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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 줄게 맛을 다오… 국내 맛집 평가서 ‘블루리본 서베이’ 동행취재
  • 입력:2011.09.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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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 줄게 맛을 다오… 국내 맛집 평가서 ‘블루리본 서베이’ 동행취재 기사의 사진

“오늘 뭐 먹지?” 허기와 함께 하루 세 번씩 매일같이 이 고민이 찾아온다. 생각하기 싫다고 소중한 식사시간을 아무거나 먹고 때우며 흘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 나이 들면 더 그렇다. 고민 끝에 잘 고른 맛집은 삶의 커다란 활력소다.

프러포즈, 결혼기념일 등 인생의 특별한 날에 갈 적절한 식당을 고르는 것도 사람 사는 데 매우 중요한 문제다. 맛은 기본이고 분위기, 서비스 어느 것 하나 부족했다간 대사를 그르칠 수 있다. 그래서 식당 정보는 언제나 현대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인터넷에는 맛집, 레스토랑 정보가 넘쳐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일부 비양심적 파워 블로거들이 식당 주인에게 소개에 따른 뒷돈을 요구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보인다. 일부 식당에선 사람을 써서 평판 댓글을 조작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TV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신뢰도 역시 땅에 떨어졌다. 6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 쇼’는 맛집 프로그램이 거짓말과 비리, 조작으로 버무려졌음을 고발했다. 그럼 도대체 뭘 믿지?

미식가들, 요리를 조각조각 분해하다

27일 점심시간 서울 역삼동의 한 한정식 식당. 고풍스러운 소품들로 꾸며진 방에서 40대 여성 3명이 상에 둘러앉아 가벼운 수다를 나눈다. “부산영화제 표가 생겨서 가보려고.” “좋겠다. 근데 부산엔 뭐가 맛있었더라?”

하지만 식사가 들어오자 세 사람의 눈빛이 싹 달라진다. “이건 뭐죠? 이건 또 뭐예요?” 음식을 상에 내는 종업원에게 꼬치꼬치 캐묻는다.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모양새는 아니다. 떡이 처음부터 상에 올라와 있다. “이건 후식 아닌가요?” 이 집에선 원래 처음부터 낸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세 사람은 재빠르게 눈빛으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죽과 전을 시작으로 여러 요리와 반찬식이 상에 올랐고, 종업원이 방을 나가자 본격적인 품평회가 열린다. 놋그릇에 담긴 죽은 먹기에 적당할 정도로 따뜻하고, 소스를 살짝 뿌린 야채는 아삭아삭하다. 하지만 세 사람의 혀는 이 정도에 전혀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다. “죽순인데 도통 맛을 모르겠네. 간이 전혀 안 됐어. 이 집은 원래 이렇게 만드나?”

세 사람은 요리 하나하나, 반찬 하나하나를 한 젓가락씩 꼼꼼하게 먹는다. “좀 짜지 않아?” 이들은 지적을 이어가면서도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 먹는 종류가 많다보니 행여나 뭘 먹었는지 잊을까봐 그렇단다. “여긴 어느 지역식으로 만드는지 모르겠어. 여기저기 다 섞여 있어.” “요샌 한 가지 요리에 특화된 곳이 아니면 좋은 데 찾기가 어려워.” 얼음보다 차가운 평가가 계속된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니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최종 평가는 ‘집밥이 그리운 아저씨들이 외식할 만한 식당’. 평소 외식을 많이 하는 직장인이 외식에 질려 집밥을 먹고 싶은데 접대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또 외식을 해야 할 때 이 식당에 온다면 별다른 불평 않고 잘 먹을 수 있을 것이란다. 좋다는 뜻입니까? “레시피가 궁금한 요리가 하나도 없네요.” “다시 오고 싶진 않아요.”

그나저나 여러분은 누구시기에 이렇게나 잔인하게 평가하시는 겁니까? “저희는 ‘블루리본 기사단’이에요.” 기사단은 국내 레스토랑 평가서인 ‘블루리본 서베이(이하 블루리본)’의 음식 현장 평가원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이들이 신원노출을 꺼리는 탓에 자기소개도 없이 밥만 먹었다. 기자 경력 6년에 명함을 주고, 1시간 넘게 같이 밥을 먹고서도 이름조차 듣지 못하기는 이날이 처음이다. 대신 그들도 자신들의 평가 현장을 공개한 게 처음이라니 비긴 셈이다.

레스토랑 평가서의 세계, 신뢰를 유지하라

프랑스의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와 미국의 ‘자가트 서베이(Zagat Survey)’. 세계적으로 유명한 레스토랑 평가서다. 특히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 평가는 식당의 존폐는 물론 요리사들의 생명마저 좌지우지한다. 별점이 나빠졌다고 자살한 요리사가 있을 정도로 업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구글은 자가트 서베이를 인수, 맛집 평가 정보가 중요한 콘텐츠임을 증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책 모두 국내에서 구해보기가 쉽지 않다. 미슐랭 가이드 한국판(‘한국어판’이 아니다. 현재 프랑스어로만 나와 있다)이 지난 5월 나오긴 했는데 식당평가서인 ‘레드 가이드’가 아니라 여행지 안내서인 ‘그린 가이드’였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미슐랭 측에서 한국판 레드 가이드 발간을 추진한다고 했고 시장 조사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언제 나올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자가트 서베이는 2010년부터 서울의 식당을 소개하고 있는데, 한 카드회사와 독점 계약돼 있어 이 카드로 결제해야만 구입할 수 있다.

블루리본은 “한국인은 어떤 레스토랑 평가서를 봐야 할까?”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 2005년 국내 최초의 레스토랑 평가서로 등장했다. 매년 개정판이 나온다. 지난해부터는 한식당 위주로 구성한 일본어판을 제작, 일본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영문판도 준비 중이다. 김은조(48) 편집장은 창간부터 현재까지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좋은 음악, 좋은 그림처럼 좋은 요리와 음식도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이를 위해 저희는 좋은 음식, 요리가 있는 곳을 소개하고요.”

식당 평가서는 오로지 독자, 소비자의 신뢰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미슐랭 가이드는 비밀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현장평가로, 자가트 서베이는 최대한 많은 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여론 조사 방식으로 신뢰도를 확보한다. 특히 미슐랭 가이드의 비밀주의는 유별나다. 외부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맛을 보고 점수를 매기는 평가원(inspector)의 신원을 웬만한 정보기관 요원만큼 철저하게 보호한다.

블루리본은 두 방법을 섞어 쓴다. 사이트 회원, 프리미엄 회원들이 투표한 점수로 1차 평가를 한 뒤 이 중 새로 생긴 곳이나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곳, 평가가 매우 훌륭한 곳을 중심으로 기사단을 출동시킨다. 2012년판 업데이트를 위해 지난달 말까지 회원 투표를 실시했고, 다음달 초까지 현장 평가를 진행한다.

블루리본 역시 기사단의 신원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 김 편집장은 “기사단은 20명 안팎이고, 주로 30∼40대가 많다. 매년 소수의 인원이 교체된다”고 말했다. 기사단은 레스토랑 컨설턴트, 교수 등 관련 업계 전문가가 많다. 이들은 한주에 2, 3회씩 음식을 맛보고 평가하는데서 기쁨을 찾는단다. 그래서 따로 급여나 수고비는 받지 않는다고.

당연히 평가 식당에서도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절대 협찬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식당한테 돈을 받고 평가를 매긴다면 독자들이 먼저 알아차릴 겁니다.”

조용히 와서 밥 먹고 조용히 돌아가 평가하기 때문에 평가 중에 생기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전혀 없다. 대신 직업병은 있다. 과식으로 인한 위염, 식도염 등이다. 기사단과 가끔 동행하는 김 편집장도 6개월째 병원을 다니고 있다. “주변 분이 ‘올 것이 온 것’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나도 걸려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뭐든 적당히 해야지 맛있는 요리도 많이 먹어선 좋을 게 없어요.”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대답이다.

레스토랑 평가서, 맛을 객관화하다

블루리본의 식당 평가 항목은 맛과 분위기, 서비스와 가격대비 만족도, 창의성과 전통성 6가지며 각각 30점 만점이다. 최고 등급인 리본 3개를 받으려면 모든 점수가 다 좋아야 한다. 2011년판에 수록된 3500여 식당 중 오직 16곳만이 리본 3개의 영광을 누리고 있다. 맛은 물론 최고의 시설과 서비스를 갖췄기에 호텔 레스토랑이 많고, 가격도 매우 비싸다. 때문에 비싼 곳에만 리본 3개를 준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5년 이상 꾸준한 영업’이 리본 3개의 기준인데 호텔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거의 없어요. 예전에 리본 3개를 준 개인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셰프가 그만두니까 바로 폐점되더라고요. 우리나라 식당의 인프라가 열악하단 뜻이기도 하니까 안타깝죠.” 리본 2개는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 1개는 시간을 내 다시 찾고 싶은 곳이다. 리본이 없는 곳은 한번쯤 가볼 만한 가치는 있는 식당이란 의미다.

항목별 가중치가 있지만 역시 맛이 최우선이다. 맛이 별로라면 다른 점수가 좋아도 리본을 받기가 힘들다. 문제는 맛이 지극히 주관적인 감각이란 것이다. 서비스나 식당 분위기 등은 그나마 수치화할 수 있다지만 맛을 어떻게 객관화해서 평가할까?

김 편집장의 설명은 이렇다. “물론 참 힘들어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이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합니다. 여기에 좋은 재료와 만드는 방식, 철학까지도 더해서 최종 평가를 하지요.” 회원들의 총의에 전문가 집단의 평가를 더하는 것이니 한 개인의 평가보다는 훨씬 더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평가단들도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맛과 보편적으로 좋은 맛을 철저히 구분하려고 한다.

맛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경우에는 다른 요인들이 중요하게 반영된다. 예를 들자면, 여기 역사가 깊은 평양식 냉면집 두 곳이 있다. A는 전통 제조 방식을 고수하고, B는 현대적인 맛을 약간 더한다. 그래서 이북 출신 어르신들과 냉면 마니아들은 A를, 일반 직장인과 냉면 초보자는 B를 더 좋아한다. 블루리본의 평가는 A가 리본 2개, B가 리본 1개다. 맛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릴 때, 평양냉면의 원래 맛을 고집한 A에 더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비싼 집만 좋은 평가를 받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블루리본의 방식으로 맛집을 제대로 정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들 터. 김 편집장이 1만원 이하로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식당 10곳을 소개한다. 혹여 시간이 된다면 한 번 가보고 블루리본의 평가 실력을 평가해 보시길. 참고로 27일 찾아간 한정식집은 가장 저렴한 코스 가격이 3만원이 넘는 비싼 집이었지만 책에 안 실린다.

블루리본 서베이 추천 ‘서울지역 점심 10선’

강남

◇ 동경전통육개장 다른 육개장들에 비하여 고사리가 덜 들어가지만 얼큰한 맛이 일품.

◇ 아야진생태찌개 양은냄비에 곤이가 푸짐하게 넣고 생태를 통째로 푹 끓여냄.

◇ 역삼동북어집 맵고 칼칼한 북어찜을 맛볼 수 있는 곳.

◇ 영동쭈꾸미 철판에 구워 먹는 주꾸미 맛이 일품.

여의도

◇ 가양칼국수버섯매운탕 시원한 버섯매운탕이 유명.

◇ 부흥동태탕 재료와 양념을 아끼지 않고 넣어 진하고 얼큰하면서도 깔끔한 뒷맛.

◇ 진진만두 진한 국물과 맛있는 만두가 들어 있는 만둣국이 유명.

충무로·명동

◇ 장수갈비집본가 테이블에서 굽는 방식이 아니라 주방에서 구워서 철판 위에 얹어서 나옴.

◇ 취천루 화교가 일본강점기 때부터 호떡과 만두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이후 3대째 내려오는 집.

◇ 평래옥 닭으로 육수를 내는 초계탕이 유명한 집.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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