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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7·4성명 분위기 이용 박정희 정권 흔들려 했다”… 美 NKIDP팀 등 루마니아 문서 발굴
  • 입력:2012.07.03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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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1972년 7월 4일 발표된 남북공동성명(7·4성명)으로 상징되는 남북대화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기반을 흔들어 야당 진영의 집권을 도우려 했음을 보여주는 외교문서가 2일(현지시간) 공개됐다.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북한국제문서연구사업(NKIDP)’ 프로젝트팀이 북한대학원대학교와 공동으로 발굴한 70년대 7·4성명 이후 상황을 담은 루마니아 외교문서에는 당시 북한이 남북대화를 추진한 속셈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남한 정부를 고립시키려 했던 이른바 ‘평화·선전공세’가 드러난다.

73년 3월 8일자 루마니아 외교문서를 보면 당시 니콜라이 차우세스쿠 국가평의회 의장을 예방한 김동규 북한노동당 비서는 북한이 71년부터 강화한 ‘대화공세’에 대해 설명한다.

김동규는 “남측과의 대화를 통해 남한 대중들에게 혁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아울러 남한 괴뢰도당을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고 혼란상항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대화를 통해 중요한 승리를 거뒀다고 자평한 뒤 “남한 혁명운동가들이 지하에서 그들의 활동을 전개해나갈 때 솔직히 현재의 상황은 (대화) 이전에 비해 매우 우호적”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김동규는 남북공동조절위원회와 남북적십자대화 등의 대화 채널에 남한의 노동자, 농민, 학생, 지식인, 야당세력 등 북한에 동정적인 세력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은 7·4성명 이후 박정희 정권이 선포한 72년 ‘10월 유신체제’로 인해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된다. 박정희 정권이 야당의 남북대화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한 북한은 몇 가지 다른 전술을 구사한다. 73년 3월 9일과 17일 평양주재 루마니아 대사관 보고 전문을 보면 북한은 73년 3월 평양에서 개최된 2차 남북조절위에서 “한반도의 군사적 사안을 다른 어떤 안건보다 먼저 해결하자”고 요구한다.

북한은 이어 7·4성명 1주년이 되는 73년 여름 남한에 대한 공격을 더욱 노골적으로 전개한다. 아울러 북한은 자신들의 대화공세 전술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알고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직접 체결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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