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순수’ 좇다 배우만 남은 ‘순수의 시대’ 어찌 하리오

기사승인 2015-03-02 17: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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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쿠키뉴스=권남영 기자] 또 조선 건국 초기다. 숱한 작품들에서 그려진 배경이다. 다행히 영화 ‘순수의 시대’는 단순함을 거부했다. 비록 예기치 못한 곳에서 아쉬움을 남겼지만 말이다.

‘순수의 시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한 장군과 기녀의 사랑이야기다. 가상의 인물인 장군 김민재(신하균)는 정도전의 사위이자 태조 이성계의 사돈이다. 여진족 어머니의 소생으로 천한 신분이었던 그를 정도전이 데려다 거뒀다. 평생 정도전과 나라를 위해 충성한 김민재는 군 총사령관이라는 관직에까지 오르게 된다.

그런 그 앞에 기녀 가희(강한나)가 나타난다. 연회장에서 춤을 추는 가희의 모습이 어릴 적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어딘지 닮았다. 가족이라곤 정이 가지 않는 아내와 친자가 아닌 아들 진(강하늘)이 전부인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 가희에게 빠진다. 마음을 다잡아 보려 해도 잘 안 된다. 순수한 내면의 욕망에 눈을 뜬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 과정을 설명하는 데 그리 친절하지 않다. 목석같던 김민재가 가희를 보고 한 눈에 반해버린다. 단지 죽은 어머니를 닮아서? 이 이유만으론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리는 김민재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진과 이방원(장혁)은 중심 갈등을 유발하는 역할에 그친다. 두 사람은 각자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들이라는 점에서 겹친다. 꺾여버린 권력욕을 삐뚤어진 방향으로 푼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색(色)을 밝히고 욕정을 좇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런 방탕한 생활 역시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치정멜로 사극을 표방한 ‘순수의 시대’는 촘촘하지 못한 짜임새 곳곳을 자극적인 정사신으로 채웠다. 인간의 순수한 욕망을 표현하고자 한 의도에는 수긍이 간다. 자연스러운 사랑의 형태 그대로를 담고자 한 점도 알겠다.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감독의 선택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전체적으로 허술한 이야기 구조와 뻔한 전개가 아쉬울 뿐이다.


영화는 ‘디테일’에 특히 공을 들였다. 남성들이 착용한 귀걸이 등 작은 소품들까지 역사서에 담긴 내용을 토대로 설정했다. 당시 빛의 질감을 재현하려 실제 호롱불을 켜놓고 촬영했다. 색감이나 구도 등에도 신경을 써서 미술적 완성도를 높였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무보다 좀 더 숲을 바라봤다면 어땠을까.

배우들 호연으로 영화는 힘을 얻었다. 신하균은 첫 사극 도전임에도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하균신(神)’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다. 흔들리는 남자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눈빛 하나면 충분했다.

장혁은 이방원을 연기하면서 여타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애썼다. 그 노력은 관객에게 어렵지 않게 전해질 듯하다. 강하늘의 연기 변신도 주목을 끈다. 그간 주로 선보였던 반듯한 엘리트 이미지를 벗고 비열한 ‘망나니’로 완벽하게 분했다.

[쿡리뷰] ‘순수’ 좇다 배우만 남은 ‘순수의 시대’ 어찌 하리오

가장 눈에 띄는 이는 역시 홍일점 강한나다. 첫 주연을 맡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차게 역할을 소화해냈다. 수위 높은 노출과 애정신이 부담스러웠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더 적극적으로 감정연기에 집중한 점이 놀랍다. 세 남자 곁에 있는 가희가 각각 다른 인물로 느껴질 정도다.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상훈 감독은 “여러 꽃들 사이에 놓인 한 송이 꽃보다 혼탁한 물웅덩이에서 맑게 피어난 꽃 하나를 보여줌으로서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든다. 혼탁한 중에 다행히 꽃은 피었다. 오는 5일 개봉.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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