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서거] 마지막 통닭 나눈 ‘50년지기’ 이재우 조합장

기사승인 2009-05-25 0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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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사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살 직전 수일간 지인들의 전화를 일절 받지 않는 것은 물론 거의 식사도 하지 못해 얼굴이 몰라보게 수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심한 불면증세를 보여 양산의 부산대 병원에 입원하는 문제를 고려하며 봉하마을 측과 병원 실무진 사이에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노 전 대통령의 핵심인사인 최인호 전 청와대 비서관은 24일 "최근 사저를 방문했을 때 건강이 좋지 않았고 거의 식사를 못하는데다 불면증도 심한 것으로 보였다"며 "서거하기 3∼4일 전부터 지인들의 전화를 일절 받지 않았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50년 친구인 이재우 진영단감조합장과 '마지막 통닭 만찬'을 했던 사실이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투신하기 바로 전날인 22일 밤 이 조합장과 통닭을 먹으며 유언 같은 담소를 나눴다.

이 조합장은 이 자리에서 "본인이 죽었을 때 혈육을 제외하고 그 사람을 위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하다"며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이 '맞다. 자네는 그렇게 살아라'고 말했다고 이 조합장은 목이 멘 소리로 당시를 회상했다.

당일 밤 노 전 대통령은 부인과 아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하던 중 천장만 쳐다보고 "너무 답답하다"고 말하자 이 조합장은 "무슨 소리 하느냐? 어려운 것을 잘 극복하자"며 노 전 대통령을 위로했다고 전했다.

또 박연차 전 회장에게 권 여사가 받은 10만달러도 딱 잘라 "나는 모른다"며 "50년 친구에게 거짓으로 이야기할 이유가 뭐 있냐?"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날 만찬은 이 조합장이 오후 7시20분쯤 통닭 2마리를 들고 사저로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한 마리는 경호원들에게 건네주고 나머지 한 마리로 노 전 대통령, 권 여사, 아들 건호씨와 나눠 먹었다.

이 조합장이 "소주 한잔 할까?" 하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이 "피곤하다"며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고 한다. 두 시간 정도 정담을 나눈 이 조합장은 노 전 대통령이 피곤해 보여 더 있고 싶었지만 사저를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은 이 조합장에게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잇따라 구속되는 등 고통받는 것을 보고 미안하고 괴로웠다고 말했다. 또 마치 자신을 범죄자처럼 매도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도한 언론과 검찰수사에 불만을 나타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 검찰조사에서 돈 문제와 관련, 자신은 깨끗했다는 이야기를 일관되게 했다고 말했다. 형 건평씨가 50억원에 연루된 사안도 대통령 본인은 전혀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이조합장은 또 "노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아침 권 여사와 함께 등산을 가기로 해놓고 혼자 나가버렸다는 얘기를 권 여사로부터 들었다"며 권 여사는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떠나기 전에 깨어있었으다고 전했다. 당시 권여사가 "나도 같이 갈까요"라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은 "그럽시다"라고 대답했으나 권 여사가 준비하는 동안 먼저 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이 조합장은 지난 19일 봉하마을에서 관광 자원봉사 활동 중인 자원봉사자가 하염없이 울며 "조합장님, 노 전 대통령이 너무 불쌍해요. 이러다가 무슨 큰일 나는 거 아닐까요?"라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당일 노 전 대통령을 찾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해=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영재 기자
yj311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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