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해된 선배, 우리가 진실을 밝히겠습니다”…이대 후배들, 진상규명 앞장

기사승인 2013-06-04 08: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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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이화는 故 하지혜 동문을 잊지 않겠습니다.”

4일 2개의 일간지에 이같은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2002년,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던 스물세 살의 법학도가 공기총 청부 살인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가해자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도 병원 특실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문구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중견기업 회장의 전 부인 윤모(68)씨가 자신의 사위와 이종사촌인 하씨의 관계를 불륜으로 의심해 하씨를 청부 살해한 사건을 거론했다. 윤씨는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공방 끝에 살인교사(청부살인)죄가 확정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유방암 치료 등의 진단서를 12차례 제출하고는 교도소를 나와 병원의 특실에서 지내며 40여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외출을 하는 등 사실상 자유롭게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 SBS ‘그것이 알고 싶다-사모님의 이상한 외출’편 방송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허위 진단서와 형 집행정지에 대한 진실 규명을 요구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더는 ‘유전 무죄, 무전 유죄’가 용납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하게 심판 받는 그날까지, 이화가 지켜보겠습니다.”

이 광고를 실은 이들은 ‘정의로운 사회를 염원하는 이화여자대학교 재학생과 졸업생 일동’이었다. 하씨의 학교 선후배들이다.

방송으로 이 사건이 재조명되자 하씨의 모교인 이화여대 교내 커뮤니티인 ‘이화이언’에서 하씨를 추모하고 사건의 교훈을 기억하고자 광고를 내자는 제안이 나왔다. 뜻을 모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모금 계좌를 개설하고 인터넷을 통해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이 들의 뜻을 모았다.

총진행을 맡은 조모(사회대·23)씨는 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피해자가 동문이라는 사실에 관심이 있었지만, 진실을 알고서는 대한민국의 힘없는 누구라도 제2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분노했다. 다시는 이런 부조리가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에 관심을 촉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모금을 통해 1500여명이 2800만원을 모았다. 이대생들은 모금계좌에 입금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 대신 ‘첫 월급 선배님께’‘고시생의 전 재산’‘백수라 미안해요’‘아버님 힘내세요’‘기억하겠습니다’‘야식만 줄였어도’ 등의 글귀를 남겼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이날 광고를 실은 것이다.

1차 모금 결과는 전날 두 일간지 1면에 광고로 나타났다.

이대생들은 일반인까지 참가하는 2차 모금을 실시하고 있다. 지하철과 버스에도 광고를 실어 더 많은 이들이 사건을 알고 정의가 이뤄지기를 촉구하기 바라는 마음이다. 모금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www.ucanfunding.com)에 ‘故하지혜님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광고비 모금 프로젝트 시작’이란 이름으로 이뤄지고 있다. 6월 한달동안 1000만원을 모으는 게 목표다. 크라우드펀딩이란 인터넷에 특정 목표를 제시하고 여기에 동의하는 이들에게서 모금을 하는 것이다. 모금을 위한 동영상도 학생들이 만들었다.



크라우드펀딩은 그 자체가 하씨 사건을 알리는 광고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무기징역을 받은 수감자가 어떻게 수십차례에 걸쳐 형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진단서를 발급한 병원과 의사, 이를 허용한 검사와 판사를 조사해 진실을 규명하고 위법한 사실이 있을 경우 처벌하는 것이다.

펀딩 사이트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댓글을 달고 송금했다. 박모씨는 “가족분들 힘내셔요!! 분명 하늘아래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 천벌받는날이 올거예요.인두겁을 쓰고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한 사람들을 모두가 용서하지 않을겁니다.”라는 글을 남겼고, 김모씨도 “오늘 신문 광고를 보고 안타까운 일이 다 있다고천벌받을 놈 쌔고 쌨다고 욕하면서 봤는데 여기서도 이렇게 보네요 적은 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자 기부합니다.”라고 썼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서도 이같은 모금 운동이 알려지고 있다. “판사도 검사도 공권력도 썩고, 언론 방송과 정의도 모조리 사라지고 없는 나라! 이래도 괜찮은 나라라면
분하고 원통해서 어찌살랴!”“서민들에겐 거의 최후보루라고 할 수 있는 법제도가 가진자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리는 듯한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네요.하지혜님 부디 영면하시길 빕니다.”는 등의 문구와 함께 진실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 / 트위터 @fatty_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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