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월급 50만원? 받으면 감지덕지” 허울 좋은 패션업계, 최저생계는 없다

기사승인 2014-11-01 21: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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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쿠키뉴스 DB

[친절한 쿡기자] “월급 50만원? 받으면 감지덕지” 허울 좋은 패션업계, 최저생계는 없다

‘청담동 앨리스’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패션 기업에 아르바이트로 입사한 건실한 디자이너 지망생이 현실에 좌절한 후 ‘속물’로 ‘업그레이드’를 시도하는 이 드라마의 줄거리는 언뜻 ‘막장’처럼 보입니다. 사모님 심부름이나 하는 견습 디자이너와, 5만원짜리 부츠는 ‘후졌다’고 비난하는 디자인 실장, 최저생활비도 안 되는 월급에 시청자는 “진짜로 저런 곳이 존재할까?” 하고 의문을 가지죠.
그러나 그곳은 슬프게도 이미 현실입니다.

최근 ‘한 유명 패션 디자이너의 직원 월급내역’이라는 글이 대중들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견습은 10만원, 인턴은 월 30만원, 직원은 100만원 남짓한 금액이랍니다. 이게 과연 진짜냐는 물음 속에 이 월급 내역은 온라인에서 크게 화제가 됐죠. “견습과 인턴의 차이는 뭐냐”는 궁금증부터 “직원이래도 대기업 인턴보다 못한 월급이다” “유명 디자이너면 버는 돈도 많을 텐데 저게 뭐냐”는 사람들의 말이 댓글로 달렸죠. 하도 낮은 금액이다 보니 그 디자이너의 이름에 의도적으로 흠집을 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정작 패션업계 종사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실제 패션업계에 6년째 종사중인 A씨는 “비단 그 디자이너뿐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A씨는 2010년 한 패션기업에 입사했습니다. 국내에서 가장 큰 패션기업 중 하나인 그 곳에서 A씨는 3년 동안 연봉 1400만원을 받고 일했습니다. 해외 수출로 큰 돈을 벌고 있는 그 대기업에는 연봉협상도, 최저임금도 없습니다. 1년차부터 3년차는 무조건 연봉 1400만원입니다. 세금을 빼면 한 달에 A씨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120만원이 채 되지 않았지만 A씨는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그나마 부모님과 함께 살기 때문에 생활비를 아낄 수 있어 직장 생활이 가능했습니다.

4년차로 접어들자 회사는 선심 쓰듯 연봉을 1800만원으로 올려줬습니다. 일반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이 대리 직급을 달고 두 배, 세 배의 연봉을 받으면서 A씨에게 “패션쪽 일은 월급도 후하지? 회사에서 품위유지 요구하는 만큼 월급 주잖아”라고 말할 때 A씨는 월급명세서를 불태우고 싶었답니다. 회사에서는 “디자이너면 디자이너답게 입으라”며 좋은 옷을 계절마다 새로 사 입길 요구했지만 정작 월급은 품위유지는커녕 최저생계도 유지하기 힘든 수준이었습니다.

그나마도 A씨는 패션업계에서 나은 편이었답니다. 실제로 개인이 운영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일하는 인턴 직원들의 경우에는 50만원, 30만원이 이상하지 않은 금액입니다. 일명 ‘도제 시스템’ 때문이랍니다. 명성과 노하우를 쌓은 디자이너 밑에서 견습으로 일하며 배우는 것만도 감지덕지하라는 겁니다. 적은 금액에 불만을 제기하는 친구들에게는 “너 대신 배울 친구들은 얼마든지 있다”는 논리로 퇴사를 종용합니다. 최저시급은커녕 차비라도 챙겨주는 걸 고맙게 생각하라는 논리는 패션업계 전체에 만연해 있다는 겁니다.

A씨는 이 같은 관행을 부수는 방법으로 노조를 꼽았습니다. 한국의 패션기업 중 제대로 된 노동조합이 있는 곳은 실질적으로 없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A씨의 의견입니다.

“저는 첫 직장이었던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한 달 일하고도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제 상급자는 ‘네가 인사팀에 등록되기도 전에 그만두니 월급을 줄 수가 없다’고 약을 올렸죠. 그렇지만 그런 직원들을 보호해 줄 노조가 없었고 저는 결국 무일푼으로 그 브랜드를 나왔어요. 제대로 된 노조가 없으니 제대로 된 연봉협상도 불가능하고, 적은 연봉에 직원들은 지쳐 그만둘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그만두는 직원들에게 회사는 ‘너희들이 빨리 그만두면 우리는 손해를 본다, 손해를 보기 때문에 3년차 이하는 적은 연봉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 악순환을 고칠 방법은 뻔한데도 연차가 쌓인 임원들은 회사 눈치를 보느라 직원들에게 ‘참으라’고 해요. 최저임금 555원.(견습 10만원 기준, 한달 180시간 근무로 계산) 이게 남들이 멋지다고 말하는 패션업계의 실체입니다.”

TV에 나와 멋진 쇼를 보여줍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디자이너로 국격을 높이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 이전에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굶어죽는 예술가들도 옛말입니다. 예술하는 데 사람이 필요하면 월급을 주세요.

이은지 기자 rickonbge@kmib.co.kr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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