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장윤형 기자] 독립군 군자금 제약사 동화약품, 의사 리베이트 조달 기업으로 변질

기사승인 2014-08-27 11: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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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장윤형 기자] 독립군 군자금 제약사 동화약품, 의사 리베이트 조달 기업으로 변질

국내 최장수 제약기업으로는 11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동화약품’이 있다. 이 제약사는 1897년 9월 25일 문을 열고 소화제 ‘까스활명수’와 종합감기약 ‘판콜’, 연고 ‘후시딘’ 등 의약품을 생산해온 우리나라 기업이다.

동화약품은 애국정신을 가진 유서 깊은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동화약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서울연통부’ 기념비와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위해 헌신을 아끼지 않은 제약사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산약인 ‘활명수’를 개발해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렸을 뿐 아니라 나라가 풍전등화에 놓여있던 일제 강점기에 나라를 구하기 위한 노력과 희생을 보여주기도 했다.

동화약품의 CEO 3명은 독립운동에 힘쓴 것으로 유명하다. 초대 사장 민강을 포함해 동화약품의 현대화 기틀을 마련한 5대 사장 보당 윤창식, 7대 사장이자 명예회장 가송 윤광열이 항일 운동에 앞장섰다. 물적 지원 외에도 항일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극진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초대 사장인 민강(1883~1931) 선생은 후학 양성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1909년 청년들을 중심으로 대동청년당을 결성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으며, 소의학교(現 동성중·고교), 조선약학교(現 서울대 약대)를 설립했다. 연통부를 국내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제공하는 등 여러 활동으로 옥고를 거듭했지만, 독립에 대한 열망을 거두지 않았다.

활명수는 독립운동가의 활동 자금 지원에도 한 몫을 담당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 활명수 한 병 값은 50전이었다. 당시 50전이면 설렁탕 두 그릇에 막걸리 한 말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으로 이동할 때 활명수를 지참했다가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동화약품 측은 “1897년 창립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과 분단, 급속한 산업화 등 숱한 격동의 변화 속에서도 국민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아왔다”며 “이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늘날 동화약품의 애국정신은 퇴색돼 가는 느낌마저 든다. 조국을 사랑해 독립운동에 힘썼던 이 제약사는 최근 의사에게 의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불법적인 금품 등을 제공하는 ‘리베이트’에 연루돼 곤혹을 치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0년 1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전국 1125개 종합병원과 개인의원에 처방사례비를 지급한 동화약품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8억98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2010년 11월 쌍벌제(리베이트 제공자뿐 아니라 리베이트를 받은 의료인도 처벌) 시행 이후 처음 적발된 것이다. 지난해 11월에는 동화약품이 현금, 상품권, 주유권, 명품지갑 등으로 처방사례비를 선지원하는 방식으로 의·약사들에게 전달한 사실이 공정위에 적발되기도 했다.

더욱이 한국제약협회가 리베이트 추방을 위해 ‘기업윤리헌장’을 선포한지 한 달여 만에 불법 리베이트 사건이 불거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자칫하면 회원사 퇴출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제약협회 관계자는 “이번 동화약품 리베이트 사건은 기업윤리헌장을 발표하기 이전의 일”이라며 “기업윤리헌장 선포 이전의 일이므로 회원사 퇴출까지 거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제약사들이 불법 리베이트에 연루되지 않도록 더욱 자정의 노력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조국이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구국정신’을 발휘해 독립운동 자금 조달에 힘썼던 국내 최장수 기업이 불법 리베이트에 연루돼 있다. 물론 동화제약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제약사들도 불법 리베이트를 관행처럼 여겨왔다.

국내 최장수 기업, 독립운동에 앞장선 기업. 117년의 동화약품이 리베이트에 연루돼 있다는 것은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다시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와, 국내 최장수 기업에 걸맞은 기업으로 거듭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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