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의 독재자’ 향한 롯데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다

기사승인 2014-10-22 10: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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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얼마 전 롯데시네마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관을 열었다. 서울 잠실에 있는 월드타워점이다. 롯데의 야심찬 미래를 짊어진 제2 롯데월드. 그 곳이다. 엄청난 규모가 특징이다. 눈길을 끄는 건 또 있다. 온통 영화 ‘나의 독재자’로 도배되듯 꾸며졌다는 것. 영화는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고 있다.

영화관 입구엔 커다란 평면 모니터가 걸려있다. 화면엔 ‘나의 독재자’ 포스터가 뜬다. 배우 설경구와 박해일이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제일 먼저 반긴다. 여러 대 마련된 티켓 자동 예매기 화면에도 이들의 얼굴이 나온다. 그 바로 위편엔 똑같은 포스터가 커다랗게 붙어있다. 뿐만 아니다. 복도엔 영화 광고판을 크게 세웠다. ‘나의 독재자’ 포스터, 전단지, 예고편까지 한데 모아놨다.

다른 지점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영화에 전사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론 궁금했다. ‘얼마나 대단한 기대작이기에 이렇게까지 미는 걸까.’ 의문은 20일 열린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뒤 풀렸다.

영화는 소재부터 신선하다. ‘김일성’도 아니고 김일성 대역을 한 남자의 이야기다. 스스로를 김일성이라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이 대목에서 감독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실제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리허설을 치렀다는 기사를 본 이해준 감독의 호기심에서 출발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사실에 살을 붙여 흥미로운 픽션이 완성됐다.


주인공 성근(설경구)은 1970년대 한 극단에서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무명배우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연기를 펼치는 게 꿈이지만 현실은 비참하다. 청소 등 잡일만 도맡아한다. 아들 태식(박해일)은 그런 아버지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그래도 늘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태식에게 성근은 누구보다 훌륭한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성근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연극 주연배우 자리가 갑자기 비게 된 것이다. 대사를 외우고 다니던 성근이 역할을 따냈지만 극심한 긴장감으로 무대를 망쳐버렸다. 객석에서 기대어린 눈빛으로 아버지를 지켜보던 태식은 고개를 떨구고 만다.

대기실로 돌아온 성근은 속상함에 눈물을 쏟는다.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 작품은 여기서 설득력을 얻는다. 아들에 대한 미안함은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열망으로 바뀌었다. 연기를 향한 열정엔 집착이 더해졌다.

그런 중 성근은 김일성 대역을 뽑는 비밀 오디션에 합격한다. 합격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 성근은 어디론가 끌려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고문을 당한다. 관련 내용을 발설하지 않을 사람을 뽑기 위해 중앙정보부가 계획한 일이었다. 성근은 모든 과정을 견뎠다. 그리고 서서히 김일성이 됐다.

[리뷰]  ‘나의 독재자’ 향한 롯데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다

영화에는 여러 이야기가 담겼다. 시간이 흘러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남북관계가 바탕이다. 일단 여기서 관객들의 시선을 한번 끈다. 최근 관련 이슈가 잇따라 터지면서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게 이유다. 하지만 영화가 주는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진짜’ 메시지는 좀 다른 데 있다.

이 감독은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아버지와 배우 예술에 대한 생각을 영화에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집이라는 존재와 아버지에게서 느껴지는 질감과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또 “늘 곁에 있지만 정작 알려고 하지 않았던 배우들의 속마음이 궁금했다”고도 했다. 부자간의 사랑과 배우의 삶. 두 축은 여러 이야기들의 중심을 이룬다.

많은 내용을 담다보면 내용이나 구성이 엉성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감독의 힘은 여기서 나왔다. 이 감독은 ‘김씨 표류기’(2009) ‘끝까지 간다’(2014) 등 각본에 참여해 평단의 인정을 받은 실력파다. ‘나의 독재자’에서 역시 돋보인다. 전체적인 극의 짜임을 촘촘하게 엮어냈다.

127분간의 흐름은 유려하고 그 사이 디테일은 살아있다. 언론간담회에서는 “최근 보기 드문 수작이 나왔다”는 평까지 나왔다. 기대가 높으면 실망이 크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덧씌워진 기대감은 더 깊은 울림으로 돌아온다. 30일 개봉.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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