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앤라운지] 그녀들,낮공연에서 자유를 찾는다

기사승인 2009-05-15 17: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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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앤라운지] 그녀들,낮공연에서 자유를 찾는다

[쿠키 문화] 낮 공연의 관객 비중은 8대 2 정도로 여성이 압도적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주부가 많다. 이 시간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주부이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국립극장의 ‘정오의 음악회’에서 만난 주부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따뜻한 봄날, 좋은 음악회, 친구와의 만남, 여유있는 분위기 등 모든 것이 갖춰졌다.

취미활동으로 동작구청 합창단 활동을 하고 있는 장석희(41) 조난영(39) 송경숙(38) 신미자(38) 네 주부를 만나 낮 공연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들어봤다. 결혼 후에도 문화활동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는 그들이지만 낮 공연은 모두 처음이었다. 그들이 공연장에 오는 건 결국 시간 싸움이다. 오전 11시는 주부들에게 적합한 시간이다.

송경숙씨는 “주부들이 제일 여유있는 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다. 아이가 하교하면 12시30분쯤 되니까 공연이 오전 11시에서 한 시간 정도면 딱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연을 볼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아이라고 모두 입을 모았다. 조난영씨는 아예 이날 아이를 데리고 공연장에 왔다. “예전에는 학교에서 수업에 빠지는 걸 무조건 반대했는데 요즘은 체험학습이 있어서 이런 공연이 있으면 가라고 해요. 오늘도 체험학습으로 온 거고요. 그래서 이런 공연이 주부들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함께 볼 수 있다면 더 좋겠어요.”

보통 공연은 오후 7시30분∼8시 사이에 시작된다. 주부들이 가족의 저녁을 챙기고 돌봐야 하는 시간이다. 세 아이를 둔 장석희씨는 “이 시간에는 애들 저녁 식사는 물론이고 다음 날 공부할 걸 챙겨야 한다. 저녁공연은 포기한 지 오래됐다”면서 “문화생활에 목말라 있었는데 그게 오늘 해소된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

낮 공연은 한 시간 가량 공연을 보고 샌드위치 등 간단하게 요기를 하는 코스로 이뤄진다. 송씨는 “항상 내가 밥을 하니 평소에서 점심을 제대로 차려 먹지는 않는다”면서 “간단하게 먹고 내가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갖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조난영씨가 “낮 공연은 약간의 다과가 함께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서로 대화를 즐길 수 있다”면서 “마음에 맞는 친구라도 밤에는 뭉치기가 어렵다. 자유로운 시간에 마음이 맞는 사람과 모이니까 참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부들이 저렴한 낮 공연이라고 아무 거나 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낮이든 밤이든 공연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작품의 질이다. 이들은 공연이 좋다면 다른 지출을 줄여서라도 꼭 보겠다고 입을 모았다. 조씨는 “낮 공연을 보러 가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시간과 돈을 할애해서 왔는데 안 좋으면 너무 아깝다. 싸다고 무턱대고 가면 후회하는 일이 많더라”고 지적했다.

이날 공연에 대한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신미자씨는 “황병기 선생님이 국악기를 양악기와 비교해서 설명해주시는 게 너무 좋았다. 말씀도 재미있게 잘 하시더라”라고 하자 조씨가 “5일 날 가족들하고 저녁 공연 보러 왔는데 그땐 밤이라 기력이 없으셨는지 이러지 않으셨다”고 농담을 던졌다. 옆에서 송씨가 “아이들이 나와서 노래를 하는 부분도 좋았다. 연주가 너무 아름답다면서 아이가 지휘하는 걸 따라 했다”고 덧붙였다.

공연의 주 소비층인 젊은 여성들에게도 낮 공연은 매력적이다. 1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브런치 공연인 국립발레단의 ‘김주원이 들려주는 발레이야기’에서 만난 대학원생 이정(29)씨와 발레를 전공하는 대학생 김혜지(19)씨는 “낮 공연은 처음 봤는데 저녁 공연도 낮 공연도 다 챙겨보고 싶어졌다”고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두 사람은 국립발레단 동호회 ‘정익는 발레마을’에서 활동 중인 발레 마니아다. 발레 공연이 있을 때마다 찾아다니며 챙겨본다는 이씨는 “전막발레가 아니라 갈라쇼 형식이라 처음 보는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 같다”면서 “평소에 주목받지 못하는 군무무용수들의 파드뒤(두 사람이 추는 춤)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기회를 통해 그들도 팬이 생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오늘 공연은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처음 파드뒤를 하는 거라 신선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직장생활을 하거나 학교에 다니면 낮 공연을 보기가 오히려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이씨는 “인터넷에 올라온 공연 후기를 보고 가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매여 있다 보니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면서 “오늘 공연 후기를 올려서 아쉬움을 달래줘야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인터뷰를 하면서 자꾸 시계를 쳐다봤다. 각자 돌아가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오후 1시에 가까워졌다. 김씨는 오후 3시에 있는 수업을 듣기 위해, 조교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일하러 가야 한다며 공연장을 나섰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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