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여객선 침몰] 배에서 온 전화 “엄마, 반쯤 잠겼는데 바다밖에 안보여”

기사승인 2014-04-16 17: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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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16일 오전 8시57분.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김단비(17)양의 어머니는 수학여행 간 딸의 전화를 받았다. 김양은 “엄마,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걱정마세요. 구명조끼 입었어요”라고 했다. 놀란 A씨는 “무사하냐”는 말만 반복해 물었다. 전화를 끊은 딸은 엄마에게 휴대전화 메시지로 동영상 파일 2개와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자신의 사진 3장을 보냈다.

동영상에는 사고 당시 흔들리는 배 안의 모습과 학생들의 대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한 학생이 “기울어졌어! 배에 물이 고여, 물이!”라고 외쳤고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김양이 촬영한 다른 동영상에는 구명조끼를 입은 여학생 2명이 등장한다. 김양은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면서 “어떡해. 엄마 안녕.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녹음했다. 기울어진 배 천장을 화면에 담으며 “기울어졌어. 보여?”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양과 친구들은 이 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당황하진 않은 모습이었다.

이후 김양의 휴대전화는 연결되지 않았고 A씨는 놀란 마음에 학교로 달려갔다. 오전 10시21분 김양은 친구의 휴대전화로 “엄마 나 구출됐어. 해양경찰 아저씨가 구출해줬어”라고 연락해왔다. A씨는 “단비야 고맙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김양은 “휴대전화를 물에 빠뜨렸어. 다른 친구들도 이 전화로 통화해야 하니까 끊을게요”라고 한 뒤 낮 12시15분쯤 카카오톡 메신저로 ‘엄마 나 단빈데 집에 어떻게 가?’라는 메시지가 왔다. A씨는 ‘엄마가 갈게’라는 답장을 보낸 뒤 사고 현장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고 직후 많은 학생이 이렇게 부모에게 다급한 상황을 알렸다. 가라앉는 배에서 걸려온 아이들의 전화,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부모와 자녀의 ‘침몰 교신’에는 절망과 안도가 교차했다.

박홍래(17)군은 오전 9시쯤 어머니 김혜경(45)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군은 “엄마, 배가 반쯤 기울어져서 아무것도 안보여요. 바다밖에 안보여요. 배에서 방송으로 구명조끼를 입으라는데 나 아직 구명조끼 못 입었어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아들이 더 불안해할까봐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킨 뒤 “구명조끼 꼭 입고 방송에서 하라는 대로 잘 따르면 괜찮을 거야”라고 말해줬다. 이 대화를 끝으로 아들은 더 이상 휴대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씨는 무작정 학교로 달려갔다.

김수빈(17)군의 어머니 정경미씨는 오전 11시30분 기다리던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김군은 “무사히 구조됐다. 휴대전화를 물에 빠뜨려서 한 친구의 휴대전화로 여럿이 돌아가며 통화하고 있다”면서 안부를 전해왔다. 정씨가 “다친 데 없냐. 괜찮으냐”고 묻자 김군은 “괜찮아요, 엄마. 많이 놀랐는데 다치진 않았어요”라고 했다.

자녀들과 연락이 닿지 않은 부모들은 학교로 달려가 오열했다. 사고가 나기 전인 오전 8시쯤 아들 이승민(17)군과 통화했다는 B씨는 “전화기 너머에서 바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아들은 ‘아직 배에 있다’고 했고 잘 다녀오라는 말만 해줬다”며 “이후 연락이 닿지 않아 너무 무섭다”고 흐느꼈다.

학교에 달려와 애태우던 학부모들은 “전화 왔다”는 다른 학부모의 외침이 들릴 때마다 그 주변에 몰려들었다. 오전에 알려졌던 ‘전원 구조’ 소식이 낮 12시쯤 오보로 밝혀지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마침 구조된 김소희(17)양이 어머니에게 “아직 아이들을 다 구하지 못한 것 같다”며 전화를 해 왔고 주변 부모들은 오열했다. 자녀와 연락이 닿지 않은 부모들은 “방금 전화한 아이 번호 좀 알려 달라. 내 딸이랑 같이 있는지 물어보겠다”며 울먹였다.

안산=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