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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고급옷 입어볼 기회는 드릴게”… ‘열정 모델’ 모집글 논란

김민석 기자 기자입력 : 2014.11.11 14:50:55 | 수정 : 2014.11.11 14:50:55


대다수 기업들의 구인 글에서 빠지지 않는 단어가 ‘열정’이기 때문일까요. 취업 전선에 뛰어든 젊은이들 사이에서 ‘열정 페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기관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경험되니 적은 월급(혹은 무급)을 받아도 불만 가지지 마라. 너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라는 태도를 보일 때 이를 비꼬는 말입니다. 열정 페이란 말 속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로 치달은 사회 분위기에 대한 냉소가 담겼습니다.

덩달아 등장한 ‘열정 페이 계산법’도 눈길을 끕니다. 이 계산법에 따르면 ‘열정과 재능이 있으면 돈을 조금만 줘도 된다’로 귀결됩니다. “너는 어차피 경력을 쌓아야 하니까 공짜로 일하라” “너는 어차피 공연하고 싶어 안달 났으니까 공짜로 공연하라” 등 여러 버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추가됐습니다. “너는 어차피 코스프레를 하고 싶어 할 테니까 공짜 모델이 되라. 고급 옷을 입어보게 해주는 게 어디냐.”

11일 오전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에 ‘한복 의상 코스프레팀 지원하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랐습니다. 오는 27일 ‘서울코믹월드’ 대회를 앞두고 한복의상업체에서 일반인들을 상대로 의상 모델을 모집하는 글인데 내용이 다소 도발적입니다. 서울코믹월드는 아마추어 만화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고 서로 교류하는 만화 종합 행사입니다.

업체 관계자의 말을 요약하면 “참여한 사람들은 고급 의상을 무료로 입어보면서 멋진 추억이 남고, 업체는 무료로 의상을 대여한 후 사진이 남는다. 물론 촬영된 사진은 상업용으로 쓸 예정이다. 무단 불참이 우려되므로 보증금으로 5만원을 받겠다” 입니다. 신체적 요구 사항도 까다롭습니다. 여성은 키 160㎝ 이상, 체중 55㎏ 이하, 남성은 키 175㎝ 이상, 체중 70㎏ 이하로 제한했네요. 참가자 선정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당사 취향 기준”이라고 말합니다.

최근 패션 업계에서 터져 나온 ‘10만원 월급 인턴’ 보도의 여파가 남았기 때문일까요. 네티즌들은 또 한 번 난리가 났습니다. 이들은 “이것이 바로 창조경제” “무료로 사람쓰겠다면서 상업적 이용을 당당하게 밝혀 당황스럽다” “무급 인턴이 유행하다보니 이젠 사람이 아주 우습게 보이나 보다” 등의 댓글을 달았습니다. 한 네티즌은 “공짜로 사람 쓰는 것도 모자라 보증금을 내라니… 열정 호구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고 한탄했습니다.

업체 측은 반발이 예상보다 크자 “20만원 상당의 의상을 무료로 대여하는 대신 사진을 원하는 것일 뿐”이라며 “참여하는 즐거움을 아는 분, 모델료 없이 열정으로 참여하실 분만 지원하길 바란다”고 답했습니다. 말을 덧붙일수록 논란이 커지자 결국 오후 2시쯤 해당 글이 삭제됐네요.

열정 페이는 삶의 질이 상승하던 사회에서 자란 기성세대와 출발부터 미래까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사회에 직면한 젊은이들 간의 충돌을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젊은이들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하면 할수록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 세대’가 늘어나는 구조의 악순환에 빠진 셈입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인용해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부조리한 관행이나 조직문화도 헝그리 정신의 산물로 여겼던 기성세대가 지금도 같은 사고를 고수한다면 청년세대와 문화적으로 부딪힐 수밖에 없다. 헝그리 정신으로 버티면 뭔가 기대할 수 있었던 시대와 출발부터 모든 게 불확실한 시대, 두 시대의 충돌이 열정 페이란 말을 빚어낸 것이다.”

김민석 기자 ideae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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