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甲甲한 남양유업, 대리점보다 대국민 사과 서두르는 이유

기사승인 2013-05-09 0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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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甲甲한 남양유업, 대리점보다 대국민 사과 서두르는 이유

[친절한 쿡기자] 요즘 우리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가장 핫한 키워드는 바로 ‘갑(甲)의 횡포’입니다. 포스코에너지 ‘라면 상무’, 프라임베이커리 ‘빵회장’에 이어 남양유업 사건까지. 공교롭게도 ‘갑의 횡포’라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그런데, 같은 갑의 횡포지만 대중의 ‘분노 게이지’는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대부분 동의하시리라 예상됩니다만, 남양유업 사건의 대중적 공분이 나머지 두 사건보다 훨씬 크죠.

소셜분석서비스 펄스K에 세 사건에 대한 소셜 반응 모니터링을 의뢰해봤습니다.

지난달 17일부터 5월 7일까지 트위터 언급 누적량은 ‘남양유업’이 1만394건, ‘포스코에너지’가 1만235건, ‘프라임베이커리’가 1916건이었습니다. ‘남양유업’과 ‘포스코에너지’가 비슷한 양이지만, ‘포스코에너지’는 지난달 20일쯤 사건이 터져 꾸준히 언급돼 온 진짜 3주 간의 누적 언급량이고, 지난 4일 국민일보 쿠키뉴스의 최초 보도로 화제가 되기 시작한 ‘남양유업’은 사실상 누적일이 4~5일에 불과한 언급량입니다.

왜 우리는 남양유업에 더 ‘열불’이 나는겁니까?

몇몇 전문가·지식인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가장 많이 고개를 끄덕거리게 한두 가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나도 응징할 수 있다

바로 대중들이 실질적인 응징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남양유업 사건이 가지고 있는 특징입니다. 이 점이 대중을 더욱 끌어당겼다는 겁니다.

포스코에너지 사건을 접한 후 대중들은 여러 형태의 비난을 가하면서 같은 약자 처지에 공감을 표출합니다. 그냥 욕하고, 트위터에 부정적 멘션 쏟아내고, 기사에 악성댓글 달고, 포스코에너지 홈페이지 들어가서 항의하고…. 이 정도 외에 뭐가 있을까요? 물론 절대 해선 안 되는 것이지만 신상털기 정도?

하지만 남양유업은 이 이상이 가능합니다. 바로 불매 운동이죠. 집 앞 마트만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남양유업의 우유와 커피 제품들. 이렇게 항상 자신과 가까이 있는 존재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행위를 저질렀고, 나도 마냥 앉아 욕만 하는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징계할 수 있는 뭔가’에 나설 수 있다는 자극이 작용한 건 아닐까요.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포스코에너지 사건을 보고 대중들이 공감은 하겠지만 그 이상 뭘 어떻게 하겠나. 철이나 신재생에너지를 불매운동이라도 하겠나”라며 “갑보다 을이 절대적으로 많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세상에서 공감을 넘어 어떤 연대와 실천까지 가능해진다면 대중은 더욱 적극적이 된다. 그 연대와 실천이 바로 불매운동이고, 남양유업은 업계에서 절대적인 갑이면서 대중들이 주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그것에 딱 들어맞는 대상이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펄스K 조사에서 ‘남양유업’의 ‘이슈 키워드 1위(가장 많이 언급된 관련 단어)’는 바로 ‘불매 운동’이었습니다. 그럼 ‘포스코에너지’는? ‘임원’이었습니다.

'횡포'라기보다는 '진상'

전부 ‘갑의 횡포’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건 자체가 다른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진정한 갑의 횡포는 남양유업 사건이 유일하다는 거죠.

사실 포스코에너지 ‘라면 상무’와 항공사 승무원, 프라임베이커리 ‘빵회장’과 호텔 지배인은 ‘윗사람의 지배나 지휘에 매여 있는’ 예속(隸屬) 관계라고 볼 수 없습니다.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일 뿐이죠. 달리 표현해본다면 일시적·순간적 갑을 관계라는 겁니다. 하지만 남양유업대리점은 엄연히 남양유업에 예속돼 있습니다. 지속적 갑을 관계인거죠.

흔히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진상 부린다(혹은 피운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겉보기에 허름하고 질이 나쁜 물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진상(進上)’을 빗대어 쓰는 표현일텐데요. 따지고 보면 앞선 두 사건은 ‘갑의 횡포’라기 보다는 ‘갑의 진상’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 있겠습니다.

이와 달리 남양유업 사건은 ‘윗사람의 지배나 지휘에 매여 있는’ 예속 구조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해 온 일이고, 이건 곧 우리 대다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앞선 두 사건을 보면 그저 ‘으이그’하면서 혀를 끌끌 차게 되지만, 남양유업 사건을 보면 ‘이거 웬지 내 얘기 같다’며 폭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포스코에너지 사건은 사실 당사자가 갑으로 불릴만한 인물이었을 뿐 개인 대 개인의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갑의 횡포’라기 보다는 대기업 임원에 의해 벌어진 ‘불미스런 일’”이라며 “여기에 항공사 측의 고객정보 유출을 두고 논란까지 있었다. 대기업 임원을 향한 비난 일색이 아니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트위터 ‘감성 분석(특정 단어 분석을 통한 긍정·부정 멘션 감별)’에서 ‘부정’의 점유율이 ‘남양유업’ 84%, ‘포스코에너지’ 61%로 나온 펄스K 조사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써놓고 보니, 우리가 남양유업에 더 많이 화가 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네요.

오늘 남양유업 ‘대국민 사과’한다는 날입니다. 근데 이상하네요. 자기들이 눈물 쏟게 만든 건 대리점주들인데 왜 ‘대대리점주 사과’가 아니라 ‘대국민 사과’를 합니까. 대리점주들도 결국 국민이니까 ‘퉁’치자는 건가요? 아님 지금도 남양유업 경영진의 머릿속에는 진심으로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 대리점주들과 대등한 파트너 관계를 구축하려
하기보다는, 국민(소비자)이 매출을 떨어뜨리지 않을까하는 우려에 잠깐 달래보겠다는 마음이 더 앞서 있는 것은 아닐까요?

국민일보 쿠키뉴스 김현섭 기자 afer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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