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대통령의 ‘환골탈태’는 ‘탈태’ 중

기사승인 2014-04-16 11: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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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에 주문한 “뼈를 깎는 환골탈태”가 계속 ‘탈태’되고 있습니다. ‘환골탈태(換骨奪胎)’에서 환골은 ‘뼈를 바꾼다’는 뜻인데, 도를 닦아 범골을 선골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뒤에 붙은 탈태는 ‘모태를 빼앗는다’는 의미로, 남이 지은 시문에 자기 생각을 덧붙여 새 작품으로 만든다는 말입니다. 종합하면 남의 것을 빌어 완전히 새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환골탈태 어법을 먼저 활용한 분은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입니다. 안 대표는 15일 새정치연합 고위전략회의에서 국정원을 향해 ‘나비’가 될 것을 주문했습니다. 애벌레에서 고치가 되어 이후 나비로 ‘변태’하는 것처럼 국정원의 환골탈태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안 대표는 “나비가 애벌레에서 고치가 될 때 스스로 실을 풀어 집을 만들고, 그 집을 뚫어야 나비가 된다”고 했습니다. 결론으로 그는 “국정원장을 해임하고 국정원 개혁에 나서야 한다”며 “환골탈태는 사즉생, 스스로 죽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어법을 빌어 ‘탈태’의 전범을 보인 것입니다.

안 대표뿐만이 아닙니다. ‘트위터 야당’으로 부상한 5선의 새누리당 중진 이재오 의원도 남재준 원장이 물러나야 국정원의 ‘환골탈태’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떻게 집권당 154명 의원 중에 한 명도 국정원장은 물러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을 하지 않는지”라며 “참으로 답답합니다. 울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의원은 SNS에 글을 쓰실 때 격정적 어조가 강조되면 띄어쓰기를 종종 무시하십니다. 이번 글도 리드 앞머리는 띄어쓰기가 있지만, 뒤로 갈수록 전부 붙어 있습니다. 이 의원의 심정이 전달됩니다.

[친절한 쿡기자] 대통령의 ‘환골탈태’는 ‘탈태’ 중


하지만 눈 밝은 독자들은 보셨겠지만, 이 의원은 ‘환골탈태’를 “환골탈퇴”라고 쓰셨습니다. 페이스북엔 바로 ‘페친’들의 오류 지적 댓글이 1번으로 달려 수정하셨지만, 수정을 못하는 트위터에는 원문 글이 남아 있습니다. 국립국어원도 아니면서 제가 이를 굳이 지적하는 것은 ‘환골탈태’의 오기가 많기 때문입니다.

환골탈태는 ‘성대묘사(성대모사)’ ‘야밤도주(야반도주)’ ‘2억만리(이억만리)’와 함께 가끔 ‘환골탈퇴’로 잘못 쓰는 한자어입니다. 인터넷 기사에서 이런 틀린 말이 자주 발견된다고 신문사 데스크들이 한탄하는 사례입니다. 이 기회를 빌어 잘못 쓰는 말을 바로 잡아 널리 알리자는 의도입니다. 이 의원께서 혜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의원의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을 촉구한다는 말씀은 지당합니다. 공산당도 아닌데, 새누리당 154명 가운데 단 한명도 이에 대해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도 부자연스럽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거고, 새정치연합엔 무인기 관련 의원 질의권을 인정해 달라는 정청래 의원도 계십니다.

어쨌든 국정원장 사퇴없는 박 대통령의 ‘환골탈태’ 주문이 계속 ‘탈태’ 중입니다. 정쟁이 아니라 개혁과 변화의 시발점이 되려면 누군가는 ‘탈퇴’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사진=국민일보DB

국민일보 쿠키뉴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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