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日방송에 속았다”…‘얼짱 파이터’ 임수정 격정 토로

기사승인 2011-07-29 1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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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日방송에 속았다”…‘얼짱 파이터’ 임수정 격정 토로

[쿠키 톡톡]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해요. 일본 방송국에서는 사전에 그냥 쇼라고만 했을 뿐 이렇게 정색을 하고 싸우는 경기가 아니라고 했거든요. 상대 남자선수가 저의 부상을 알고도 무차별 공격했다고요.”

지난 3일 방송된 일본 예능 프로그램에서 벌인 일본의 남자 코미디언 3명과의 격투 시합에서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는 등 격투기 선수로서의 자존심을 구긴 임수정(26·여·용인대 격기지도학과) 선수는 29일 본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일본 방송의 치졸함에 분통을 터뜨렸다.

임 선수는 지난 3일 일본 지상파 TBS에서 방송된 ‘불꽃체육회 TV 슛 복싱 대결2’(이하 불꽃체육회)라는 스포츠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했다 남자 선수들이 정색을 하고 달려드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이를 두고 한국 네티즌들은 “한류의 득세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일본이 경기를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비판을 퍼부었다.

그는 방송 섭외 과정부터 자신이 속았다고 전했다. 임 선수는 “일본 방송국 TBS에서 섭외 요청을 받았을 때는 독일에서의 시합 후유증으로 다리 부상을 입고 쉬고 있던 중이었다”며 “TBS측에 다리 부상으로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린 뒤 그래도 출연이 괜찮겠냐고까지 물었는데 TBS는 ‘리얼이 아니라 쇼니까 아무래도 괜찮다’고 대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TBS측이 상대방 남자 선수들의 얼굴을 가격하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했다.

“방송 5일 전에 급하게 연락을 받고 처음 방송국을 찾아가 미팅을 할 때 방송국 측에서 ‘얼굴은 세게 때리지 말아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링에 올라가기 직전에 다시 ‘얼굴을 때리지 말라’고 강조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이상해서 제가 다시 물어보니 때려도 된다고 하는 등 방송국 관계자들도 우왕좌왕했어요.”

임 선수는 TBS측이 ‘한국에 얼짱 파이터를 소개하고 싶다’고 해 출연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사실 출연료는 얼마 안돼요. 심지어 한국 TV 출연료보다 적었습니다. 물론 부상도 있었고요. 그런데도 TBS측은 저에게 한국의 여성 파이터를 소개하고 싶다면서 그냥 편안하게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만 믿고 출연을 하게 됐어요. 방송 직전에 카메라 촬영할 때만 몸을 풀었고 카메라가 없을 때에는 함께 방송국에 간 매니저 언니랑 과자 먹고 놀고 있었죠.”

임 선수는 1라운드가 시작한 뒤에야 경기가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첫 라운드에 나선 카스가 토시아키(32)가 정색을 하고 달려들며 육중한 몸을 앞세워 임 선수를 압도했다. 임 선수는 경기 시작 8초만에 카스가의 왼발 하이킥에 쓰러졌다. 카스가는 코미디언이긴 하지만 2007년 K-1 일본 트라이아웃에 출전한 경력의 선수급 실력자로 임 선수보다 30㎏ 가까이 무겁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방송국 관계자들조차 깜짝 놀라 촬영을 중단했다고 임 선수는 전했다. 그는 “방송국 관계자들도 수위가 너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방송을 1라운드 중간에 중단시켰다”며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던 저도 갑작스러운 공격에 너무 화가 나서 촬영을 그만둘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임 선수는 무엇보다 격투가로서 자존심을 구겨 속이 상한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여자이고 선수이니 당한다고 생각됐어요. 그래도 중간에 경기를 그만두면 두고두고 더욱 큰 상처를 입을 거라 믿었고요. 그래서 이를 꾹 악물고 경기를 계속했습니다. 아무리 방송사가 거짓말을 했다고 해도 격투가로서 제가 이런 상황에 대비하지 못했다는 자책도 들었고요.”

임 선수는 이번 경기로 독일 시합에서 당한 부상이 더욱 심해졌다고 했다. 왼쪽 정강이 안쪽 부분의 근육이 파열됐고 피가 고였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본 공항에서는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휠체어를 타야할 상황에까지 빠졌다. 한국 병원에서는 “두 달간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글러브도 사전에 약속됐던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원래 저도 작은 글러브를 끼기로 돼 있었는데 웬일인지 경기 당일 저에게 큰 글러브가 주어졌다”며 “글러브가 너무 커서 상대적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임 선수는 무엇보다 첫번째 선수로 나섰던 카스가가 사전 예고도 없이 자신을 무차별 공격하고도 아무런 사과를 하지 않아 불쾌했다고 했다.

“사실 이해는 됩니다. 남자가 링에서 여성에게 맞으면 불쾌할 수 있겠죠. 링에서 흥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심했어요. 당시 일본 킥복싱 관계자들이 저에게 ‘카스가가 미친 것 같다. 눈빛이 이상해져 있었다’고까지 했으니까요. 그 사람은 끝내 저에게 사과하지 않았어요. 정말 속상합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