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어딜 봐” 류제국-“내가 뭘” 김재호…팬들이 더 흥분한 ‘사인 훔치기’ 충돌

기사승인 2014-08-28 16: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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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어딜 봐” 류제국-“내가 뭘” 김재호…팬들이 더 흥분한 ‘사인 훔치기’ 충돌

“경기를 그런 식으로 밖에 못 하나.” “생사람 잡지 마라.”

27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4 한국 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후 인터넷에는 양 팀 팬들의 댓글 논쟁이 한바탕 벌어졌습니다. 불미스런 일 없이 잘 끝난 경기였습니다. 언론에서도 경기결과와 분석 외에는 별 다른 소식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팬들은 이렇게 흥분했을까요.

원인은 5회말에 있었습니다. 두산 김재호가 타격 자세에 들어가면서 땅을 쳐다봤습니다. LG 투수 류제국이 2구째를 준비할 때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 타석을 향해 뭔가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눈과 땅을 번갈아 가리켰습니다. 김재호가 아래를 보는 척하며 투·포수의 사인을 보려 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 겁니다. 아니라고 항변한 김재호는 삼진을 당한 후 덕아웃에 들어가서도 불쾌해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프로야구에서 ‘사인 훔치기’ 논란은 종종 나옵니다. 지난해 8월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 두산의 경기에서는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뛰어 나오기도 했습니다. SK가 두산이 사인을 훔치는 것 아니냐고 항의를 한 후 SK 투수 윤희상이 던진 공이 두산 오재원의 머리로 향했습니다. ‘보복 투구’라고 생각한 오재원이 “안 봤다니까”라며 화를 냈고, 선수들의 감정이 격해진 겁니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SK 감독이던 2010년에 당시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과 사인 훔치기를 놓고 설전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이후 김 감독은 “사인 훔치기는 다 한다. 걸리지 않아야 한다”고 아예 기정사실로 만들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대회요강 26조에는 ‘벤치 내부, 베이스코치 및 주자가 타자에게 상대투수 구종 등의 전달행위를 금지한다’라고 명시돼 있는데도 말이죠.

사인 훔치기 논란을 신경전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러 의혹을 제기해 타자의 냉정함을 흔들어 보려는 것입니다. 두산 관계자는 “김재호가 사인을 봤다면 모든 타석에서 잘 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사인 훔치기 논란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냥 경기의 일부분”이라고 했습니다. LG 관계자는 “대화가 오간 후 별일 없이 잘 넘어가지 않았느냐. 류제국이 항의라기보다 중요한 경기에서 예민해지다보니 한 번 물어본 것으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김 감독의 말대로 걸리지 않으면 문제될 일도 없겠지만 타자와 투·포수의 수싸움이 백미인 야구에서 사인을 훔치는 건 엄연히 ‘더티플레이’입니다. 단순히 습관에서 나오는 동작을 가지고 상대방이 치졸한 꼼수를 쓰는 것처럼 일부러 자극했다면 그 역시 문제입니다. 두 행위 모두 스포츠의 기본인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무시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팬들의 열광에는 신사적인 경기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