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에도 불구하고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

기사승인 2014-04-23 13: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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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들, 단원고 조속한 정상화 위한 것



[쿠키 건강]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들이 세월호 침몰사건을 겪은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가 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전문가적 입장을 밝혔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과학회는 단원고 학생들에 대해 “슬픔에도 불구하고 학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23일 밝혔다.

학회는 이번 세월호 침몰사건 이후 단원고 학생 및 교사들이 처한 심리적 위기에 개입하기 위해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24일 단원고가 수업을 재개한다는 방침을 두고 일각에서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희생당했는데 수업이 중요하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수업 재개 결정을 내리는 것이 단원고 학부모나 학생들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소아청소년정신과학회는 “이는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오히려 아이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 수업을 재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학회는 “단원고의 수업 재개는 학생이나 학부모, 교육청이 바라던 것은 아니라 오히려 재난 심리 전문가들이 설득한 부분”이라며 “그것이 추가적인 희생을 막고, 아이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학회는 “저희들은 전문가 집단으로서 현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하고 있다”며 “여론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 메디포뉴스

다음은 대한소아청소년정신과학회가 23일 밝힌 보도자료 전문이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선 학교를 살려야합니다


단원고등학교의 조속한 정상화를 바라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들의 바람

지금 대한민국은 슬픔, 그 자체입니다. 속속 발견되는 희생자들의 시신에 우리는 무력감과 분노를 느낍니다. 하지만 슬픔에 빠져만 있다면 우리는 또 다른 위험을 키우고 있을지 모릅니다. 단원고 2학년 학생들 중 생존자들은 살아있음에 기뻐하기보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 3학년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리를 배회하고, 인터넷 공간을 헤매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희생된 아이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어른들은 많았지만, 남겨진 아이들 곁에서 격려하고 너희들이 안전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일각에서는 학교를 폐쇄하고, 무기한 수업을 연기하자는 말도 나옵니다. 너무나 무서운 말입니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또 다시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정신적 상처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위로할 공동체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일상을 회복하는 것인데 학교가 없다면 어디서 그런 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안타깝게도 대형 재난으로 생명을 잃은 후 자살로 소중한 생명을 추가로 잃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살 뿐 아니라 적잖은 생존자들이 심각한 정신적 외상에 시달려 인생의 많은 시간을 심리적 불구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생명들을 보냈기에 더 이상 살아있는 생명을 또 놓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아이들이 원래 있었던 곳, 있어야 할 곳에 다시 나와 여기에서 함께 치유를 시작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고통을 말할 수 있게 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게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너희와 함께 하겠다고 어른들이 약속해야 합니다. 함께 이 고통을 이겨나가자고 다짐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현재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100여 명이 자발적으로 단원고를 찾고 있습니다. 학교를 빨리 회복하고, 아이들의 추가적인 위험을 막기 위해 적극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한 가지입니다. 학교를 살리고, 아이들을 살리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극복해, 더 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희망을 만들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호소를 드립니다.

1. 학교는 하루 빨리 일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 회복과 치유의 장소로 학교만큼 좋은 곳은 없으며 학교 말고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단순히 수업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치유를 위해 학교가 필요합니다.

2. 교사가 심리적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합니다.

- 아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교사가 먼저 튼튼해져야 합니다. 교사들 또한 휴식이 필요한 사고 당사자라는 사실을 주지하여야 합니다. 죄책감 때문에 자신의 심리적인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고 인정하고 돌아보고 해결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3. 정규 수업에 앞서 심리적인 접근을 해야 합니다.

- 전문 인력을 배치하여 아이들의 정상적인 애도 반응을 돕고, 심리적인 과각성 상태를 진정시킬 수 있는 교육과 상담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희 회원들은 이를 위해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4. 집중관리 대상자를 선별하고 관리해야 합니다.

- 사고 생존자 아이들, 그리고 1학년과 3학년 아이들 중 사고의 실종자?사망자 아이들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가졌던 아이들과 같이 심리적 외상이 클 것으로 염려되는 학생들에 대한 선별이 필요합니다. 선별 후에는 상당기간 동안 일대일로 아이를 돌보며 긴밀하게 만날 필요가 있습니다.

5. 학교에 추가 인력을 배치해야 합니다.

- 관련 부서 및 교육청에서는 학교 보조 인력과 추가 교사를 하루 속히 파견해 주십시오. 이들이 있어야 교사들이 오직 아이들에게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교사가 아이 옆에 붙어 있어야 합니다. 학교가 안심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 아이들의 치유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6. 학교 내 추모공간을 아름답게 마련해야 합니다.

- 현재 학교는 추모의 글귀, 자원봉사자로 어수선합니다. 이런 상태를 정리하고 대신 아이들이 마음껏 슬퍼하고 친구들을 그리워할 수 있도록 학교 내 가장 소중한 곳에 추모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7. 어른들이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 부모들 역시 가정에서 아이들을 돕고, 위험 상황을 감지하기 위한 방법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교육은 현재 생존자 아이의 부모를 대상으로 먼저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학교 전체 부모를 대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201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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