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가시 뺀다는데, 신약개발은 가시밭길

기사승인 2014-04-12 12: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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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시험 부가세·사용량 약가연동제 등 발목

[쿠키 건강] 가시는 빼고 희망은 키운다'는 정부의 규제철폐 움직임이 한창이다. 그러나 제약산업은 되레 시대에 역행하는 규제들이 늘어나고 있어 업계에서 불만이 제기됐다.

논란이 있던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저가구매 인센티브제도)는 폐지하기로 결정됐지만 이후 명확한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시장 혼란은 여전하고, 사용량 약가연동제 등은 여전히 글로벌 신약개발의 족쇄라는 지적이다.

◇신약개발하라면서 임상시험에 세금

최근에는 기획재정부가 제약사 등이 수주한 임상시험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리고 국세청이 이를 추진하고 있어 업계에 긴장감이 팽배하다. 당장 세금 납부 대상자는 병원이지만 임상시험을 의뢰하는 제약업계까지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분위기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R&D 예산이 부족한 상황인데 글로벌 신약을 개발하라고 독려하는 정부가 오히려 빼앗아가는 건 아니지 않냐"며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어 "병원이 내는 부분을 제약사가 부담하게 될 텐데 보는 시각에 따라 세금 대납이 될 수도 있고, 임상시험에 세금명목으로 리베이트가 될 수 있다"며 "쉽게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어떤 형태로든 R&D에 부담이 증가하면 제약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달갑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신약개발은 리스크가 큰 사업 아닌가"하며 혀를 내둘렀다. 특히 "병원협회도 지금 크게 반발하고 있는데, 이번 조치로 자칫 PMS는 물론 임상시험까지 병원들이 꺼리게 될까 조심스럽다"고 언급했다.

병원협회 측도 제약산업에 미칠 여파를 우려했다. 병협 관계자는 "정부의 제약산업 육성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다른 나라가 임상에 부가세를 부과하는 단편적인 면을 볼 것이 아니라, 산업을 육성한다는 정부 정책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 리베이트 건은 악용되면 문제될 수도 있지만 본질이 다르기 때문에 연관지을 필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병원은 지난 5년 임상비용을 추징당하는 것이 문제고 제약사 입장에서는 일단 신약을 개발하는 단가가 올라가는 것이기에 문제가 될 것이다. 향후 공제받을 수 있어 부담이 크지 않더라도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가중되며, 결과적으로 보험재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 부가가치세제과 관계자는 "새로운 학술기술 연구용역이면 부가세가 면세되는데 임상은 정형화된 실험방법이나 측정법이 있고 의약품의 효능 및 안전성을 검증해 제약사가 보고서를 받는 것"이라며 "새로운 학술기술 연구용역이라고는 보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어 "규제개혁 얘기가 나오지만 세금은 규제가 아니다. 병원이 제약사로부터 부가세를 받기 힘들다고 하는데, 과세가 돼야 할 부분이면 받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또 "제약사 입장에서는 부가세 포함가를 병원에 주더라도 나중에 공제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담이 적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한편,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이번 사안에 대해 특별히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으며,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진흥과 관계자도 "최근 현황 파악을 위한 실무회의를 가졌고 내부적으로 보고는 한 상황"이라며 "현 단계에서는 아직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신약 발목잡는 '사용량 약가 연동'

많이 팔수록 약가가 인하되는 사용량 약가 연동제도 업계의 대표적인 규제 정책으로 손꼽힌다.

사용량 약가 연동 협상 유형은 △유형 1 : 약가협상 시 예상사용량보다 증가한 약제(30%) △유형 2 : 사용범위 확대로 사용량이 증가한 약제(30%) △유형 3 : 유형 1, 2에 조정된 약제로 사용량이 증가한 약제(60%) △유형 4 : 협상에 의하지 않고 등재된 약제로 사용량이 증가한 약제(60%) 네 가지다.

최근 정부는 유형3과 유형4의 청구금액이 전년대비 60%까지 증가한 제품뿐만 아니라 이에 해당되지 않았어도 '청구금액이 전년대비 10% 이상 증가하고 절대금액이 50억원 이상 증가한 제품' 또한 약가협상에 따라 약가의 최대 10%가 인하되도록 개정했다.

이에 국산신약은 애초부터 해외 개발신약 대비 가격이 낮게 책정된 상황에서 사용량 약가 연동제에 의해 또 다시 인하되는 상황이다. 국산 신약 약가가 낮게 책정돼 해외 진출에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해외 진출 시 해당 국가의 약가를 국내 약가 기준으로 책정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약사 입장에서는 해외 계약을 체결하기 전까지 협상을 늦춰 신약의 약가를 보존하려 하지만 최종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해당 약제가 급여 퇴출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

사용량 약가 연동 협상 과정에서 예상 사용량 설정도 제약사 입장에서 큰 숙제다. 예상 사용량을 정해야 하는데, 지나치게 사용량을 높게 잡으면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한 공단 측에서는 높은 약가를 책정해주지 않을 우려가 있다. 반면 ,사용량을 낮게 잡으면 예상 사용량 초과로 약가가 삭감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측은 "사용량 약가 연동제는 제도 도입 당시 취지와 유형 간 중복, 기존 인하정책 등을 종합했을 때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이를 폐지할 경우 신약의 약가 보존에 따른 국내 제약기업의 신약개발 활성화 및 글로벌 시장 진출을 촉진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약 가격 우대하고 3상 임상 대조약 급여 적용해야

이 밖에 규제개선 조치로 신약개발연구조합은 신약의 가격 우대방안과 3상임상시험용 대조약의 보험급여 적용 등을 꼽았다.

선별등재방식 도입 이후 신약의 가격이 저평가됨에 따라 국내 기업에서 신약 개발의 필요성에 회의가 제기됐으며, 해외에서 신약 도입 시 원가구조 악화에 따라 미발매되는 제품이 속출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제약산업의 R&D 촉진 차원에서 신약 약가는 OECD 평균 이상 수준을 유지하고, 급여평가위원회 구성과 의사결정에 제약사가 참여해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국내 개발 신약은 철저히 원가를 반영해 제약기업의 R&D 투자를 유도하면 제약산업이 제네릭 중심에서 신약개발 중심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제약업계 임원도 "식약처가 효능과 안전성 검증을 통해 신약으로 인정했으면 내수를 토대로 글로벌로 갈 수 있어야 한다"며 "국·공립병원에서라도 국산 신약에 대한 초기 등재나 우대를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의약품은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무조건 규제를 풀자는 것이 아니다. 제약산업을 규제산업이 아니라 지원산업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인식의 전환을 당부했다.

이 밖에도 신약조합은 고가 항암제 및 희귀의약품, 바이오의약품 등은 대조약으로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면 대조약 구입비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대조약 투약분에 대한 보험급여 적용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한편, 국무총리실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은 보건산업계 현장에서 불합리한 규제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보건산업 규제 애로 수요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제약협회와 신약조합 등 단체들은 관련 업계의 규제에 대한 애로사항을 적극 수렴, 정부기관에 전달하고 있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정승 처장도 제약업계 합동 워크숍 등을 통해 산업의 눈높이에서 애로사항을 청취하며 규제개혁에 박자를 맞추려는 모양새다.

지난 8일에는 '암덩어리 규제 철폐를 위한 합동 워크숍'을 통해 제약업계와 식약처 관계자들이 GMP 규제 개선, 수입의약품 CCP(제조판매증명서) 제출 완화 등 업계 규제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정부의 이 같은 행보가 제약산업의 기대와 발전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 메디칼업저버 김지섭 기자 jskim@mo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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