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촛불 든 비정규직들의 투쟁… ‘카트’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기사승인 2014-10-25 06: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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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보고나면 속이 상한다. 110분 내내 갑갑함이 밀려온다. 낮은 곳에 사는 이들이 겪는 비애를 적나라하게 마주한 순간 당혹한 마음을 감추기 힘들다. 그 안에 우리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카트’는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뤘다. 쉽사리 수면위에 올리기 어려운 주제다. 한 대형마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부당해고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실제 2007년 있었던 이랜드 비정규직 사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후 여전히 823만여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불안 등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영화는 이를 외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돌아보게 한다.

단순히 고용실태를 고발하는 내용이 전부는 아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 문정희는 22일 서울 건대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이웃의 이야기일수도 자신의 이야기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움직였다”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특정계층에 있는 사람들만이 아닌 평범한 우리네 삶이 담겼다는 얘기다.


두 아이를 둔 엄마 선희(염정아)는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며 받는 월급이 가족의 밥줄이다. “열심히 해서 반찬값이나 벌어가라”는 말에 그는 발끈해 “저 생활비 벌러 나온다”고 말한다. 혜미(문정희)는 어린 아들을 혼자 키우는 싱글맘이다. 회사와 동료들의 눈치가 보여도 그는 칼같이 시간을 맞춰 퇴근한다. 어린이집에 아들을 데리러 가야하기 때문이다.

순례(김영애)는 20년간 청소원으로 일했다. 고단한 생활에도 동료들과 밥 한 끼 나눠먹을 땐 온화한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툭하면 상사의 지적 받는 옥순(황정민)은 벌점 쌓이는 것쯤은 이제 익숙하다. 나이어린 상사에게 구박 당하고 중년의 나이에 반성문을 쓰면서도 일을 관둘 수는 없다. 대학을 졸업한 미진(천우희)에게 취업난은 가혹했다. 50번의 면접에서 다 떨어진 그는 결국 마트에 취직했다.

저마다의 사연에 매일이 고단한 이들이다. 그럼에도 계산대를 찾는 고객들에게는 “사랑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며 환한 미소와 인사를 건넨다. 그러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회사를 나가달라는 회사 측의 일방통보다.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고용법이니 노조 가입이니 잘 모르겠다. 모든 게 복잡한 것 투성이다. 이들은 단지 살기 위해 뭉쳤다.

[리뷰] 촛불 든 비정규직들의 투쟁… ‘카트’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투쟁 과정을 지켜보니 결국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사회에서 흔히 만나는 갑·을 갈등을 스크린을 통해 마주한다. 노조를 형성해 단체행동에 나선 수십명의 계산원들을 제압하는 최 과장도 한편으론 을이다. 아이 셋을 둔 아빠는 회사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다. 선희의 아들 태영(도경수)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알바비를 제대로 지불받지 못한다. 항의했지만 점주의 억지와 매질만이 돌아온다.

영화 속 장면은 낯설지 않다. 출연배우 김영애는 기자간담회에서 “살면서 우리는 피해자가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크고 작은 벽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노조 결성, 춧불 집회. 과연 이데올로기로 보는 게 옳을까. 영화가 주는 삶의 얘기가 진한 여운을 남긴다. 다음달 13일 개봉.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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