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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어스교회 박종렬 목사, 개척 2년여만에 성도 200명
  • 입력:2011.07.1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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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더 희어지고 주름살이 더 생겼습니다.”

대형교회(서울 온누리교회) 풀타임 평신도 사역자를 거쳐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2008년 10월 서울 방배동에서 교회를 개척한 박종렬(56·조이어스교회) 목사의 말이다. 부목사라는 참모에서 담임목사라는 사령관이 된다는 게 녹록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대형교회 부목 시절의 ‘거품’을 빼는 과정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그동안 걸어온 경험 중 하나도 버릴 게 없더라고요.” 14년 직장 생활과 15년 온누리교회 사역 경험 등이 모두 목회의 자산이 됐다는 고백이다.

모태 신앙인이지만 명목상 신자로 살아온 세월이 있었다. 대학입시를 핑계로 교회를 떠나기까지 했다. 모난 성격으로 독선적이던 그에게 어느 날 하나님은 찾아오셨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였다. “네가 나를 떠나 있었을 때도 너를 원망한 적이 없었단다. 늘 네 주변에서 서성이곤 했단다.”

1987년부터 온누리교회를 출석하면서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아예 93년부터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미국 하와이 국제예수전도단(YWAM) 훈련을 거쳐 평신도 사역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소위 ‘세상 물’을 완전히 빼는 과정이었다. “하용조 목사님의 선교적 열정, 목회 철학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습니다. ‘흩어지는 교회,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교회’라는 온누리 영성이 무엇인지 알게 됐죠.”

박 목사는 사실 온누리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목회자였다. 청년들이 나이트클럽, 소극장, 커피전문점 등을 빌려 주일예배나 새벽QT 모임을 갖게 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큐시트를 짜는 방법조차 모르던 청년들을 훈련시켜 온누리인터넷방송국에 이어 24시간 선교교육 위성방송인 CGN TV의 핵심이 되도록 이끌었다.

“방송국을 만들 종잣돈이 있었는데 정작 필요한 인적자원은 없었습니다. 그때 서울 테헤란 벤처밸리에서 활동 중이던 웹마스터, 네트워크개발자 등 기독 청년들을 만나 의기투합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한국과 미국, 일본 등지에 CGN TV를 뿌리내리게 한 동력이었습니다.” 박 목사는 하 목사의 지시로 일본 CGN TV 개국과 함께 문화전도집회 ‘러브소나타’를 기획, 새로운 일본선교 모델을 제시했다.

‘좋은 교회, 좋은 직책을 내려놓는 게 어렵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어느 날 ‘두려워 말라, 떠나라’는 말씀을 들었다”며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자신의 터전을 버렸던 것처럼 저 또한 그랬을 뿐”이라고 답했다 “물론 기도도, 고민도 많이 했죠. 나중에 들은 얘긴데 제가 교회에서 떠밀려나간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고 해요. 후회 없는 결정이었습니다.”

박 목사는 조이어스교회가 예배와 기도사역을 통해 영혼을 소생시키는 진정한 ‘쉼터’가 되기를 바란다. 성도 개개인이 삶의 현장에서 선교사로 살아가게 하는 게 비전이다. 이 때문인지 교회 규모에 비해 전임사역자들이 많다. 목사만 5명이다. 좋은 목회자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에 미래 사역자를 양성한다는 의미가 크다.

개척 2년여 만에 예배인원 800여명으로 성장시킨 그는 내년부터 나사렛대학교에서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3학점짜리 제자훈련 과목을 개설한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일종의 ‘교학(敎學)’ 과정이다. 커리큘럼과 강사 배정의 자율권이 학교가 아닌 교회에 있다. 이는 변화무쌍한 사역현장에서 곧바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목회자 후보생 시절부터 습득해야 한다고 믿는 선(先)경험자로서의 배려이자 안목이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목회자와 평신도들과 함께 ‘UTD’(Until The Day·그날까지)를 조직했다. UTD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북한을 비롯해 온 열방에 복음을 전하기를 소망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임이다. “서로 힘을 모으니 할 수 있는 일이 많더라고요. 작은 교회의 연대는 서로 직책을 놓고 다투기보다는 사안별로 준비된 리더가 수평적 리더십을 발휘해 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박 목사는 “과거 부목사 시절엔 목표 지향적이었다면 지금은 성도들의 아픔이 곧 저의 고통처럼 여겨지게 된 게 단독 목회의 가장 큰 특혜”라며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에 본질에 더 충실하게 된다”고 말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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