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십쇼”… 수술 뒤 깨어나지 못한 9살 지유

기사승인 2014-09-01 10:3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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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십쇼”… 수술 뒤 깨어나지 못한 9살 지유

유효기간 지난 마취제, 주먹구구식 진료 기록, 안이한 대처… 의료 윤리 저버린 병원

서지유(9)양이 수술 뒤 끝내 깨어나지 못했던 지난 5월 19일. 아버지 서동균(38)씨는 의료진으로부터 “기다리면 깨어날 것이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그러나 기다린 뒤 돌아온 것은 심폐소생술을 받다 갈비뼈가 모두 내려앉은 딸의 주검이었다.

9살 지유는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다. 작은 체구에도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친구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수술 전날엔 “혼자 있어도 되니 데이트 하고 오라”며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챙겼다. 혼자 공부해 한자 5급 자격증을 딸 만큼 영특하기도 했다.

착하고 똑똑한 딸의 믿을 수 없는 죽음. 아버지 서씨는 장례를 마친 뒤 아이의 죽음을 파헤쳤다. 의료인이 아닌 간호조무사가 마취 주사를 것도 지유가 맞은 마취제가 유효기간이 지났다는 사실도 속속 드러났다. 주먹구구식 진료기록은 있으나 마나였다. 병원 측은 의료인으로서 기본 윤리와 의무를 저버렸지만 사과 한마디 없었다.

지난 26일 종각 M스퀘어에서 열린 ‘환자샤우팅카페’에서 서씨는 “제2의 지유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대로 있을 순 없다”고 말했다.

◇간단한 수술, 그러나 깨어나지 못한 아이

충남 천안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던 지유는 사망하기 사흘 전, 학교 운동장 구름사다리에서 떨어져 왼쪽 팔을 다쳤다. 담임선생님은 지유를 아동 골절 전문으로 알려진 A정형외과로 데려갔다. 병원에서는 간단한 골절 수술이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고, 19일 오전 지유는 마취 주사를 맞은 뒤 수술을 받았다.

11시 20분 경, 지유 부모는 집도의로부터 “수술이 잘 끝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지유는 오후 2시가 돼서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지유의 부모는 아이를 종합병원으로 옮겨줄 것을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병원에선 번번이 “기다려보자”고만 했다. 마취과 전문의는 “근육이완제 때문에 대사가 지연돼 회복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다. 종합병원에 가도 기다리는 것밖에 할 게 없다”고 말했다. 지유 부모는 10년 이상 경력의 전문의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오후 5시를 넘기자 사태가 급변했다. 의료진이 수술방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지유 부모도 따라 들어갔다. 아이는 제세동기로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었다. 이를 본 지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쓰려졌다. 지유는 인근 순천향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후 8시 48분에 숨을 거뒀다. 2시간 30분이나 심폐소생술을 받은 지유는 갈비뼈가 부러져 가슴이 납작해진 상태였다.


아이가 깨어나지 않는다면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 조취를 취해야 했지만, 의료진은 기다리는 것밖에 하지 않았고 결국 허망하게 아이를 보냈다. 서씨는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면 뇌CT(Computed Tomography)를 찍어봐야 하는데 그곳엔 장비가 없었다. 그런데도 종합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두고만 봤다. 아이 심장이 멎을 때까지 (심폐소생술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참을 수 없다”고 원통해 했다.

◇간호조무사가 마취약 투여, 마취약은 유효기간 지나

아버지 서씨는 지유에게 마취 주사를 놓은 이가 간호조무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간호조무사는 의료인이 아니다. 보조업무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수술실장이라 불리던 그는 수술 당일 지유 어머니에게 수술, 검사, 마취동의서에 사인할 것을 요구했다.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지유 어머니에게 “나는 잘 모른다. 그런데 수술하려면 여기다 사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서명을 했다. 이후 수술실장은 지유에게 마취 주사를 놓았다.


병원 측 변호사는 “마취과 의사가 간호조무사에게 주사 놓을 것을 지시했기 때문에 합법”이라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의사의 지도, 감독 하에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마취 주사를 놓는 것은 합법이지만, 관찰하는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마취제를 투여하는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지유 부모는 당시 마취과 전문의가 곁에 없었다고 전했다.

서씨는 A정형외과에 간호사가 없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의사와 행정직을 제외한 스태프는 15명. 이들은 간호조무사와 응급의료처치사, 물리치료사로 구성돼 있었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38조(의료인 등의 정원)에 따르면, 연평균 1일 입원환자를 2.5로 나눈 수만큼 정식 간호사를 고용해야 한다. 그 중 일부를 간호조무사로 대체할 수 있다. 29개의 병상을 갖춘 A정형외과는 최소 5명의 정식 간호사가 필요하지만, 단 한 명도 채용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지유에게 놓았던 마취제는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었다. 서씨가 A정형외과에 간호사가 없다는 사실을 지역 보건소에 알렸고, 보건소가 조사를 나왔다가 이를 발견했다. 서 씨는 “마취제의 유효기간이 2개월이 지났다. 의사들은 그런 정도는 괜찮다고 하지만, 알아 본 바로는 유효기간이 지난 마취제에 대한 임상 결과가 전혀 없다고 한다. 인체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는 의료윤리에 관한 문제”라며 울분을 토했다. A정형외과는 이후 마취과에 대해서만 한 달간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았다.

◇허술한 차트, 지유 사인 밝힐 산소포화도 기록 없어

서씨가 샤우팅을 위해 찾은 이날, 지유의 부검결과가 나왔다. 직접적인 사인은 저산소성 뇌손상. 뇌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사망했다는 것이다. 부검의는 서씨에게 “(지유가 수술 뒤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의 심장이 원래 좋지 않았는지 봤지만 그런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즉 마취?수술 과정에서 뇌에 산소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 돼 사망한 것이지, 다른 곳엔 문제가 없었다고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지유 사인을 규명해줄 열쇠, 산소포화도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수술 중 산소포화도 측정기록이 남아있다면 어느 지점에서 뇌에 산소가 부족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 전신마취를 한 환자의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는 것은 기본적인 절차인데도 A정형외과는 이를 무시했다. 환자단체연합회 자문단인 권용진 서울시립북부병원 원장은 “산소포화도 기록 등 수술, 마취 기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지유는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산소포화도 모니터링 기록이 있다면 진상규명에 도움이 될 텐데 (기록이 없어) 미궁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지유의 진료기록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금요일에 입원한 뒤 주말 동안 코피와 고열이 있었지만 기록되지 않았고, 간호조무사들은 이를 의사에게 알리지도 않았다. 수술 당일 작성한 차트(Pre OP checking list)엔 바이탈 사인(Vital Sign?체온, 맥박, 호흡, 혈압) 등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는 기본적인 정보조차 누락돼 있었다. 혈액형도 기록하지 않았다. 병동에서 수술실로 환자를 인계하는 차트임에도 담당자들은 서명을 하지 않았을 만큼 주먹구구식이었다.

지유의 부검의는 서 씨에게 “진료 기록이 너무나 허술해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하며 “부검소견에 이를 적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용진 원장은 “현재는 진료기록을 제대로 작성하지 않는 것에 대한 행정 처분만 있을 뿐이다. 위험도가 높은, 반드시 기록해야 하는 진료기록을 구분하는 일이나 기록 작성과 보관에 관해 기관 책임을 강화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씨는 지난 5월 29일부터 천안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병원 행위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해왔다. 그러나 6월 9일 담당 마취과 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서씨는 1인 시위를 중단했다. 마취과 의사는 지유 부모 앞으로 A4용지 두 장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엔 “내 판단이 잘못 됐다. 모든 책임은 마취과 의사인 나에게 있다. 죽어서라도 사죄드린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서씨는 “지유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아 한동안 가족들과 필리핀에 머물렀다. 그런데 장소가 바뀐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더라”고 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병원은 여태 사과 한마디 없을 뿐 아니라, 지유의 죽음에 관해 그 어떤 설명도 없다”며 “병원을 상대로 뿐 만 아니라 진료기록의 법적 의무 강화 등 제도개선을 위해서도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9월 6일은 지유의 여덟 번째 생일입니다. 지유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제 2의의 지유가 나오지 않도록 열심히 투쟁할겁니다.” 서씨는 지유가 죽은 뒤 한 번도 손대지 않았던 수염을 자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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