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 화가 정우범 선화랑서 9월2일까지 '환타지아' 개인전...""지상천국 꽃들의 잔치 보러 오세요"""

기사승인 2014-08-23 11: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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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작가 정우범의

수채화 작가 정우범의


수채화 작가 정우범(68)은 물감을 넣고 빼는 작업을 반복한다.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반복이다. 작가는 물감을 캔버스에 칠하는(+) 것 외에도 미처 캔버스에 스며들지 못한 물감 위에 화장지를 얹거나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 물감을 더욱 묽게 하는 방식으로 물감을 뺀다(-). 이 작업을 수차례 반복하다보면 수채화지만 깊이가 있고 풍부한 색감이 나온다.

물감을 넣는 작업만 하면 미묘하고 풍부한 색감을 얻지 못한다. 캔버스가 물감을 받아먹는 것도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20일부터 9월 2일까지 개인전을 여는 작가는 터키의 야생화 정원에서 대자연의 신비함을 만나며 느낀 환희의 순간을 표현한 ‘판타지아’(Fantasia) 시리즈 등 30여점을 선보인다. 사계절을 그린 500호짜리 대작도 내걸었다.

2000년대 초 터키 수도 앙카라를 여행했을 때 케말파샤 광장 주변에 피어난 야생화를 보고 ‘바로 이거다’ 생각했다고 한다. 그곳에서 지상천국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 작가는 이후 지금까지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영국 러시아 불가리아 스페인 등을 여행하며 야생화 풍광을 찾아 나섰다. 지난 5월에는 발틱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의 야생화 단지를 여행했다.

그는 “판타지아 연작은 앞뒤도 없고 위아래도 없이 사방에서 그린 자유로운 그림”이라고 말했다. “수채화는 보통 대작이 힘들다고 하죠. 종이를 세워 놓고 그리면 물이 흐르니까 빨리 그려야 되고 그렇다보니 소품이 많아요. 하지만 뉘어 놓고 그리면 달라지죠. 어느 방향에서든 그릴 수 있으니까요.”

작가는 고급수채화용 종이를 물에 적신 뒤 거친 유화 붓을 짧게 잘라 만든 갈필붓 끝에 안료를 발라 툭툭 치면서 작업한다.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놓고 한두 시간씩 자리를 일부러 비우기도 한다. 물감이 자연스럽게 번지며 서로 스며드는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물감이 천착이 되고 자기네끼리 미묘한 혼합, 번짐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얼핏 보면 설악산 작가 김종학 화백의 그림을 닮은 듯하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그게 아니다. 두꺼운 아크릴물감이 칠해져 야생미가 넘치는 김종학 화백의 그림과 달리 이 그림은 스미듯 번지고, 엷은 듯 두꺼워 보이면서 정감이 묻어난다. 작가는 “5년 전쯤, 누군가 김종학 화백 얘기를 하는 걸 듣고, 그 그림을 봤는데,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대부분 수채화가 맑고 투명한 느낌의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우범의 수채화는 마치 유화를 쓴 것과 같이 색의 밀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변색되거나 탈색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신항섭 미술평론가는 “그의 수채화는 종이라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가벼움에서 벗어나고 있다. 수채화는 가벼운 그림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뜨리고 있다”고 평했다.

작가가 처음부터 잘 나간 건 아니었다. 40대 초반 광주교대부속 초등학교 교사직을 그만두고 “그림만 그리고 살겠다”고 선언한 뒤 5~6년간 골방 같은 작업실에서 붓질에만 몰두했다. 미대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화가들을 따라가려면 10~15시간 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간과의 싸움을 벌였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고 했던가.

1990년대 후반은 그의 인생이 가장 찬란했던 시기다. 국내화단의 독보적인 ‘수채화 작가’로 스타작가로 등극했고, 국내외 화랑들의 러브 콜도 잇따랐다. 선화랑과의 인연도 1997년에 시작됐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창실 회장이 직접 광주 작업실로 내려와 작품을 선정해 그해 곧바로 전시가 열렸다. 서울 유명화랑에서 전시는 날개를 달아줬다.

작가에게 찾아온 기회는 세 번이었다. 불안하고 암담했던 시기, 우연히 친구의 집에서 그의 그림을 봤다는 태권도 박사 이기정씨와의 인연이 첫 번째 기회였다. 이 박사와의 주선으로 미국 올랜도시티갤러리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됐다. 또 당시 금호재단 이강재 부이사장과의 만남은 그를 다시 한 번 광주미술계에 부각시키는 역할도 했다.

술자리에서 만난 이 이사장은 그의 그림을 본 후 푹 빠졌다. 당시 ‘금호문화’ 월간지에 나오는 표지 그림을 1년 동안 그리게 맡긴 것이다. 주위의 질시가 시작됐고, 그는 스타작가로 일약 도약했다. 최근에는 중국 대만 손문미술관에서 초대전 제의를 받았다. 그는 “최고의 후원자는 아내다. 아내가 없었으면 지금의 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웃었다(02-734-0458).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