIT) 보고서다. 조사위 위원 6명 중에는 퇴역장교 두 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파키스탄 정보국 ‘인터서비스 인텔리전스(ISI)’와 ‘군정보국(MI)’ 출신이었다. ISI는 파키스탄 공작정치의 상징적 존재다. 조직의 상층부는 군이 장악하고 있다. 자연히 조사의 신뢰성에 의혹이 생겼고 군의 역할에도 큰 의문이 제기됐다.  

파키스탄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군과 정보국 ISI는 사실상 민간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심지어 외교정책도 ‘안보’라는 명목 하에 ISI와 군이 쥐락펴락 해왔다. 군과 민간정부가 꾸준히 갈등관계에 놓인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해 10월 파키스탄 일간지 <Dawn>의 특종에 따르면 군 간부와 ISI, 그리고 나와즈 샤리프 정부의 전 각료가 참석한 ‘민·군 합동회의’ 자리에서 양측 사이에 전례 없는 갈등이 표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갈등의 지점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당시 외교부 장관 아이자즈 쵸드리(주미 파키스탄 대사)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세 곳을 특정해 ISI에 문제를 제기했다. 각 단체들은 아프간 탈레반의 분파 중 하나인 ‘하까니 네트워크(HN)’, 파키스탄과 인도를 오가며(카슈미르 일대를 포함해) 활동해온 ‘라슈카레 토이바(LeT)’와 ‘자이쉐 모하마드(JeM)’ 등이다. 군과 ISI는 이들 단체를 외교정책의 ‘지렛대’로 삼아 오랫동안 지원하고 이용해왔다. 

그러나 극단주의를 이용한 외교안보 노선 탓에 국가 이미지는 ‘테러리스트’와 연계돼 크게 훼손됐다. 뿐만 아니라 주변국과의 관계도 악화일로를 치달으며 외교적 고립을 자처했다. 예컨대 파키스탄-아프간 국경에 은신처를 둔 하까니 네트워크의 경우를 보자. 파키스탄 당국은 2015년 1월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 이겨 HN을 불법조직으로 규정·선포했다. 그렇지만 HN은 여전히 아프간 수도 카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150명에 달하는 인명을 살상하는 등 건재함을 과시했다(5월 31일 자살폭탄). 

JeM도 지난해 1월 초 인도와 국경을 나눈 펀자브 지방의 인도 영토에서 파탄콧 공군기지를 공격했다. 불과 일주일전 양국 정상이 포옹으로 조성한 화해국면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대부분 파키스탄 영토에 둥지를 틀고 있는 이들 조직의 단속은 매번 허사로 돌아갔다. ‘우리가 체포하면 ISI가 뒤에서 다 풀어주는 식’ 이라는 게 지난해 10월 민·군 합동 회의장에서의 성토였다. 군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은 바로 차기 총리를 노리는 샤바즈 샤리프였다.     

향후 파키스탄에는 두 개의 ‘전선’이 펼쳐질 것으로 예견된다. 일단 정치권의 대립은 내년 6월 이후 치러질 총선까지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3일(현지시간) 전 군부독재자인 페르베즈 무샤라프가 망명지로부터 오는 12일 귀국하겠다고 밝힌 터라 다자간의 대립이 예상된다. 또 다른 전선은 수면 위로 부상한 민과 군의 갈등이다. 이는 파키스탄 국내정치는 물론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대 지역정세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용어설명] 파나마 페이퍼스(Panama Papers)=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폭로한 파나마 소재 로펌인 모색 폰세카의 내부 문건을 말한다. 1150만 건의 문서에는 21만4000여 건의 역외회사 정보가 포함돼 있었다. 문건이 공개됨에 따라 각국정부 고위관료를 비롯해 전 세계의 부자들이 탈세를 목적으로 어떻게 재산을 은닉했는지가 낱낱이 드러났다. 이로 인해 각국 정치인의 낙마와 사임이 이어졌다.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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