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보기관 수장의 굴욕… 전국 생중계 TV 카메라 앞에서 고개 숙인 남재준

기사승인 2014-04-16 0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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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남재준(70) 국가정보원장이 전국에 생중계되는 TV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국정원 직원들이 법정 증거를 조작했다는 수사 결과 발표가 나온 지 20여시간 만이다. 남 원장이 자처한 ‘공개 사과’는 바닥까지 추락한 국가 정보기관의 현 상황을 상징한다. 그는 1년간의 재임 기간 검찰 압수수색을 두 차례나 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남 원장은 그러나 ‘사과는 하되 사퇴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남 원장은 15일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에서 “중국 화교 유가강(유우성) 간첩사건과 관련해 증거 서류 조작 의혹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을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며 “일부 직원이 증거 위조로 기소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데 대해 원장으로서 참담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이번 사태를 ‘사법체계 근간을 흔드는 엄중한 사건’으로 규정하며 국정원 직원들의 책임을 묻자 사태의 심각성을 의식한 듯 서둘러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남 원장은 “낡은 수사와 절차 혁신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강도 높은 쇄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증거조작 사건으로 논란이 됐던 대공수사권에 대해서는 “국정원 본연의 업무인 대공 수사능력을 한층 더 강화하겠다”고 오히려 의지를 드러냈다. 남 원장은 “뼈를 깎는 개혁” “환골탈태” “강도 높은 쇄신” 등의 표현을 쓰며 자체 개혁 의지를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남 원장은 “국정원이 새로운 기틀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현 상황이 ‘북한 미사일 발사와 4차 핵실험 위협, 다량의 무인기에 의해 우리 방공망이 뚫린 엄중한 시기’라며 국정원의 존재 의미를 강조했다. 남 원장은 그러나 준비한 원고만 3분 가량 읽었고 질의응답은 받지 않았다.

남 원장의 사과문 발표는 ‘사퇴론’에 대한 정면 돌파 성격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날 사퇴한 서천호 국정원 2차장 선에서 국정원 수뇌부 책임론을 마무리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남 원장은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정원장으로서 책임지겠다”고 자신의 ‘역할론’을 드러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이날 남 원장 등 8명을 국가보안법 무고·날조 등 혐의로 서울 서초경찰서에 고발했다. 국정원 주요 간부와 유우성씨 사건 공소유지를 담당했던 검사 2명,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소속 검사 2명 등이 포함됐다. 민변 측은 “검찰의 수사 결과와 남 원장의 사과 기자회견 모두 국민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며 “유일하게 검찰을 대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경찰에 고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남 원장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줬다. 박 대통령은 남 원장의 사과문 발표 직후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국정원이) 또 다시 국민의 신뢰를 잃게 되는 일이 있다면 반드시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해 사실상 남 원장을 재신임했다.

박 대통령은 “유감스럽게도 국정원의 잘못된 관행과 철저하지 못한 관리체계에 허점이 드러나 국민께 심려를 끼쳐 드렸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정원은 뼈를 깎는 환골탈태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뼈를 깎는 개혁’ ‘환골탈태’ 등의 표현은 남 원장의 사과문에도 등장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웅빈 신창호 기자 imung@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