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그 후②] “우리 선생님이 ‘더럽다’는 말은 유행어래요”

기사승인 2016-02-23 09: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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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학생들은 소년법으로 보호하고, 피해학생은 어느 법으로 보호합니까”

1년 전 늦은 밤 사무실에 홀로 앉아 한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부모님이 법원에 낸 탄원서를 읽던 중 이 한 마디에서 눈길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이 한 마디로 인해 특별기획 ‘학교폭력 그 후’가 시작됐습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들은 처벌을 받습니다. 짧으면 며칠, 길어봐야 6개월~1년인 출석 정지·전학 조치·보호 관찰 등 입니다. 이상하게 피해학생들도 ‘처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하게도 가해학생들의 그것보다 지독합니다. 가해학생의 처벌은 정해진 기간이 되면 끝나지만 피해학생의 상처는 언제 아물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해학생의 처벌이 끝나면 관심도 사라지지만 피해학생의 눈물은 언제 그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재민이, 영훈이, 가영이(가명)의 사연을 통해 국내 학교폭력 대책의 시선이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 짚어 봅니다. <편집자 주>




“이젠 학교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모두 원망스러워요.”

[쿠키뉴스= 민수미 기자] 곧 3월이다. 새 학기가 시작된다. 어린 학생들의 마음은 새 학교, 새 친구에 대한 기대로 분주하다. 그러나 가영(가명·15·여)이의 가슴에는 봄이 내려앉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가영이의 세계는 작은 모니터 속이 전부다. 그곳을 통해 수업을 받고 세상을 읽는다. 변해가는 계절을 느끼며 등교하는 친구들이 부럽지만 그럴 수 없다. 가영이는 학교폭력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새장 밖을 동경하는 작은 새의 삶은 아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가영이의 최근 몇 년은 순탄치 않았다. 정확히는 고통에 가깝다.

11살이 되던 2012년, 가영이는 가영이의 가족을 잘 알고 있던 지인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끔찍한 시간은 2년여간 계속됐다. 떠올리기 힘든 기억을 진술로 뱉어내길 여러 번, 가해자는 지난해 11월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등으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모녀는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는 순간, 그들을 괴롭히던 모든 고통은 끝이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은 짧았다.

가영이는 지난해 3월 인천 연수구 송도에 있는 S 중학교에 입학했다. 특별한 건 없었다. 그 또래의 여학생답게 웃음이 많았고 친구들을 좋아했다. 가영이가 학교 친구들과 달랐던 점은 검찰 수사와 심리 치료로 인한 잦은 조퇴뿐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영이 엄마는 S 중학교 교장, 교감, 담임교사 그리고 가정교사에게 딸이 겪은 아픔을 털어놨다. 가영이는 가정 과목 내 성교육 시간을 많이 힘들어했다.

가영이 엄마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지난해 4월쯤부터 반 아이들 사이에서 재판 사실과 관련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며 “이후 가영이는 친구들에게 욕설과 ‘더럽다’는 모욕적인 표현을 듣고 울면서 집에 돌아오는 날이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성폭력의 2차 피해가 학교폭력이 돼 버리는 심각한 현상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같은 반 친구 한 명은 반 전체 아이들이 있는 메신저 창에서 가영이의 얼굴 한 부분을 확대해 올려 비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또 일부 아이들은 익명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앱을 이용해 “죽어라” “왜 사느냐” “아빠 없는 짓 좀 그만하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아무 이유 없이 “더럽다”라는 말을 듣는 건 가영이에게 일상이었다. 엄마는 이를 담임교사에게 항의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더럽다’는 말은 요새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이란 것이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가 열린 것은 지난해 9월. 담임교사에 의해 지목된 가해 학생은 9명이었다. 그리고 결과는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조치 없음’으로 끝났다. 교감과 학부모 등으로 구성된 위원들의 만장일치였다.

이후 제기한 학교폭력 피해사건 재심청구도 기각됐다. 현재 가영이 엄마는 행정 심판과 소송을 진행 중이다.



“가영이는 ‘가면성 우울 장애를 겪은 적이 없어요.”

가영이는 따돌림과 언어폭력을 당했다. 그런데 왜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 것일까.

가영이 엄마는 “나중에 학폭위 자료를 떼어보니 놀랄 일이 적혀져 있었다”며 “가해 아이들은 물론 잘못 없다고 시치미 뗄 것이라 생각했지만, 담임선생님이 아이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고 가슴을 쳤다.

이어 “우리 아이가 무슨 정신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되어 있던데 이런 발언들이 ‘조치 없음’ 결과에 영향을 미쳤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학폭위 회의록에 따르면 담임교사는 당시 위원들 앞에서 “가영이에게 ‘가면성 우울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친구 대하는 법을 가영이가 잘 모르는 듯 보인다”며 “어머님이 보낸 병원 진단서를 확인한 결과, 가영이는 어렸을 때부터 정서 표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양육관계에서 왔을 확률이 높다”고 언급했다.

앞서 담임교사는 가영이가 성폭력 피해로 인해 다니던 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가영이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 있다. 아이의 원활한 학교생활을 위해 주치의가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

본보는 사실 확인을 위해 보호자의 동의를 거쳐 가영이 출생 이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병원 기록을 모두 확인했다. 가영이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진료를 받은 건 지난해 5월이 처음이며, 담임교사의 말과 달리 가면성 우울장애를 진단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가면성 우울증으로 불리는 스마일마스크증후군은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화가 나거나 슬플 때도 무조건 웃는 증상을 말한다.

또 “정서표현 문제가 양육관계에서 발생했을 확률이 높다”는 발언은 가영이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단서, 심리 평가 보고서 어느 부분에도 나와 있지 않다.

기자가 담임교사를 만나 이에 관해 질문하자 “본인은 가영이에 대해 ‘가면성 우울장애’라 지칭한 적 없고, 학폭위 서류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는 해명을 전했다.

가면성 우울장애가 언급된 자료는 학폭위 회의록뿐 아니다. 가영이에 대해 기술한 담임교사 상담일지 6월 분량에도 포함돼있다. 그리고 이 서류들은 이후 재심과 행정심판 학교 측 답변서로 제출됐다.

의문이 남는 부분은 또 있다.

행정심사 학교 측 답변서 중에는 담임교사의 진술 부분도 함께 첨부돼 있다. 이 서류에 따르면 담임교사는 “가영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와도 연락했다”며 “당시에도 친구들 간의 마찰이나 사소한 다툼이 많았고 그때마다 학생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 생각하며 어머니도 자주 학교에 오셨다(고 들었다)”고 적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제시한 자필 상담일지에는 ‘초등학교와 연락을 시도해보니 가영이가 조그만 일에도 항상 항의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과하게 대응했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또 ‘교권보호단체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담임교사가 연락을 취했던 서울 소재 H 초등학교는 가영이가 5학년 때 전학을 갔던 곳이다.

확인 결과 가영이의 5학년, 6학년 시절 담임교사는 가영이가 현재 다니는 중학교 관계자와 통화한 적이 없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소문 끝 연결된 통화 당사자는 기자에게 “내가 가영이 담임도 아니었는데 아이에 대해 자세히 말해 줄 수 있겠느냐”며 “어머니를 만난 것도 한차례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가영이 엄마는 “확인되지 않는 사실 언급으로 사건 해결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며 “학폭위부터 재심, 행정심판까지 모든 게 엉망이 됐지만 책임질 사람은 없고 처벌할 근거도 마땅치 않다”고 울분을 토했다.

인천광역시동부교육지원청 한 관계자는 “(학교폭력)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서류를 검토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지만, 서류의 진위여부를 파악할 순 없다. 또 그럴 권리도 우리에겐 없다”고 설명했다.

재심을 담당했던 인천시 역시 “학교 측에서 보낸 서류를 믿는다”며 “지금까지 그런 전례는 없지만, 거짓이 들어간 서류를 제출했다 해도 이를 처벌할 규제는 따로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min@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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