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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①] 강병규 “프로야구 선수협을 아십니까”

조현우 기자입력 : 2011.09.21 15:07:00 | 수정 : 2011.09.21 15:07:00


[쿠키 스포츠] 강병규는 상습 도박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과자다. 하지만 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 대변인으로 산파 역할을 한 과거를 알고 있는 야구 팬들은 그리 많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연예인 응원단으로 혈세 낭비 논란의 중심에 섰고, KBS 드라마 ‘아이리스’의 배우 이병헌과 명예훼손 맞소송, 드라마 제작자와 폭행 논란의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재판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사기 혐의로 피소된 재판도 받고 있다. 이러한 ‘악동’, ‘사고뭉치’ 이미지는 OB 베어스 시절 유망주로 출발해 SK 와이번스에서 선수협 때문에 20년간 손에 잡았던 야구공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야구인 이미지 자체를 희석시켰다. 선수협 대변인으로서 프로야구 선수들을 지켜달라고 외치던 모습도 함께 사라졌다.

하지만 그가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자신의 트위터에서 야구 팬들에게 신(神)으로 불리는 ‘양신’ 양준혁과 ‘종범신’ 이종범의 실명을 거론하며 선수협을 망쳤다고 맹렬한 비판을 가했기 때문. 이유가 궁금해졌다.

강병규를 서울 강남 모처에서 10시간동안 인터뷰했다. 그는 사전에 두 가지를 부탁했다. 하나는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이기 싫은 만큼 사진 촬영에 응하지 않겠다는 것. 또 하나는 자신의 주장을 빠짐없이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갑자기 이슈의 중심으로 부각됐다. 인터뷰 요청도 많을 것 같다.

“여러 곳에서 연락이 많이 오기는 하는데 사실 기자들이 딱히 뭐에 관심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양준혁 선배(이하 존칭 생략)와 이종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물어보는데 그들을 비판한 것은 근본적으로 선수협을 비판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선수협을 모르는 기자들이 더 많다. 11년 전 이야기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의사소통 자체가 원활하지 않다. 선수협 이야기를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싶다.

-선수협 이야기를 해보자. 30대 야구 팬들 정도는 결성 당시 모습을 기억하지만 10대나 20대 팬들은 잘 모른다.

“1995년으로 기억한다. 한일 슈퍼게임이 있고 그랬다. 우리 팀(OB 베어스) K 선배가 선수들 모임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참여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최동원 선배도 하지 못한 일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무조건 찬성한다고 했다. 신인 때부터 너무 화가 났던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인가.

“고졸 신인으로 입단했는데 연봉계약 때 정말 너무하더라. 당시 최저 연봉이 600만원이었다. 고졸 출신은 800만원, 대졸 출신은 1200만원. 그냥 이게 룰이었다. 그걸 내가 최초로 깼다. 고졸이지만 1200만원 주지 않으면 계약을 안 하겠다고 했다. 대학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국가대표팀 상비군에 뽑히기도 했는데 구단이 날 스카웃해서 대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는 고졸, 대졸 이게 엄청났다. 한 번 생각을 해보라. 보통 회사에서 연봉 협상을 어떻게 하나? 얼마 받고 싶다고 하면 회사 사정이 이러저러하니 서로 준비한 논리로 이야기 해보고 절충점을 찾자고 하지 않나? 하지만 그 때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모기업에서 받은 예산을 갖고 샐러리 캡처럼 나누는 수준이었다. 연봉 계약이 아니라 연봉 지정, 연봉 통보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선수협 까지는 아니지만, 신인 시절부터 이런 불합리한 구조에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연봉 협상에 진통이 매년 많았을 법 하다.

“실무협상 하는데 판을 엎고 나온 적 많다. 20~23살 때 정말 이상하게 돌아가는 야구 판이라는 것을 이미 느꼈다. 완전 주종 관계다. 전부 구단에 속하고 구단에 의하고…. 전부 이런 식이다. 권리는 없고 의무만 있더라. 노예 계약이라고 보면 된다.”

-선수협 결성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우리 팀 K 선배에게 난 무조건 한다고 말했다. 근데 며칠 후 말이 없는 거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봤더니 LG 트윈스 L 선수하고 일부는 강하게 주장하는데 삼성 양준혁이랑 몇 명이 삼성은 노조가 없어 자기네들은 참여하기 곤란하다고 했다더라. 그래서 아예 모임 자체가 취소됐다. 한일 슈퍼게임 당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다른 팀 선배들도 많이 빠졌다. 당시 난 연차도 안 되고 지명도도 떨어져서 모임 결성에 따라는 갈 수 있지만 앞장 설 형편은 안 됐다. 하지만 연봉으로 구단과 하도 싸워서 ‘언제 내가 자리 좀 잡으면 세게 한 번 붙는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2000년에 선수협이 결성된다.

“내가 뛰어난 투수는 아니지만 99년도에 최고 성적을 거뒀다. 13승이다. 사실 97~99년까지 3년 동안 OB가 내게 정말 잘해줬다. 연봉도 후하게 줬고 대우 자체가 정말 좋았다. 김인식 감독님이 팀과 프런트가 잘 협조하는 분위기로 만들어 주셨다. 99년 두산으로 팀 이름을 바꾸면서는 OB에서 서운했던 부분을 두산이 정말 잘해줬다. 더구나 당시는 두산 구단주가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로 계실 때다. 난 선수협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누가 하자고 하든, 다른 선수들은 해도 난 정말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선수협 결성에 앞장 선 것도 모자라 대변인까지 됐다.

“2000년 겨울 태국에 있는 누나 집을 다녀오니 양준혁에게 전화가 왔다. 당시 난 양준혁과 개인적으로 전혀 만난 적도 없었다. 야구장에서 보면 선배니까 인사나 하는 정도였다. 아예 일면식 자체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 통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 전화가 오니 무슨 일인가 싶었다. 두산 고참 선수 두 명이 전화를 안 받는데 왜 안 받느냐고 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냐고 하니, 나더러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선배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이 선배들이 전화를 안 받거나 받더라도 금방 끊고는 다시 전화 한다고 하더니 연락이 없었다.

그대로 전해주니 양준혁이 두산 너희들 너무한다고, 서울 애들 정말 의리 없다고 했다. 선수협을 결성하기로 하고 총회를 갖기로 약속했는데 실망이다, 막 이렇게 하소연을 하더라. 그래서 우리만 빠졌냐고 재차 물었다. 그렇다고 하는데 갑자기 화가 나더라. 평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인데 두산만 빠졌다고 하니까. 그래서 나 혼자라도 일단 가겠다고 했다.

당시 여의도 사무실로 기억한다. 지금 선수협 사무총장으로 있는 K씨의 후배들이 만든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 사무실에서 모였다. 양준혁, 송진우, 김기태, 유지현, 박정태, 최태원 등이 모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쌍방울 레이더스는 팀 해체 직전이라 거의 전 선수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갔더니 아주 깜짝 놀랐다. 걱정이 99%였다. 의욕은 1%쯤 있었나 싶다. 모두들 우리가 이러다 다 잘리지 않겠냐, 너네 확실히 나올 거냐, 이런 이야기들만 하고 있었다. 선수협 총회 준비하는 장소가 아니라 잔뜩 겁만 먹은 분위기였다.”


-현 사무총장인 K씨와 처음 만났다.

“그 때 K 사무총장을 처음 봤다. 당시 민주당 정책전문위원인가 그랬을 거다. 나름 당에 파워가 있으니 양준혁이 선택하지 않았나 싶었다. 외국에서 매니지먼트 공부도 하고 우리나라의 열악한 스포츠환경을 잘 지적했다. 에이전트도 있어야 하고 초상권이나 중계권료도 가져와야 하고 연봉도 지금보다 더 올리는 것이 맞다고 했다. 평생 운동만 한 선수들이 뭘 알겠나. 일단 연봉 올리자는데는 전부 동의했다.”

-어떤 이야기들이 구체적으로 오고 갔나.

“그런 것도 없다. 선수협 만들고 총회를 갖자고는 하는데 아주 중구난방이었다. 이곳에 모인 이유를 이야기 하고, 우리가 뭐가 불만이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를 논해야 하는데 너희 몇 명 나오냐, 장악은 다 했냐, 너희 안 나오면 안 된다, 너희부터 총회에 입장해라, 이런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몇 명은 선수협 결성 자체를 아예 반대하더라. 그냥 다음에 하자, 없었던 일로 하자, 최동원 선배도 못 해낸 일이다, 이러니 총회 자체가 무산될 뻔 했다. 일부 선수들은 이미 구단과 약속을 하고 나왔다더라. 자기들만 빠지면 모양새가 좀 그러니까 일단 가서 분위기를 살펴보고 오겠다는 식으로 구단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비밀로 만나기로 했는데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선수협이 결성되고 2000년 1월 창립총회가 열린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창립총회를 여는데 반이 기자들이었다. 평생 살면서 그렇게 많은 기자들 처음 봤다. 국내 프로야구 8개 구단 대표와 200명의 선수들이 모였는데 정말 웃기는 건 그 때까지도 아무 것도 결정된 게 없었다. 전혀 없었다. 회장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모이는 건 저녁에 모였는데 창립은 새벽에 했다. 5~6시간은 족히 걸렸다.”

-보통 단체 창립총회가 길긴 하지만 1시간 내를 넘지 않는 편인데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나.

“8개 구단 대표가 모였으니 선수들이 입장하고 총회를 열면 되는데 거기서도 그냥 다음에 하자고, 그냥 없었던 일로 하자고 하는 거다.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겨우 다독여 총회를 하자고 하는데 또 시비가 불거졌다. 회장을 누가 하는지를 갖고. 그냥 양준혁이 하면 되는데 자신은 너무 강성 이미지가 있으니 송진우더러 하라고 했다. 해태로 온 지 1년도 안 돼 해태 L 선배 허락도 안 받고 해태 대표로 왔으니 부담감이 심했을 거다. 실제 L 선배가 양준혁을 만나서 뭐라고 한 적도 있다. 송진우는 절대 회장을 안 한다고 계속 고사했다. 지금은 회장님으로 불리지만 당시에는 정말 회장을 안 하려고 했다. 그걸 갖고 두 시간은 설득한 것 같다. 회장 선임을 창립총회에서 하는 코미디가 어디 있나.”

-송진우를 회장으로 뽑고 나서도 시간이 더 걸렸다고 들었는데.

“말도 마라. 두 시간 걸려서 회장을 뽑았는데 이제는 어느 팀이 먼저 입장하는 것을 두고 다퉜다. 선수들이 63빌딩에도 있고, 포장마차에서 우동도 먹고 있고, 버스 안에 대기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입장을 하지 않는 거다. 서로 눈치만 보고 절대 먼저 들어가려는 팀이 없었다. 삼성은 LG만 쳐다보고 있었다. 삼성 K 선배는 LG Y 선수에게 LG 몇 명 왔냐, 어떻게 할 거냐고 묻고 Y 선수는 왜 우리 팀 이야기를 하냐, 알아서 하겠다고 하니 말대꾸한다고 욕하고. 멱살 잡고 고성 오가고 몸싸움 벌어지고 막 그랬다.”

-결국 어느 팀이 맨 먼저 입장했나.

“두산이다. 지금도 17명의 후배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하도 입장하는 문제로 싸우고 있어서 내가 박명환에게 지금 입장하는 걸로 다투는데, 그냥 우리가 먼저 입장하자고 그랬다. 이경필, 정수근, 김동주, 홍성흔에게 전부 전화했다. 그랬더니 얘들이 ‘그럼 우리가 먼저 들어갑시다’라고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도 고마웠다. 그때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선수협 일을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산이 입장하니 다른 팀들은 입장 안 할 명분이 사라지지 않겠나. 두산 따라서 전부 입장했다. 그렇게 200여명의 선수들이 모였다. 회장 뽑고 선수들 입장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리고 나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당시의 사단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지 않겠나. 긴 설명 하고 싶지도 않다. 삼성 K 선배가 삼성 선수들 끌고 나갔고, 안 따라 나온다고 고함 지르고 난리 치고. LG는 삼성이 나가는데 우리는 왜 남아 있냐고, 우르르 따라 나가고 그랬다. 아주 가관이었다. 200여명 모였던 선수들이 8개 구단 수는 맞췄지만 100명도 남지 않았다. 지금도 그 자리에 있었던 야구 팬들에게 너무 죄송한 기억이다. K 선배가 나가는 순간 나는 야구를 못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산 대표는 나오지도 않았고, 얼떨결에 내가 대표를 하게 됐다. 최동원 선배가 구단에게 보복 당한 학습효과가 있어서 그렇게 안 되려고 진짜 총회 개최 의지를 다지고 또 다졌는데….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선수협 결성 목적은 뭐였나.

“당시 2군 및 대부분 선수들의 형편은 정말 최악이었다. 끼니 걱정을 했을 정도다. 야구 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스타 선수들이 나서서 힘없는 2군 선수들을 보호하자는 의도였다. 최저 연봉을 개선하고, 구단의 노예 종속 관계인 프로야구 규약을 개선하고, 선수 권익을 보호하고…. 일단 뭐든 개선해야 했다.”

-그렇게 선수협이 결성됐고 대변인을 맡아 수려한 언변을 뽐냈다.

“이제야 말하지만 당시 대변인 자체가 없었다. 아예 그런 직책은 있지도 않았다. 원래 발기문을 읽기로 돼있었는데 양준혁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자들 수백 명이 앞에 있으니 갑자기 나보고 하라고 하더라. 단지 사투리를 안 쓴다는 이유로. 싫다는 눈치로 째려보니까 계속 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했다. 당시만 해도 노조라고 하면 기업이나 국민들이 엄청 안 좋은 시각으로 볼 때다. 노조는 시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상황에서 노조 대변인을 한 셈이다.”

-창립총회 마친 기분이 궁금하다. 벅차오를 법도 한데.

“전혀. 완전 망했다는 분위기였다. 삼성 K 선배가 삼성 선수들 때리려고 하면서 데리고 나갔지, 그날 벌어진 온갖 안 좋은 모습을 국민들이 다 봤다고 생각하니 구단도 내쫓을 것이고 여론도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소란이 벌어지니 선수들 동요가 상당했다. 기자들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고. 총회 자체가 파장 분위기로 치닫는데 아무도 설명을 안 하는 거다. 갑자기 울컥해서 내가 ‘여러분, 기자 분들, 팬 분들 오늘 우리가 창립을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왜 K 선배가 저러셨는지 이따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왜 싸웠는지 궁금하시죠? 우리가 순수한 의도로 이 곳에 모였다는 것을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제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했다. 선수들이 다 나가려다 반이 남었다. 집에 가려던 기자들이 다시 왔다. 대변인, 아니 인생 전체에서 가장 잘한 코멘트라고 생각한다. 대변인 때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고.”

-새벽 몇 시에 끝났나.

“2시쯤 끝났다. 다들 너무 지치고 힘이 빠져서 과연 법률적으로 이 정도 선수 인원을 갖고 선수협이 발족 가능한지만 자문하고 뻗었다. 술 마실 분위기도 전혀 아니었고 이제 망했다는 생각이 99%, 그래도 이제 시작은 했다는 생각이 1%였다. 삼성 K 선배에 대한 원망도 쏟아졌다. 어떻게 총회에서 그럴 수 있는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 다음 날부터 구단에게 협박도 오고 회유도 들어오고 하니까 8개 구단 대표들이 합숙을 시작했다. 하일성 당시 해설가가 선수들 데려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많이 도와주셨다. 당시 분위기는 선수협 도와주면 절대 안 되는 분위기였지만 정말 많이 도와주셨다. 두산 박철순 선배도 도와주셨고.”

-두산 구단은 뭐라고 했나.

“난리가 났다. 양준혁하고 내가 선수협의 간판처럼 나오니 마치 내가 선수들 모이라고 한 것처럼 됐다. 구단주 입장에서는 얼마나 나를 미친놈이라고 봤겠나. 진짜 구단이 잘해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은 거다. 하지만 전혀 후회는 안 했다. 2~3년 구단에게 고마웠고 잘 나갈 수 있지만 그동안 수년 간 선수 계약에 대한 울분이 있었고, 그 울분이 더 크니까. 2군 선수들 너무 불쌍하니까. 잘했다, 잘한 일이다, 이렇게 최면을 걸었다.”

-김인식 감독은 뭐라고 했나.

“구단 홍보팀이나 운영팀은 너 왜 그러냐, 미쳤냐고 했다. 선수들도 날 피했다. 가장 친한 후배들도 내 눈을 피했다. 선배들은 전부 날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감독님은 오죽 했겠나. 그깟 선수 한 명을 책임 못 졌다고 구단에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줬겠나. 너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하시길래 ‘죄송합니다. 갑작스런 결정은 아니고 이전부터 이런 점은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고 말씀드렸다. 감독님의 ‘알았다’고 하시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도 너무 죄송할 따름이다.”

-무척 외로웠겠다. 선수들이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

“어디 나뿐이겠는가. 구단 대표들 전부 외로웠다. 심지어 양준혁은 해태 이호성이 못 가게 해서 선수를 데려 오는데도 무척 고생했다. 해태에서 ‘네가 무슨 대표냐’고 했을 정도다.”

-그렇게 길거리로 나섰다. 시민들의 지지가 상당했다.

“KBO와 구단들이 모두 방출시키겠다고 했다. 프로야구 개막을 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선수협을 지지해 달라는 전단을 돌리고 서명을 받으러 서울역, 강남역, 동대문, 남대문, 경실련, 참여연대, 국회등 정말 전국을 다 돌아다녔다. 사인만 수만 장을 한 것 같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야구장에 있어야 할 선수들이 추운데 고생하니 안쓰럽게 보셨던 것 같다. 손을 꼭 붙잡아 주면서 힘내라고, 뭔지 잘 모르지만 우리 선수들 고생 많다고, 꼭 다시 야구공을 잡으라고 해주셨다. 그 때 만난 분들이 지금 내 모습을 보고 뭐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정말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전부 은인들이다.”

-선수협이 실질적으로 대중에게 인정받는 시점이 언제라고 생각하나. 이승엽 가입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MBC ‘100분 토론’ 나갔을 때라고 생각한다. ARS로 찬반 투표를 하는데 역대 최고로 찬성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5000대100 수준으로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국적인 방송에서 너희들이 하는 일이 맞다고 검증을 받은 것 같았다. 처음으로 ‘잘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겠구나, 우리가 미친 놈들은 아니구나, 다들 공감을 하고 있구나, 팬들이 버리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방송 나가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처음으로 기분 좋게 잤던 것 같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현우 기자 canne@kmib.co.kr, 사진=강병규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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