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人터뷰] 박성웅 “악역? ‘살인의뢰’가 마지막… 소모된 것 같다”

기사승인 2015-03-23 00:03:55
- + 인쇄
사진=박효상 기자

[쿠키뉴스=권남영 기자] 영화 ‘살인의뢰’의 연쇄살인마 강천을 본지 벌써 꽤 됐다. 개봉 전 열린 시사회에서 영화를 봤으니 말이다. 섬뜩했던 느낌이 조금은 흐릿해졌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성큼성큼 걸어오는 그를 마주한 순간,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배우 박성웅(42)을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저 안 쳐다보고 인터뷰 하셔도 됩니다”라는 농담을 건네는 그는 생각보다 유쾌했다. 그럼에도 눈이 마주칠 때마다 움찔움찔했던 건 결코 내 의지가 아니었다. 진지한 박성웅의 눈빛은 영화 속 강천과 자꾸 겹쳤다. 그만큼 그의 연기가 강렬한 인상을 남긴 탓이다.

‘살인의뢰’에서 박성웅은 “밑도 끝도 없는 사이코패스” 강천으로 분했다. 영화에서 그는 그야말로 ‘절대 악’이다. 연쇄살인을 저지르고도 감정에 아무런 동요가 없다. 자신이 죽인 여성(윤승아)의 오빠 태수(김상경)과 남편 승현(김성균)이 아무리 울고불고 매달려도 시신을 어디에 묻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그걸 내가 왜 알려줘야 돼?’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가만히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간 센 역할을 많이 맡았던 박성웅에게도 강천은 차원이 다른 악역이다. 강천에 비하면 ‘신세계’(2012)의 이중구는 젠틀맨이다. ‘찌라시: 위험한 소문’(2014)의 냉철한 해결사 차성주도, ‘황제를 위하여’(2014)의 조폭 우두머리 상하도 비교가 안 된다. 이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를 표현하고자 박성웅이 선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일차원적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머리 안 굴리고 그냥 접근했어요. 완전 순진하게 가야하는 거예요 얘는. 초콜릿을 까먹을 땐 ‘이거 진짜 맛있네’ 하면서 까먹는 거죠. 주변에 누가 있건 상관 안하고요. 초콜릿 다 까먹고 시계 봤더니 ‘갈 시간이네’ 하고 일어나는 거고. 그런 거예요. 일차원적으로 다가섰죠.”

강천에게 살인은 ‘게임’이었다는 게 박성웅의 해석이다. 극중 승현과 태수를 바라보며 웃었을 때도 그는 이런 마음이었단다. ‘나는 게임하고 있는 건데? 찾아봐. 내가 어디다 숨겨놨는데…. 약오르지롱. 못 찾겠지롱.’ 자신이 짐작한 연쇄살인마의 심리를 박성웅은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런 그도 잔인한 살해 장면을 촬영했을 땐 실제 잠을 이루지 못할 만큼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한다. 박성웅은 “병원 탈출신에서 수갑으로 경찰을 죽이는 장면을 찍었을 때 제일 힘들었다”며 “그날 촬영 끝나고 잠을 못 잤다”고 토로했다. 정신적 압박이 상당했다는 것이다.

19년 연기 인생 중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촬영도 ‘살인의뢰’에서 경험했다. 이 영화 하이라이트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샤워장 격투신이다. 샤워장에서 전라의 상태로 격투 액션을 선보여야했다. 몸을 만들기 위해 3개월 동안 피나는 운동을 했다. 전날부터 42시간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채 당일 18시간 동안 촬영에 임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박성웅은 어느 때보다 흥분했다.

“제가 설명을 해드릴게요. 18시간을 어떻게 찍었느냐! 자, 일단 빨개 벗었어요. 다 벗고 물을 맞으면 이게 마르잖아요. 슛 들어갈 때 마르면 안 되니까 물을 계속 뿌려요. 8월이었는데도 춥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다 이게 식으니까. 그리고 18시간 촬영하는데 물을 못 마셔요. 카메라 앵글을 바꿀 때도 저는 못 쉬어요. 계속 펌핑을 해야 돼요. 18시간을 그러고 있었던 거예요.”


대사가 많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박성웅은 표정이나 몸짓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고심했다. 실제로 그가 준비한 아이디어가 영화에 많이 반영됐다. 현장 검증 장면에서 비난하는 구경꾼들을 위협하거나 울부짖는 유가족을 힐끔 쳐다보는 등 디테일이 모두 그의 생각이었다. 그간의 숱한 악역을 소화하면서 체득한 노하우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박성웅은 ‘살인의뢰’ 출연 결정을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냥 건달도 아니고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라는 설정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는 “계속 센 것만 하다보니까 이미지가 (그쪽으로 치우쳤는데) 또 센 거라서 고민을 했다”며 “근데 오히려 더 센 캐릭터였기 때문에 선택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 작품을 찍은 뒤 악역은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단다.

“왜냐면 저는 배우니까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저는 스스로 센 역할을 좋아하거나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냥 주시니까 잘 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신세계’ 이중구도 그렇게 터진 거고요. 근데 그게 저한테 맞는 옷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생활 연기하는 게 훨씬 부담감이 없거든요. 힘 빼는 거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하고 싶은데 계속 센 것만 들어오니까 (아쉽죠).”


그래도 길이 남을 만한 악역 하나쯤 남기고 싶지 않은지 물었다. 박성웅의 대답은 확고했다. 당분간은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박성웅은 “지금은 너무 (이미지가) 소모된 것 같기도 하고 관객 분들도 이제 좀 식상할 것 같아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넘버 3’(1997) 단역으로 데뷔한 박성웅은 10년 무명생활을 거쳤다. 어렵게 꺼낸 얘기에 그는 “10년 정도면 별로 길지 않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그는 “20~30년 무명이신 분들도 계신데 10년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짧다고 생각하면 짧을 수도, 더 길었으면 힘들었을 수도 있지만 적당히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힘든 시기가 많긴 했지만 절대 연기를 포기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이 정도 고난은 다들 오는 거겠지’ 이렇게 생각을 했죠. 왜냐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만큼 인지 저는 모르니까요. ‘이 정도의 힘든 고통? 역경은 다 오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버텼죠.”

[쿠키人터뷰] 박성웅 “악역? ‘살인의뢰’가 마지막… 소모된 것 같다”

그래서일까. 박성웅은 부지런하게 작품 활동을 하기로 유명하다. 한 해 몇 작품씩 내놓는 일이 다반사다. 자신은 쉬는 체질이 못 된다는 게 그의 말이다. 박성웅은 “한 달 이상 쉬면 막 온 몸이 막 (근지럽다)”며 “촬영장가서 일해야 되는 체질인 것 같다”고 전했다.

‘살인의뢰’ 이후에도 차기작 2편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차기작들에 더 기대를 쏟는 이유는 “일단 악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뢰한’에서는 전도연과의 멜로라인이 있다. ‘오피스’에서는 사건을 파헤치는 광수사대 반장으로 나온다. 그는 “엊그제 ‘오피스’ 후시녹음을 하고 왔는데 연쇄살인마만 보다가 반장 모습이라서 너무 좋았다”며 “‘어우 좋아. 좋다’고 계속 그랬다. 힐링이 됐다”며 웃었다.

그가 밝은 역할을 맡고자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올해 여섯 살 된 아들 때문이다. 박성웅은 “19금 말고 아들이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그가 왜 그렇게 이미지 변신을 꾀하고자 했는지 이 말 한마디에 단번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kwonny@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