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의 스몰토크] '막장 정부'?, "달라도 너무 달라" 내시 김처선과 前 대변인 윤창중"

기사승인 2013-05-13 1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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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년 조선시대 내관 김처선이 왕 연산군에게 ‘잘렸다’.

2013년 청와대 대변인 윤창중이 대통령 박근혜에게 ‘잘렸다’


[친절한 쿡기자 - 전정희의 스몰토크]

1505년 김처선이란 조선시대 내관이 왕 연산군에게 ‘잘렸다’.

2013년 정부 대변인 윤창중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잘렸다’.

김처선은 정2품 벼슬이었다. 내관은 중궁 제반 업무를 관장하는 백제 때 용어로 조선시대는 내시부라고 일컬었다. 백제 시대 내관은 관부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내관의 새끼냐 꼬집기도 잘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왕을 보필하는 공직자로서 ‘원칙의 기준’이 되어 생활하던 사람들이 내관이다.

성추문으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윤창중(56) 전 대변인은 조선시대로 치면 왕의 문한(文翰)을 다루는 홍문관, 즉 정2품쯤 된다. 김처선과 벼슬이 같다.

내관 김처선과 청와대 전 대변인 윤창중

한데 두 사람의 처신은 천양지차다.

김처선은 연산군 초기 연산군의 총애를 받았다. 윤 전 대변인도 그러하다.

한데 김처선은 연산군 10년 왕에게 규간(規諫)하다 왕이 열 받아(?) 처선의 팔다리를 잘라 죽였다. 규간은 ‘옳은 도리나 이치로써 왕의 잘못을 고치도록 진언’하는 것을 말한다. 연산군은 모친 폐비 윤씨 문제로 어느 시점부터 폭군이 되어 신하의 부인들과의 간통도 서슴지 않았다.

창기 출신 장녹수가 ‘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와 같이 했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고 했을 정도로 여색에 빠져 있었다. 장녹수는 왕이 종친이나 사대부 부인 강간을 도왔다고 한다. ‘막장 정부’였다.

그런데 절대권력을 쥔 왕에게 내관이란 자가 “늙은 것이 네 조정을 섬겨서 대강 사기(史記)를 읽었사온데 전하와 같은 분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어찌 나라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라고 하니 온전할 리 있겠는가.

직접 칼을 뽑아 처선의 사지를 도륙 낸 연산군은 그래도 성이 안 풀려 활로 쏘기까지 했다고 한다. 야사에는 혀를 끊고, 배도 갈랐다고 전한다.

뿐인가. 처선의 자식을 죽이고, 그의 집을 부수어 못을 팠다. 부모의 무덤도 뒤집어 버렸다. 거기서 끝내면 ‘폭군’이란 말이 붙지도 않는다. 신하 중 처선이란 이름을 금지했고, 처서(處暑)에 ‘처’자가 있다하여 조서로 고치도록 명했다. 처선의 본관 전의현(지금의 세종시)은 아예 없애버렸다. 폐현한 것이다.

‘막장 정부’에 죽음으로 맞선 내관 김처선

어쨌든 윤 전 대변인은 ‘잘렸다’. 공식 용어로 ‘경질’됐다.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바꿨다’는 뜻이다. 이 경질은 ‘글로벌 토픽’이 됐다. 윤 전 대변인의 희대의 성추문 의혹 사건은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 조항에 따라 진실이 가려질 것이다.

13일 박 대통령이 ‘윤창중 사태’에 대해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정확한 사실 관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전 대변인이 이제는 ‘자연인’이기 때문이다.

사실 김처선의 자세는 ‘청와대 사람들’이 가져야할 덕목이다. 원칙의 기준이 되는 것 말이다. ‘사기’를 대강이 아니라 대충만 읽었더라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 청와대 안에서 일어났다.

오죽하면 내관 김처선이 죽을 줄 뻔히 알면서 바른 말 했겠는가? 잘난 사대부들이 입 꾹 다물고 있어서였다.

‘좋은 시대’에 태어나 큰 벼슬하는 이들이 참 많다. 좋은 시대에 태어났으니 ‘사고’ 치지 말고 바른 말을 좀 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