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영화 결산 ④] 작은 영화들이 이렇게 흥한 적 있었던가

기사승인 2014-12-20 17: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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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영화 결산 ④] 작은 영화들이 이렇게 흥한 적 있었던가

“이렇게 작은 영화에 유명하지 않은 제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다니…. 앞으로 더 독립영화, 예술영화의 관심과 가능성이 더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17일 열린 제35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천우희(27)가 눈물을 쏟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독립영화 여주인공이 영화계 주요 시상식에서 수상을 하는 일은 흔치 않다. 더구나 한국에선 더욱 그랬다.

천우희는 전국 226개 스크린에서 상영돼 22만4000여명이 본 독립영화 ‘한공주’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또래 남학생들에게 집단성폭행 당한 17세 소녀 한공주(천우희)의 비극적인 삶은 관객들에게 무거운 여운을 남겼다. 결국 천우희는 김희애, 전도연, 손예진 등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영화제의 꽃이 됐다.

올 한 해 영화계를 함축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2014년은 다양성 영화의 약진이 두드러진 해였다. ‘한공주’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독립영화들이 관객과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누적관객수 3만6908명), 박찬경 감독의 ‘만신’(3만3481명), 김태용 감독의 ‘거인’(2만340명), 박사유·박돈사 감독의 ‘60만 번의 트라이’(1만9721명) 등이 고른 사랑을 받았다.

상업영화 못지않게 화제성이 있었던 영화들도 다수다. 지난 5월 개봉한 ‘도희야’는 배두나, 김새론, 송새벽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해 관심을 끌었다. 아동학대라는 쉽지 않은 소재가 배우들 연기력을 통해 깊이 있게 표현되면서 10만6501명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족구왕’을 빼놓을 수 없다. 허술해 보였던 만섭(안재홍)과 친구들이 캠퍼스 족구대회에서 예상 밖의 선전을 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다. 불과 58개 스크린에서 4만5585명 관객들과 만났으나 뒤늦게 입소문을 탔다. 점점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부가 판권시장 강자로 우뚝 선 영화는 대중성을 등에 업고 일부 극장에서 재상영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도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큐멘터리 식으로 촬영된 영화는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의 팽목항 모습 그대로를 화면에 담았다. 지난 10월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되며 사전검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논란이 오히려 관심을 키웠다. 불과 20개관에서 상영돼 관객 4만2449명을 모았다.

작품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외국 다양성영화들 활약도 눈부셨다. 색깔 있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그녀’도 마니아층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누적관객수 77만3649명, ‘그녀’는 35만357명을 기록했다. 두 작품 모두 기발한 내용과 감각적인 화면색감이 돋보였다.

지난 8월 개봉한 ‘비긴 어게인’은 기대 이상의 돌풍을 일으켰다. 342만6052명을 모아 상업영화에 뒤처지지 않는 흥행을 거뒀다. 다양성영화 중에선 비교적 많은 제작비(약 100억원)가 들어갔지만 할리우드 평균의 약 1/7수준이다.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애덤 리바인 등 스타들의 출연도 흥행에 불을 지폈다. 한국관객들이 유독 큰 애정을 보였다. 전 세계 나라 중 한국에서 최고 흥행성적을 냈다.

내년에도 이런 흐름이 계속될 수 있을까. 심상찮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전망을 밝힌다. ‘님아…’는 노부부의 일상과 변함없는 사랑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극적인 전개나 특별한 연출도 없다. 다만 관객들 마음을 흔들었을 뿐이다.

2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님아…’는 전날 16만5582명을 추가해 누적관객수 179만9591명을 기록했다. 연말 한국영화 경쟁에 포문을 연 ‘국제시장’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호빗: 다섯 군대 전투’ ‘인터스텔라’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있다. 한국 독립영화 최고 흥행작 ‘워낭소리’(296만2897명) 기록을 깰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독립영화들 활약이 극장가를 풍성하게 하고 있다. 영화 규모나 화려한 출연진을 보고 작품을 선택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기사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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