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금 한푼 못받고”…사이판 총기난사 피해자의 슬픈 크리스마스

기사승인 2009-12-25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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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고작 45분이었다. 학창 시절 같이 공차고 같이 공부하며 꿈을 키우던 친구들과 마흔살이 된 기념으로 함께 떠난 여행의 시간이다. 이번 여행을 위해 매달 4만원씩 4년간 ‘여행계’를 부었고, 마흔이 된 올해 각자의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사이판으로 떠났다. 현지시간으로 11월 20일 오전 10시에 숙소에 도착해 남자들끼리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본격적으로 일정에 나섰다. 그리고 10시 45분쯤 폭죽소리와 함께 등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한국의 병원이었고 보름이 넘는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남은 건 말을 듣지 않는 몸과 막막한 미래였다. 폭죽인 줄 알았던 소리는 총소리였고 등이 뜨거워졌던 건 총알이 척추를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지난달 20일 4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9명을 다치게 한 서태평양 사이판섬 마르피 지역 총기 난동사건. 다친 9명 중 8명이 한국인이지만 이미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다.

“한 마디로 낙동강 오리알 된 거죠 뭐….”

부상이 가장 심각한 박재형(학원강사)씨의 부인 박명숙씨는 현재 처한 상황을 이렇게 압축했다. 박씨가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그저 처량한 느낌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부상자들은 사이판 자치정부로부터 단 한 푼의 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현지에 전례와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보상금과 관련해 우리나라 외교통상부가 준 도움이라고는 “요구했으나 사이판 정부가 거절해 어쩔 수 없다”는 답변, 호소 편지를 보내고 싶다면 여기로 보내라며 준 이메일 주소 4개(미국 국무부, 사이판 관광청, 주한 미국대사관, 주미 한국대사관), “솔직히 개인이 호소해서는 불가능하니 대사관을 이용해라”는 ‘조언’ 정도였다.

명숙씨는 노기가 느껴지는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부산 사격장 화재 사건으로 일본인들 죽었을 때 총리까지 나서 유족들 앞에서 무릎 꿇고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던 것 기억 하시죠?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습니까?”

“보상금 한푼 못받고”…사이판 총기난사 피해자의 슬픈 크리스마스


여행사에 대해서도 서운한 건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여행자보험 들어준 것으로 더 이상 책임이 없다는 식이었다. 여행자 보험으로 박씨 부부가 받을 수 있는 돈은 300만원, 사고 발생 6개월이 지난 후 장애 판정에 따라 수천만원을 받을 수 있다. 장애 정도가 50%면 5000만원, 60%면 6000만원을 받는 식인데 많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돈으로는 치료비만도 빠듯하다. 현재까지 나온 치료비만 1400만원이고 박씨의 상태를 고려하면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돈도 돈이지만 앞으로 살날이 더 걱정이죠.”

학원강사로 일하던 재형씨는 의식은 깨어났지만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인다. 평생 하반신 마비로 살아가야 하는 그는 현재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다. 힘겹게 한마디씩 던지지만 바로 앞에 있는 기자는 물론 옆에 꼭 붙어 앉아있는 명숙씨도 얼굴에 귀를 가까이 가져가야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다. 언제까지 이런 상태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재형씨는 당연하고 곁에서 수발을 들어야하는 명숙씨도 생업에 나설 수가 없다. 두 딸은 이제 네 살, 두 살. 그저 앞이 캄캄하다.

명숙씨는 유명 관광지인 사이판이 그렇게 허술하고 위험한 곳 인줄 몰랐다며 지금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했다.

“총을 맞은 곳이 시내에서 5분 거리에요. 그런데 세상에 휴대폰이 안 터져요. 사람이 피에 젖어 쓰러져있는데 구급차를 못 부르는 거죠.”

우여곡절 끝에 가게 된 현지 병원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최소한 명숙씨의 눈에는 정상적인 병원으로 보이지 않았다. 현지에서 몇 시간만 더 있었으면 남편은 죽었을 거라고 장담했다.

“응급실이라는 곳이 문이 잠겨 있어요. 아무나 들어오면 안 된다고 안에서만 문을 열 수 있고, 문 양 옆에 경비원들이 서 있습니다.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니 직원 1명이 걸어오더라고요. 치료나 바로 받은 줄 아세요? 총 맞고 피 흘리며 실려 온 사람을 1시간 30분 동안 기다리게 하는 병원이 어디 있습니까? 신속하게 치료를 받았다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지도 모르는데….”

총기를 ‘난사’했고 자신도 곧바로 자살했기 때문에 범인이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명숙씨가 묘사한 범인은 달랐다.

“차 안에 앉아 총을 쏠 때 더 가까운 곳에 현지 주민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정확히 관광객들만을 조준해서 쏘더라고요. 매우 침착해 보였어요.”

재형씨는 폭죽소리로 착각하고 있다가 변을 당했지만 주변에는 총격임을 알고 몸을 피한 사람들도 많다. 이들을 인솔한 여행사 가이드도 마찬가지다. 명숙씨는 “명색이 가이드면 소리라도 좀 질러주던가…”라며 말끝을 흐렸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 던져지다보니 지난 일들을 떠올리면 서운하고 원망스러운 것들이 너무나 많다.

재형씨는 올해 크리스마스를 병실에 누워 간병인과 지내야 한다. 줄곧 곁을 지키던 아내가 아이들 크리스마스 챙겨주러 집에 가야하기 때문이다. 재형씨나 명숙씨나 지금껏 살면서 이처럼 가슴 아픈 크리스마스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눈물을 흘려야 하는 크리스마스를 앞으로 몇년 더 맞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명숙씨는 인터넷에 카페(cafe.daum.net/saipanning)를 개설해 안타까운 사연을 알리고 있다. 아직까지 회원수 100명도 안되는 초라한 카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들 부부가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네티즌의 힘’ 밖에 없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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