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북한 中 부주석의 숙소까지 찾아간 김정은, 속내는…

기사승인 2013-08-08 02: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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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방북한 中 부주석의 숙소까지 찾아간 김정은, 속내는…

[쿠키 정치]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올해 초에는 우리가 남조선과 미국한테 좀 심하게 했다”면서 “우리가 미국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핵무기 같은 걸 선전하는 행위를 (최근 들어) 많이 줄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제1위원장의 언급은 지난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전면전 위협을 가하며 한반도 안보 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것을 후회한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달 말 전승기념일(7월27일·정전협정체결일) 행사 참석차 방북한 중국의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을 만나 이같이 말했다고 정부 소식통이 7일 밝혔다. 이 소식통은 “김 제1위원장이 급하게 리 부주석의 숙소로 달려가 면담했으며 이 자리에서 3차 핵실험과 한반도 전면전 위협 등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 제1위원장이 리 부주석 숙소를 직접 찾은 것은 매우 파격적인 일이다. 숙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국빈급 외국 정상들이 이용하는 평양 외곽 백화원초대소로 추정된다. 김 제1위원장이 리 부주석을 만나기 위해 평양 중심가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외곽까지 달려간 셈이다.

이 소식통은 “김 제1위원장이 리 부주석 숙소로 찾아간 것 자체가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악화된 북·중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북한 최고지도부가 노심초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김 제1위원장은 “조만간 중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리 부주석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 부주석은 김 제1위원장에게 “지금 이 상태에서 (베이징에 오면) 좋을 게 없다. 시 주석이나 다른 고위 지도자들이 (김 제1위원장을) 만나줄 수도 없으니 다음 기회가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 부주석은 또 “북한이 경제를 일으킬 기회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자꾸 경제부흥을 못 하니까 점점 더 어려워진다”며 “자본과 자원을 경제 개발에 투입하지 못하고 핵 개발 등 다른 데 투입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고 이 소식통은 덧붙였다.

이에 김 제1위원장은 “그 말을 이해한다”면서도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 적대시 정책을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 핵 개발은 우리의 기본 정책상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김 제1위원장은 북한의 현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북·중 관계가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달 27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에서 리 부주석을 극진하게 예우했다.

리위안차오 부주석 “김정은 의외로 합리적… 집권자 면모 갖춰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달 말 중국의 리위안차오(李源潮) 국가부주석과의 면담 과정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드러냈다고 한다. 지난해 집권 초반기 즉흥적이고 호전적인 성격만 노출했던 것에 비해 훨씬 차분하고 합리적인 모습을 선보였다는 의미다.

리 부주석은 이 같은 김 제1위원장의 스타일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등 중국 최고지도부에 보고하면서 “의외로 실무에 밝고 여러 가지 사안에 합리적”이라고 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 부주석은 “만나보니 김 제1위원장이 아주 경우가 바른 젊은 지도자였다. 처음 집권해서 꽤 실수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점점 집권자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는 듯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제1위원장이 이처럼 변하게 된 것은 집권 이후 벌어진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통치 방향을 정립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김 제1위원장은 주로 보고서를 통해 현안을 파악했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는 현장을 직접 방문하길 즐겼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통치방식을 좋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실제로 김 제1위원장은 1주일에 두세 번 꼴로 군부대와 건축현장, 공장 등을 찾는 ‘현장지도’를 꾸준하게 해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 소식통은 7일 “김 제1위원장은 어디든 현장에 내려가 어찌 사태가 돌아가는지를 직접 보고 판단하는 통치방식을 굳히고 있다”면서 “실무적으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매우 중시하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통치방식 변화로 추론해보면 리 부주석 면담에서 나온 “남조선과 미국에 좀 심하게 했다”는 김 제1위원장의 언급도 자신의 시행착오에 대한 ‘반성’으로 볼 수 있다. 전통적인 적대시 정책에 따라 핵무기 개발 명분을 내세워 미국으로부터 체제 보장이라는 반대급부를 얻어내려는 ‘벼랑 끝 전술’에 대해서도 “일정 정도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리 부주석이 김 제1위원장에게 전한 “핵이 아닌 민생·경제를 챙기라”는 메시지는 ‘시진핑 중국’의 대북(對北) 기조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급하게 숙소까지 달려온 북한 최고지도자에게 이처럼 경고성 주문을 내놓은 것은 이전의 ‘전폭적 북한 지원’ 정책이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제1위원장은 핵무장이 아니라 민생과 경제를 챙기라는 리 부주석의 ‘질책’에 상당한 공감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전선에 중국까지 동참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체제 유지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행보다.

핵무기 개발과 군사도발만을 통해서는 북한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자각이 담긴 것 아니냐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군부 중심의 대남·대미 강경 기조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함에 따라 이제는 노선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국민일보 쿠키뉴스 신창호 유성열 기자 procol@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