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자살 부른 아들 편파판정…뒤엔 서울시 태권도협회 ‘점조직’ 승부조작 있었다

기사승인 2014-09-15 14: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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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자살 부른 아들 편파판정…뒤엔 서울시 태권도협회 ‘점조직’ 승부조작 있었다

지난해 5월 태권도 선수인 아들이 편파판정으로 패했다며 아버지 전모(47·태권도 관장)씨가 자살한 사건의 이면에는 서울시 태권도협회의 조직적인 승부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당시 경기에서 승부조작이 확인됐으며, 이는 서울시 태권도협회 차원의 ‘점조직’ 단계를 밟아 이뤄졌다고 15일 밝혔다.

전씨는 지난해 5월 28일 전국체전 고등부 서울시 태권도 핀급 대표 선발전이 끝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씨는 심판 차모(47)씨가 편파판정을 했다며 울분을 토하는 유서를 남겼다. 이 경기에서 전씨의 아들(18)은 5대1로 앞서다 경기 종료 50초 전부터 경고를 내리 7번이나 받으며 흔들렸고 결국 7대8로 역전패했다.

조사 결과 비극의 시작은 상대 선수 아버지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모 대학 태권도학과 교수 최모(48)씨였다. 그는 중·고교·대학 후배인 모 중학교 태권도 감독 송모(45)씨에게 “아들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입상 실적을 만들어달라”고 청탁했고, 이는 다시 서울시 태권도협회 김모(45) 전무로 이어졌다.

이어 김 전무의 승부 조작 지시는 협회 기술심의회 의장 김모(62)씨, 협회 심판위원장 남모(53)씨, 협회 심판부위원장 차모(49)씨를 거쳐 문제의 심판인 또 다른 차씨에게 건네졌다. 심판 차씨는 진짜 ‘몸통’은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시대로 실행만 하는 ‘하수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런 승부조작 지시는 태권도계에서는 ‘오다’라는 은어로 불린다고 경찰 조사를 받은 심판들은 털어놨다.

오다는 명령을 뜻하는 ‘오더’(Order)의 잘못된 표현으로, 태권도에 전자호구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심판이 특정 선수에게 경고를 주는 방식으로 오다를 수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협회는 매년 상임심판 100여명을 선정해 놓고 심판위원장이 심판 배정권을 전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일당 6만∼8만원을 받고 시합에 불려나가는 심판들은 이런 오다를 무시했다가는 심판 배정에서 배척되는 등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시키는대로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전씨 아들의 경기에서 이뤄진 편파 판정의 대가로 돈이 오간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태권도 명문인 특정 학교의 밀접한 연이 형성돼 있는 태권도계의 특성 때문에 이번 승부조작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승부조작을 주도한 협회 전무 김씨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심판 차씨 등 6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협회가 2009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허위로 활동보고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40명의 임원에게 협회비 11억원을 부당지급한 혐의(업무상 배임) 등으로 협회장 임모(61)씨 등 11명을 입건했다.

김현섭 기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