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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우리江을 걷는다] ① 낙동강원류길과 승부역 가는 길
  • 입력:2010.07.2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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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우리江을 걷는다] ① 낙동강원류길과 승부역 가는 길 기사의 사진

굽이굽이 12㎞… 낙동강의 원시 비경을 만나다

강과 길은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이다. 강과 나란히 달리는 강변길에는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오롯이 새겨져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최근 낙동강(낙동강원류길+승부역길, 퇴계오솔길, 전통의 유교문화길, 은빛모래길) 한강(꽃벼루재길+골지천길, 두물머리길, 여강나루터길) 금강(무주벼리길, 백제역사 비단강길, 3대포구길+금강하구길) 영산강(담양수목길, 남도식도락길) 섬진강(섬진강기찻길+꽃길) 주변의 아름다운 강변길 13개 코스를 ‘가족과 함께 떠나는 우리江 걷기 여행지’로 선정했다. 한국관광공사 정봉섭 녹색실장은 “아름다운 강변길을 널리 알림으로써 국내관광을 진흥하기 위해 답사를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길을 찾아냈다”며 “봉화군 등 지자체와 함께 자연이 살아 숨쉬는 강변길을 주변 관광명소와 연계해 녹색관광의 새로운 명소로 탄생시키겠다”고 밝혔다. 본지는 여름휴가철에 가볼만한 낙동강원류길 등 4개 코스를 4회에 걸쳐 소개한다.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은 강을 건너지 못한다. 하지만 1300리 낙동강은 예외다. 태백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구문소(求門沼)에서 용우이산의 두터운 석벽을 뚫는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강줄기가 산을 뚫은 특이한 경우로 낙동강이 오랜 세월에 걸쳐 석회암을 침식시킨 때문이다.



청룡과 백룡의 전설이 서린 구문소에서 한동안 숨을 고른 낙동강은 강원도보다 더 오지인 경북 봉화군 석포면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영동선 석포역에서 승부역까지 12㎞ 구간을 철도 및 도로와 함께 다정하게 달리며 원시의 풍경을 연출한다.

태백 황지에서 봉화 승부역과 범바위전망대를 거쳐 매호유원지에 이르는 낙동강원류길 중 백미인 ‘승부역 가는 길’은 석포역에서 시작된다. 석탄물이 흐르던 검은 기억을 말끔히 씻어버린 낙동강에는 백로와 왜가리가 허허롭게 날아다닌다. 이따금 화물열차가 거울 같은 수면에 제 모습을 비추며 거친 숨을 내뿜을 뿐 낙동강은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말없이 흐른다.

승부역 가는 길은 귤현교를 건너면 승부역까지 줄곧 강을 사이에 두고 철도와 나란히 달린다. 이따금 강변을 벗어난 도로가 산을 오르고 철도가 터널 속으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철도와 도로, 그리고 강은 다정한 친구처럼 금세 어깨를 나란히 한다.

강변길의 매력은 한 발만 내디디면 바로 탁족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여인의 피부처럼 하얀 강돌이 눈부신 강변은 낙동강 상류의 황홀경에 취한 나그네들의 사색 공간이다. 인적 드문 강변에서 노부부가 흘러가는 강물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저물어 가는 낙동강과 오버랩된다.

시멘트로 포장된 거친 길은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안성맞춤. 차량의 통행이 적고 산길을 오르내리는 구간이 적당한데다 평탄한 강변길을 질주하는 짜릿함이 매력적이다. 마침 서울에서 기차에 산악자전거를 싣고 왔다는 동호회원들이 환호성과 함께 내리막을 질주해 원시의 풍경 속으로 사라진다.

인기척 없는 외딴집을 스쳐 지나자 길은 짙은 녹음 속으로 빨려든다. 석포역부터 줄곧 좁은 협곡을 시나브로 걸어오던 길은 승부리에서 처음으로 마을을 만난다. 접시꽃이 만발한 승부리 마을은 펜션을 포함해 대여섯 채 남짓한 한적한 마을. 승부리는 태백산 자락인 비룡산과 오미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산들에 둘러싸인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아직도 나무로 군불을 때고 밥을 짓는 오지로 마을 앞에는 투구처럼 생긴 투구봉이 걸개그림처럼 걸려있다. 강 건너 학교마을 주민까지 포함해야 기껏 17가구에 30명 남짓. 화전민의 후예들인 주민은 대부분 노인들로 손바닥만한 밭에서 옥수수와 한약재를 재배하며 학처럼 살아간다.

한약재인 천궁을 재배하는 운동장 크기의 밭은 승부리에서 가장 넓은 농토. 길은 천궁 밭을 가로질러 다시 낙동강과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멀리 소나무 가지 사이로 눈이 쌓이는 겨울에는 기차가 아니면 접근이 어려운 승부역이 홀로 외로움에 떨고 있다.

첩첩산중 산골역인 승부역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10여년 전 환상선눈꽃열차가 운행되면서부터. 승부역 겨울나그네들을 위해 무궁화호가 서너 차례 한시적으로 정차하는 것을 제외하곤 하루 4번 왕래하는 무궁화호가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마을 주민들은 석포나 봉화에 가려면 유일한 교통수단인 철도를 이용해야 했다.

승부역이 시나 기행문의 단골 소재로 유명해진 것은 ‘승부역은 / 하늘도 세 평이요 / 꽃밭도 세 평이나 / 영동의 심장이요 / 수송의 동백이다’는 짧은 시구 때문. 1962년 이곳에 부임해 19년 동안 역무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김찬빈씨가 역사 옆 화단 바위벽에 흰 페인트로 한 편의 시를 써놓았다. 험준한 산에 둘러싸인 승부역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것은 하늘 뿐. 그러나 이곳에서는 그 하늘마저 손바닥으로 가릴 정도로 앙증맞다.

승부역과 터널 사이에 위치한 역마을 동구에는 ‘영암선 개통비’가 우뚝 서 있다. 1955년 12월 개통한 영암선은 강원도의 석탄을 수송하기 위해 영주에서 철암까지 87㎞ 구간에 33개의 터널과 55개의 교량을 세운 그 시절 최대의 역사. 순수 우리기술로 건설한 영암선 구간 중 가장 힘들었던 승부역에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을 받아 개통비를 세운 것이다.

1963년 영암선이 영동선으로 바뀌고 사람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면서 승부역은 1997년 간이역으로 전락했다. 2001년엔 마주 달리는 기차가 교행을 위해 잠시 대기하는 신호장으로 바뀜으로써 간이역이란 명칭마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연히 기차표는 열차 안에서 사야한다.

안타깝게도 길은 승부역이 종점이다. 승부역에서 무인역인 양원역까지 4㎞ 구간은 기차가 아니면 접근할 수 없는 유일한 곳으로 낙동강 상류의 비경이 철길을 따라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양원역은 봉화군 소천면 냉천리에 위치한 무인역으로 하루 두 차례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낙동강 동쪽은 울진군 서면 전곡리 원곡마을.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한마을이나 다름없는 이곳에 열차가 정차한 것은 1988년부터. 당시 주민들은 봉화 5일장에 다녀올 때면 포장한 짐을 달리는 열차에서 창밖으로 던진 후 승부역에 내려 되돌아와야 했다. 마을 주민들이 당시 권력실세에게 열차을 세워달라는 편지를 보내면서 마을은 기차로도 접근할 수 없는 오지라는 오명을 벗었다.

양원역에서 다시 낙동강과 만난 낙동강원류길은 분천역과 현동역을 거쳐 임기역에서 이별한다. 도로번호조차 없는 낙동강원류길은 지세가 험할 때마다 낙동강과의 짧은 이별을 거듭하다 명호면 소재지에서 35번 국도를 만난다. 명호에서 운곡천과 합류한 낙동강도 한껏 수량이 늘어나 비로소 영남의 젖줄 역할을 한다.

그리움을 찾아 나선 이들이 배낭 하나 달랑 메고 혹은 열차를 타고 혹은 두 발로 터벅터벅 걷는 낙동강원류길. 그곳에는 오가는 나그네들의 쉼표와 느낌표만 있을 뿐 마침표는 없다.

태백·봉화=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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