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비하인드] 박근혜 대통령은 봤을까…‘개훔방’ 스크린 독과점 폐해 호소하기까지

기사승인 2015-01-28 12: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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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비하인드] 박근혜 대통령은 봤을까…‘개훔방’ 스크린 독과점 폐해 호소하기까지

결국 대통령에게 호소하고 나섰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감독 김성호) 제작·배급사 리틀빅픽쳐스에서 사임한 엄용훈 대표 얘기다. ‘개훔방’은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대기업 독과점 문제로 개봉 초기부터 상영관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상영시간이 대부분 이른 오전이나 심야로 배정돼 관람 기회를 놓치자 관객들을 비롯해 각계각층에서 대관 릴레이에 동참했다.

그런데 대기업 프랜차이즈 극장들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마치 골방에 갇혀 있는 느낌”이라는 엄 전 대표. 문제는 ‘개훔방’ 사태가 영화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 아닐까.

◇12월 31일 ‘개훔방’ 개봉=개훔방은 지난달 31일 호평을 받으면서 개봉했지만 경쟁이 극심해지는 연말연시라는 상황 탓에 1/3 정도의 상영관밖에 확보하지 못했다. 개봉 초기 약 200개의 상영관을 확보한 것도 잠시였고 곧 교차상영이 이어졌다. 조조 시간대와 심야 시간대가 주를 이룬 것이다. 가족영화로서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관객들의 개봉관 확대 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현재 전국 10여개 극장만 남아있다. 그나마 대기업 극장 체인점은 거의 사라져버린 상황이다.

엄 전 대표는 최근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각 지역 개별 극장과 다양성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중심으로 장기 상영을 하고 있다”며 “대기업 배급사들은 예매율이 낮다는 이유로 상영관 확대를 해주지 않는다. 예매율은 낮은데 예매시도율은 높다. 상영시간이 조조, 심야로 배정돼 예매를 시도해도 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1월 8일 타블로 등 스타 대관 릴레이 동참=입소문을 타면서 관객들을 비롯해 가수 타블로, 배우 김수미와 진구, 임원희, 개그맨 박휘순 등이 자발적 대관 상영에 동참했다. 타블로는 지난 8일 트위터에 “좋은 영화, 개봉관이 부족해 보기가 어렵다? 없으면 만들어 야죠”라며 “제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벙법’ 224석 대관 상영 쏩니다! 아래 페이스북 사이트에서 신청하세요”라고 남겼다.

이외에도 서울우유. 김병후 정신과 원장,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삼거리 서포터즈 등이 대관 상영에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1월 14일 리틀빅픽쳐스 대표 사퇴=엄 전 대표는 ‘개훔방’ 흥행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14일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페이스북에 “지난해 설립작으로 배급한 ‘소녀괴담’이 작은 성공을 거뒀지만 ‘카트’에 이어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개훔방) 흥행 실패는 오로지 제 무능함이었음을 통감한다”며 “개훔방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엄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사퇴와 관련해 “가족, 지인, 주주 등 이사진 어느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며 “(사퇴서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싶은데 애써 감추려고 한 느낌 들지 않았냐. 약자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1월 15일 jtbc ‘뉴스룸’ 출연=엄 전 대표는 사퇴 하루 만인 15일 돌연 방송출연을 감행한다. 일각에서는 노이즈마케팅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엄 전 재표는 “노이즈마케팅을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노이즈마케팅을 해서 잘 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마음”이라며 “사퇴한 후 어떠한 언론과도 접촉을 안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직무유기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개훔방 배급사 대표라는 지위를 버리고 마지막 상영관에서 영화가 내려갈 때까지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며 “마침 jtbc ‘뉴스룸’ 출연 요청이 왔는데 처음엔 거절했다. 고민하다가 뉴스룸 방송 시작한지 20분 지나서 연락했다. 생방송이라서 편집되지 않은 채 내 생각이 그대로 나가기 때문에 여기가 아니면 기회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월 23일 안철수 의원 대관릴레이 동참=23일 안철수 의원이 ‘개훔방’ 대관 릴레이에 동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안 의원 측은 “오는 28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무료 상영회를 개최 한다”며 “대형 배급사의 스크린 독점으로 중소 배급사 상영관 확보가 어렵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관행과 생산성 격차 심화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지적해 온 안철수식 한국 경제해법 찾기와 취가 맞닿았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지난달 30일 ‘개훔방’ 시사회를 다녀온 뒤 SNS에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는 한국영화가 오랜만에 나온 것 같다”며 “가족 해체와 가난이라는 현실을 다루면서도 행복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아이들과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함께 웃고 울었다”고 극찬했다.

엄 전 대표는 새정치추진위원회 활동을 하며 안 의원과 인연을 맺었다. “안 의원이 대관릴레이에 동참하면 ‘국제시장’처럼 정치적 논란이 일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 엄 전 대표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면서도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또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고 했다.

◇1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에 호소문 발표=엄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며칠 밤새서 박근혜 대통령에 편지를 썼다. 읽으실지 모르겠다”며 휴대폰에 저장된 내용을 보여줬다. 빼곡히 쓴 글에서 절실함이 느껴졌다. “페이스북에 올려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면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지 않겠냐”고 하자 그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엄 전 대표는 용기를 내 27일 페이스북에 “자사계열 배급 영화는 영화 예매 오픈시기를 대부분 2주 전에 열어준다. 하지만 중소배급사 영화는 개봉일이 임박해서 열어준다. 예매 오픈 극장의 수도 지극히 작다. 예매율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남겼다.

이어 “현재 영화산업은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된 상영관 구조에서 공급의 양이 수요를 결정하고 있다”며 “1000만 영화 대부분이 대기업 배급사다. ‘국제시장’ 투자배급사가 CJ E&M. 독립영화 신화를 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CJ CGV. ‘명량’도 CJ E&M이 배급한 영화”라고 주장했다.

대기업 수직계열화에 따른 몰아주기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 법으로 동일 계열기업 간에 배급과 상영을 엄격히 분리시켜야 한다는 게 엄 전 대표의 주장이다. 상영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합리적으로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최지윤 기자 jyc89@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