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 심리학] “왕이 된 기분” 성폭행범, 그 어떤 왕도 당신처럼 불행하진 않았다

기사승인 2015-02-27 09: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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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 심리학] “왕이 된 기분” 성폭행범, 그 어떤 왕도 당신처럼 불행하진 않았다

여고생을 포함해 19일 간 무려 8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3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을 봤다. 경기 양주경찰서는 지난 24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으로 차모(30·무직)씨를 구속했다.

차씨는 지난달 13∼31일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조건만남’을 하자며 여고생 등 여성들을 꾀어 모텔에서 흉기로 위협하거나 때린 뒤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차씨는 경찰에서 혐의를 인정하면서 “왕이 된 기분이 들었다”고 진술했다.

누군가 당신에게 지금 당장 ‘목적 없는’ 행동을 해보라고 요구하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왜냐면 인간은 목적 없는 행동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은 바로 이것에 있다. 목적은 곧 생각이다. 생각은 언어에 의한 사고 작용이다. 언어를 배우기 이전인 3세 이전에는 거의 동물과 같은 상태이다. 먹고 배출하는 신체적인 움직임은 동물과 유사하다. 감각이 행동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억압(repression)과 억제(inhibition)를 구별한다.

약 36개월이 지나면서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게 된다. 언어는 글자무늬로 된 것도 있지만 표정이나 소리 그리고 온도와 같은 개념무늬가 있다. 이런 글자무늬와 개념무늬 모두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부모로부터 표정이나 소리 등을 통해 감정이나 욕구를 억제 받는다. 먹고 싶은 식욕을 느끼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도록 적절하게 억제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이런 순간이 모여 ‘건강한 자아’와 ‘건강한 의식’이 형성하게 된다. 하지만 식욕, 성욕, 수면욕 등과 같은 욕구들은 억제기능을 통해 조절된다.

억제가 아닌 억압을 받은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신체와 연결된 욕구를 유아시기부터 억압을 받는 경우 의식에서 ‘고통’이라는 개념을 고착화시킨다. 이 결과 불쾌한 의식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잠재하게 된다.

이런 경험을 가지고 성장한 사람은 식욕의 경우 거식증이나 반대인 폭식증으로 이어진다. 수면욕의 경우 기면증이나 반대인 불면증(insomnia)으로 이어진다. 성욕의 경우 왜곡된 성에 대한 개념을 가지면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과 같은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욕구가 적절한 억제가 아니라 억압받게 되면 감정이 파괴된다. 감정이 파괴되면 본능이 공격적으로 고착화된다. 이런 현상은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상실하게 한다.

억압받으며 성장한 사람은 ‘왕’이 되고 싶어 한다. 왕이 되면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 등극부터 시대적 상황을 잘못 만났거나, 타고난 몸이 너무 허약해 제대로 된 정치를 할 수 없었거나, 능력은 있지만 당쟁이 너무 심해 휘말리는 등 여러 이유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되는 왕들이 꽤 있다.

특히 신권(臣權)의 도전에 끊임 없이 직면하고 그 횡포에 대한 견제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던 조선시대의 왕은 왕으로 사는 것 자체가 사실은 불행이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여자 수 명을 성폭행하고 “왕이 된 기분이었다”고 한 그 사람보다 불행한 왕이 또 있을까.

이재연 대신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치료학 교수

정리=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