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에 자괴감에 실망에 원망에… 비틀비틀 국정원

기사승인 2014-04-16 07: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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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에 자괴감에 실망에 원망에… 비틀비틀 국정원

[쿠키 정치]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15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자 국정원 내부는 침통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대공수사 능력과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고 국가적 망신까지 당했다는 점에서 남 원장에 대한 원망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안과 관련해 국정원장이 직접 사과하는 극히 이례적인 상황까지 연출되자 수치스럽다는 반응마저 나오고 있다. 남 원장이 너무 ‘양지’에 나서는 바람에 빚어진 참사라는 불만도 있다.

국정원에 몸담고 있는 한 직원은 “그동안 힘들었지만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 보호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자부해 왔다”면서 “이번 간첩사건 증거조작으로 첩보·수사 활동을 하기 위해 피나게 노력했던 것들이 모두 물거품이 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조작·은폐가 이번 간첩 위조 사건에서 자행됐다는 점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국정원 내부에선 대공 수사를 기피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대북 정보 수집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한 북한 정보 수집망인 대북 휴민트(HUMINT)가 위축됐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국정원 직원은 “힘들게 노력해도 한 곳에서 일이 터지거나 정치권에 휘말리게 되면 모든 게 잘못된 것으로 매도되는 게 현실”이라며 “차라리 해외 파트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토로했다. 일각에선 “간첩 사건 수사는 이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수장이 직접 대국민사과를 했다는 점에서 수치심을 넘어 남 원장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직 국정원장의 대국민사과는 2005년 8월 당시 안기부 불법 도청 사건과 관련해 김승규 국정원장이 기자회견 형태로 사과문을 발표한 이후 9년 만이다. 국정원 내에서는 “지난 대선 당시 정치 글 사건부터 시작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으로 정보기관이 남 원장 체제 이후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며 “수장인 남 원장이 국정원을 제대로 이끌지 못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탄식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남 원장 등 국정원 수뇌부는 처벌을 피해 ‘꼬리 자르기’ 모양새가 됐다는 점에서 남 원장 처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 수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일부 직원의 일탈로 치부했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남 원장 흔들기가 이어질 경우 가뜩이나 어수선한 국정원이 또다시 풍파를 만날 수 있다는 위기감도 나온다. 실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경찰에 남 원장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서울대 민주화 교수협의회도 서울 관악캠퍼스 교수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과 관련해 특검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다만 국정원 일부에선 남 원장을 신뢰하고 따른다는 목소리도 있다. 일부 직원들의 실수로 결정적인 문제가 발생했지만, 특히 충성심이 강하고 조직을 우선시하는 군인 출신인 데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검찰의 일방적인 수사에 제동을 거는 등 그나마 조직을 보호했다는 것이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