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그 후③] “우리 아인 아직도 침대 밑에 숨는데…그 녀석들은 학교 잘 다니겠죠?”

기사승인 2016-02-24 10: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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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학생들은 소년법으로 보호하고, 피해학생은 어느 법으로 보호합니까”

1년 전 늦은 밤 사무실에 홀로 앉아 한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부모님이 법원에 낸 탄원서를 읽던 중 이 한 마디에서 눈길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이 한 마디로 인해 특별기획 ‘학교폭력 그 후’가 시작됐습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들은 처벌을 받습니다. 짧으면 며칠, 길어봐야 6개월~1년인 출석 정지· 전학 조치·보호 관찰 등 입니다. 이상하게 피해학생들도 ‘처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하게도 가해학생들의 그것보다 지독합니다. 가해학생의 처벌은 정해진 기간이 되면 끝나지만 피해학생의 상처는 언제 아물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해학생의 처벌이 끝나면 관심도 사라지지만 피해학생의 눈물은 언제 그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재민이, 영훈이, 가영이(가명)의 사연을 통해 국내 학교폭력 대책의 시선이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도 짚어 봅니다. <편집자 주>


[쿠키뉴스=김현섭 기자] #. 영훈이를 처음 본 건 지난해 2월쯤이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 옆에 있던 영훈이. 고등학교 1학년 나이인 16세 정도면 ‘사회적 체면’을 생각한다. 속으론 지겨워도 처음 보는 사람이 앞에선 점잖게 있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영훈이는 달랐다. 몸을 비비 꼬고, 어머니의 팔을 잡아당기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기자가 보고 있는 앞에서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유치원생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생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훈이는 학교폭력 피해자이다. 정신과 병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의 영훈이도 크게 달라진 건 없다.

2013년 11월27일의 날벼락

영훈이는 2012년에 울산의 M중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성적은 전교 22등. 초등학생 시절 생활기록부엔 각종 수상 내역만으로 A4 크기 용지 1페이지가 가득 채워질 정도로 우수했다.

2학년이었던 2013년 11월27일, 영훈이의 어머니 최모씨는 담임교사로부터 “영훈이가 지난 2년 간 학교폭력을 당한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다. 체육시간에 옷을 갈아입다가 온몸이 멍투성이인 것을 본 동급생이 발견하고 담임교사에게 말한 것이다.

지난 21일 다시 만난 최씨는 “영훈이가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무슨 좋은 일 있는 사람처럼 항상 활짝 웃었어요. 내가 ‘그렇게 일부러 안 웃어도 돼’라고 말할 정도로 잘 웃었어요. 그런데 그게 자기가 당하고 있는 일 티 날까봐, 그러면 내가 걱정할까봐 내내 그랬던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너져요”라고 말했다.

영훈이의 부모는 망연자실했고 집 안은 쑥대밭이 됐다. 최씨가 “이미 선생님께 다 들어서 알고 있으니 이야기 해보라”고 했더니 영훈이는 그제야 울면서 그동안의 일을 털어놨다.

“화장실에 가둬놓고 때리고, 웃옷 벗겨 추행하며 ‘통통해서 때릴 때 차져, 때리기 좋아’ 낄낄”

2011년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피해학생 유서에 적혀 있는 가해학생들의 악랄함에 전국이 충격에 빠졌다. 피해학생이 살아있다는 것만이 다를 뿐, 영훈이를 괴롭힌 가해학생들 역시 이 사건과 맞먹을 정도로 잔인했다.

일단 영훈이는 가해학생들이 자신을 교실에 가둬놓고 폭행했다고 털어놨다. 한 명이 망을 보고 나머지가 돌아가며 때리는 식이었다. 맞을 때 움직여도 안 되고, 신음소리를 내도 안 되고, 눈물을 흘려도 안 된다고 협박하면서 ‘얼굴만 빼고’ 온몸을 주먹질, 발길질로 폭행했다. 화장실에 가둬놓고 때릴 때는 웃옷을 벗기고 추행을 하면서 ‘애가 통통해서 때릴 때 차지다. 때리기 좋다’면서 낄낄대며 때렸다.

시계·학용품 등을 뺏고, 수시로 책가방과 주머니를 뒤져 돈을 뺏고, 신발이나 옷은 자신들과 같은 메이커는 못 입게 해 부모님이 신발이나 옷을 사준다고 해도 살 수 없었다.

수업시간에 수업을 듣느라 뒤에서 가해학생들이 부르는 소릴 못 들으면 듣고도 무시한다면서 때렸다. 이에 신경이 예민해져서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도 뒤를 돌아보게 됐는데, 그러면 또 뒤돌아본다고 때렸다. 맞지 않으려면 수업시간에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훈이보다 체구도 작고 어린 학생을 시켜 때리게 하기도 했다. 육체적 고통 외에 인격적 모욕까지 준 것이다.

이 때는 참다못해 담임교사에게 알렸다. 이전까지의 피해를 전혀 모르는 교사는 때린 아이들이 영훈이보다 작고 어리다는 이유로 ‘네 선에서 해결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진짜 가해학생들’은 고자질하는 찌질이라면서 더 노골적으로 괴롭혔다.

영훈이 역시 해선 안 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영훈이는 부모에게 “학교 창문에서 뛰어내려 잔디밭에 떨어지면 안 죽을 지도 모르고, 죽지 못하면 더 괴롭힘을 당할 것 같고,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면 즉사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영정사진 앞에서 오열하게 될 엄마 모습이 떠올라 몇 번이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최씨는 영훈이가 2년 간 4번의 골절이 있었다고 했다. 영훈이는 그때마다 계단에서 굴렀다거나 넘어져서 다쳤다고 했다. 폭력으로 인해 뼈가 4번이나 부러진 것이다. 중학생들의 짓이라는 게 믿기 힘들 정도이다. 당시 이상함을 느낀 최씨가 “혹시 학교에서 누가 때린다거나 하면 두려워 말고 엄마에게 말해라”라고 하니 영훈이는 씩씩하게 “엄마, 내가 바보에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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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긴 인내심의 무장이 해제되자 찾아온 정신적 공황

영훈이는 부모에게 ‘비밀’을 털어놓은 후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환청이 들린다면서 비명을 지르고 허상에 시달려 침대 밑에 숨는 등 발작 증세까지 보였다. 질긴 인내심의 무장이 해제되면서 심각한 정신적 공황이 온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서울의 정신과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바람을 쐬기 위해 어머니와 밖에 나온 영훈이가 주차돼 있던 어머니의 차량을 보자 허겁지겁 뛰어갔다. 그리고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사람처럼 차 창문을 두드리며 “엄마! 엄마!”하고 외쳤다. 옆에 있던 최씨는 아연실색했다.

영훈이는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이어야 하지만 2013년 11월27일 이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커녕 2년이 넘도록 일상 자체가 힘들다. 환청, 발작, 침대 밑으로 숨는 등의 이상 행동은 여전하다. 그럴 때마다 약을 먹여야 겨우 안정된다. 내일 모레 성인이 되는 남자 아이가 혼자서 잠을 못 잔다.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 누워야 겨우 잔다.

이제 폐쇄병동 입원 생활은 끝났지만 여전히 울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정신과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그 녀석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잘 지내고 있겠죠?”

가해학생은 6명은 2014년~2015년에 걸쳐 법원에서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학교폭력이 인정된 것이다.

무엇보다 최씨는 학교가 원망스럽다.

아이가 학교 안에서 2년이 넘게 시달리는 동안 주변 교사들은 뭘 했는지도 아쉽고, 밝혀진 후 열린 학교폭력대책위원회(학폭위)는 도움이 되긴커녕 영훈이도 학교폭력의 ‘쌍방 가해자’라며 같이 서면사과 조치를 내렸다. 영훈이가 학교 복도를 내려가다 가해학생 중 1명과 어깨를 부딪쳐 맞은 적이 있다. 그런데 어깨를 부딪친 것도 학교폭력이라는 것이다.

최씨는 현재 이 서면사과 조치를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낸 상태다. 부산고등법원에서는 지난해 11월에 영훈이가 어깨를 부딪친 행위는 ‘학교폭력으로 볼 수 없다’고 인정했다. 학교 및 울산교육청 학폭위는 영훈이가 ‘원인 제공’을 했기 때문에 쌍방 폭행이며 상대 학생과 서로 서면사과를 하라고 한 건데, 법원이 그렇게 보지 않은 것이다.

다만, 서면사과 조치가 생활기록부에 기재되지 않았고 이미 중학교를 졸업해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며 원고의 주장을 기각했고, 이에 최씨는 대법원에 상고를 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영훈이 치료비, 소송 관련 비용만 해도 수천 만 원이다. 영훈이 부모는 이에 대해 민사 소송도 제기할 예정이다.

거친 풍랑이 지나간 후 변한 건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영훈이와 풍비박산 난 집안뿐이다.

최씨는 “지금은 처분 기간 끝나고 전부 고등학교에 잘 다니고 있을 것”이라며 “영훈이 같은 피해자들만 이렇게 계속 힘들지, 가해자들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잘 지내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1년 전 만났을 때 영훈이에게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어봤다. 기자와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내내 불안정해 보이는 아이인데도 이 질문엔 대답을 빨리, 명확하게 했다.

“국회의원이요. 학교폭력이 없어질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싶어요.”

[학교폭력 그 후③] “우리 아인 아직도 침대 밑에 숨는데…그 녀석들은 학교 잘 다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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