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도 성적 자기결정권 존재” 대법원 “강요된 성관계 견딜 의무 없다”

기사승인 2013-05-17 02: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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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정상적인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아내도 여성으로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 ‘부부가 강제로 맺은 성관계는 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6일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강제로 성관계를 맺은 혐의(특수강간 등)로 기소된 강모(45)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3년6개월에 정보공개 7년,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강간죄의 객체인 ‘부녀’란 성년·미성년, 기혼·미혼을 가리지 않고 여자를 지칭하는 만큼 아내도 포함된다”며 “부부 사이에 동거 의무가 있지만 강요된 성관계를 견뎌야 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강씨는 2011년 아내를 흉기로 위협하고 폭행하며 3차례 강제 성관계를 맺어 1·2심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법률상 아내는 강간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항소했다.

이번 판결은 양성평등 관점에서 변화된 부부 관계의 시대상을 반영했다. 형법 297조에 따르면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할 때’ 성립한다. 강간죄가 들어 있는 형법 32장의 죄목은 1953년 제정 당시 ‘정조에 관한 죄’였다가 95년 ‘강간과 추행의 죄’로 변경됐다. 지난해 12월 개정(6월 19일 시행) 때는 ‘부녀’가 ‘사람’으로 바뀌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형법의 변화는 강간죄가 ‘여성의 정조’나 ‘성적 순결’이 아니라 자유롭고 독립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법감정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18일 공개변론에서도 검찰 측은 “남성 중심적 성문화가 바뀌어 여성 지위가 향상됐기 때문에 배우자 강간죄는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전원합의체에 참석한 13명 대법관 중 이상훈 김용덕 대법관은 “강간죄로 처벌하지 않더라도 폭행·협박에 대해 처벌이 가능하다”며 “굳이 판례를 변경할 정도의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이번 판결로 이혼 소송을 앞둔 아내가 강간죄를 악용할 우려도 제기됐다. 그동안 강씨 변호인 측도 “사이가 틀어진 부부 사이에 강간 고소가 보복 수단이 될 수 있고 가정 파괴를 가속해 부부간 신뢰관계를 해칠 수 있다”며 “형벌이 부부 침실까지 넘보는 건 지나친 관심”이라고 주장했다. 강원대 로스쿨 윤용규 교수도 “부부 관계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아내 강간을 처벌하면 부인이 이혼소송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악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부부 사이의 은밀한 성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자제해야 하지만 아내에 대한 성폭력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으면 여성의 피해가 심각해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부부 강간죄를 다룰 때 특수성을 고려해 상처가 덧나거나 혼인의 파탄이 촉진되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웅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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