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 人터뷰] ‘상의원’ 고수 “제 얼굴보다 저라는 사람, 제 연기를 봐주셨으면”

기사승인 2014-12-19 00: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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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효상 기자

고수(36)는 친근한 이미지의 배우는 아니다. 잘 생긴 외모 탓이다. 얼굴이 조각 같아 이름에 ‘다비드’를 합친 ‘고비드’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보는 순간 “정말 잘생겼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런 얘기에 고수는 늘 “감사하다”며 미소로 답한다. 그런데 표정 어딘가에 씁쓸함이 묻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고수는 역시 이름값을 했다.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인사하는 그에겐 빛이 났다. 눈꼬리가 약간 처진 선한 눈매와 수려한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갈색의 깊은 눈망울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이래서 다들 고수, 고수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 무렵. 이번에 출연한 영화 ‘상의원’을 설명하며 반짝이는 그의 눈빛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공진이라는 캐릭터는 천재라기보다 자유로운 인물이에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권력이라든지 지위라든지, 신분이나 배경, 혹은 얼마만큼을 가지고 있는가. 그런 것에 자유로운 인물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데 천재가 과연 진짜 있나요?”


‘상의원’에서 고수는 궐 밖에서 옷 잘 짓기로 소문난 천재 디자이너 이공진 역을 맡았다. 상의원은 조선시대 왕실 의복을 만들었던 관청이다. 이곳이 영화의 주요배경이다. 상의원을 총괄하는 어침장 조돌석(한석규)이 공진을 만나며 겪는 심리변화가 극의 중심을 이룬다. 평생 노력으로 최고 자리에 오른 돌석은 타고난 재능만으로 치고 올라오는 공진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그런데 공진은 늘 해맑기만 하다. 순수한 마음으로 돌석을 존경하고, 즐겁게 옷을 만들 뿐이다.

공진의 재기발랄함을 고수는 어렵지 않게 소화했다. 그간 보여준 작품 속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1998년 연예계에 데뷔한 고수는 여러 작품에 출연했으나 각각의 역할들 사이에는 일관된 이미지가 있었다. 약간 침체돼있고 어두운 분위기의 인물들이었다. 공진 역은 어쩌면 그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고수는 “촬영할 때는 사실 더 까불었는데 감독께서 조절해 영화에 그 정도로 나온 것”이라며 “더 들떠보였으면 전체 영화 톤에서 어긋날 수도 있었는데 과하지 않게 잘 조절해줬다”고 털어놨다. 이어 “촬영 자체가 재밌었다”며 “현장에서 더 많이 웃을 수 있어서 재밌었다”고 덧붙였다.


2005년 SBS ‘그린 로즈’ 이후 고수는 4년여간의 공백기가 있었다. 그러나 ‘백야행: 하얀 어둠 속을 걷다’(2009)로 돌아온 뒤에는 매년 꾸준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오랜 공백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한 해에 한 작품 이상 내놓고 있다.

“지금은 막 하고 싶어요. 이렇게 저렇게 많은 작품을 하며 도전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군 복무 마치고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어요. 이번 작품도 다른 작품과는 달랐죠.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표현하는 법도 전부 달랐어요.”

데뷔 17년차 배우가 흔히 갖는 생각은 아니다. 보통 열정이 아니라면 힘든 일이다. 여러 시도를 해보며 길을 찾고 있다는 그에게 현재는 배우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시점이 아닐까.


사실 고수에겐 유명세에 비해 이렇다 할 대표작이 없다. 드라마는 SBS ‘피아노’(2001) ‘순수의 시대’(2002), 영화에선 ‘백야행’ ‘초능력자’(2010) ‘고지전’(2011)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을 꼽긴 어렵다. 연기력이 없는 배우도 아닌데 말이다.

“크게 망하지도 않고 뭐 그렇게 온 것 같아요. 언젠가는 터질 수 있다는 기대감은 있죠. 그 전까지는 뭐.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이 있진 않아요. 욕심 쫓아가다보면 넘어지기도 하고…. 내가 욕심을 가질 수 있는 건 연기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흥행에 대한 건 부수적인 보너스 같은 거고. 작품 열심히 하다보면 알아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쿠키 人터뷰] ‘상의원’ 고수 “제 얼굴보다 저라는 사람, 제 연기를 봐주셨으면”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외모의 역할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완벽한 얼굴은 배우로서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새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작품 자체나 연기력보단 외모에 관심이 쏠렸다. 언제부턴가 고수가 “잘생겼다”는 칭찬에도 아쉬움을 느끼는 이유다.

“그런 말씀들 항상 감사해요. 단지 저라는 사람, 제 연기, 그리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보고 싶다는 거죠. 안 늙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 것에 도망가고 싶진 않지만 멋있게 늙었으면 좋겠어요. 멋 부리지 않아도 멋있는 사람. 그렇게 남고 싶네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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