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2014년 세월호와 1993년 서해훼리호는 '판박이' 사고

기사승인 2014-04-17 1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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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수백 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세월호 참사와 1993년 10월 발생한 전북 부안 서해훼리호 침몰사고가 ‘판박이’처럼 닮아가고 있다.

21년간의 세월을 건너 발생한 두 여객선의 침몰사고는 승선인원을 명확히 헤아리지 않은 선사 측의 업무태만부터 기상여건을 무시한 출항, 선장과 1등 항해사가 각각 휴가를 떠난 것까지 쌍둥이처럼 비슷하다. 시공을 초월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불행한 참사가 반복된 것이다.

세월호의 경우 16일 사고 당일부터 승선인원이 459명부터 477명까지 오락가락했다. 중앙재해대책본부와 사고선사, 서해지방해경청 등은 너나할 것 없이 승선인원을 거듭해 수정 발표하는 혼선을 빚었다. 구조자 중복집계 등의 오류를 바로잡고 현재 475명으로 최종 확정했지만 이마저 불분명하다.

서해훼리호 역시 사고 당시 승객관리에 무척 소홀했다. 서해훼리호는 침몰사고 직후 승선정원이 221명(승무원 14명 승객 207명)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승선인원은 무려 362명이었다.

사고발생 23일만에 마지막 시신을 인양해 사고수습 작업이 마무리될 때까지 인양된 시신만 무려 292명에 달했다. 해경은 사고 초기 이 배에 140여명이 탔다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두 선박이 기상예보에만 의지한 채 출항을 강행한 것도 마찬가지다. 악화된 기상여건을 무시했다가 나란히 참사를 겪었다. 16일 오전 인천항에서 짙은 안개 속을 뚫고 여객선터미널을 떠난 배는 세월호가 유일했다. 서해훼리호도 당시 22년간 같은 항로를 운항한 선장의 노련함에만 의지했다가 불행을 겪었다. 무리한 출항을 통제하는 기능을 전담할 관련기관이 예나 지금이나 없는 셈이다.

망망대해의 운항을 책임질 세월호의 선장과 서해훼리호의 1등 항해사가 사고 당일 휴가를 떠났던 점도 비슷하다. 선박운항의 모든 권한을 틀어쥔 선장과 1등 항해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두 여객선은 병풍도와 임수도 해역에서 최후를 맞았다.

두 여객선의 사고해역은 모두 조류가 거세고 돌풍이 자주 부는 곳이다. 사고 직후 두 여객선에서 소중한 인명구조의 마지막 보루가 돼야할 구명보트가 펼쳐지지 않은 점도 동일했다.

해경 관계자는 “몇 명이 탔는지 모른 채 무리한 출항을 한 것부터 조류가 센 해역에서 침몰한 마지막 상황까지 두 여객선의 궤적이 흡사하다”며 “세월호에서는 생존자가 구조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랄뿐”이라고 말했다.

광주=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