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그 후①] “이름만 들어도 덜덜” 졸업해도 봐야하는 가해자 얼굴

기사승인 2016-02-22 10:5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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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학생들은 소년법으로 보호하고, 피해학생은 어느 법으로 보호합니까”

1년 전 늦은 밤 사무실에 홀로 앉아 한 학교폭력 피해학생의 부모님이 법원에 낸 탄원서를 읽던 중 이 한 마디에서 눈길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이 한 마디로 인해 특별기획 ‘학교폭력 그 후’가 시작됐습니다.

학교폭력 가해학생들은 처벌을 받습니다. 짧으면 며칠, 길어봐야 6개월~1년인 출석 정지· 전학 조치·보호 관찰 등 입니다. 이상하게 피해학생들도 ‘처벌’을 받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하게도 가해학생들의 그것보다 지독합니다. 가해학생의 처벌은 정해진 기간이 되면 끝나지만 피해학생의 상처는 언제 아물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해학생의 처벌이 끝나면 관심도 사라지지만 피해학생의 눈물은 언제 그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재민이, 영훈이, 가영이(가명)의 사연을 통해 국내 학교폭력 대책의 시선이 엉뚱한 곳에 가 있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지 짚어 봅니다. <편집자 주>


[쿠키뉴스=정진용 기자] #. 재민이(가명·18)는 밤 11시에 잠이 들어 다음날 정오까지 하루의 절반 이상 잠을 잔다. 수면장애로 인해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약과 신경안정제도 먹는다. 주중에는 두세 번 피해자 상담소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다.

재민이는 학교폭력 피해자다. 두 살 어린 동급생들과 중학교에 다니던 경계성 지능아(자폐성 3급) 재민이는 2014년 5월부터 7월까지 지속적으로 학교폭력을 당했다. 가해 학생들은 점심시간 뒤 사물놀이 연습을 위해 5층 음악실로 올라가던 재민이를 강제로 붙잡아 의자에 앉히고 대걸레로 ‘주리(周牢)’를 틀거나 교실에서 책상에 엎어놓고 허리와 등을 마구 때렸다.

춤추던 재민이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이로 인해 재민이는 더는 허리에 힘을 줄 수 없게 됐다. 파트너를 지탱할 힘이 없어 스포츠 댄스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이 날아갔다. 하루에 여덟 시간씩 연습하며 중등부 아마추어 1·2등을 다툴 정도로 좋아하던 스포츠 댄스였다. 이제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파트너와 춤을 추는 재민이의 모습은 거실에 덩그러니 걸린 액자 속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재민이는 지난해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까지 했다.

재민이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가해자 4명과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재민이가 이름만 들어도 목이 뻣뻣하게 굳는다는 가해 학생 A군(16)은 지금도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다행히 반은 다르지만 오다가다 마주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예비소집일에 재민이는 A군을 보고 오줌을 지렸다. 재민이는 “화가 나요. (A군과) 같은 학교에 있다는 것 자체가…”라며 고개를 떨궜다.

학교 측 “별다른 외상없어 전학처분 과해…장애 학생 기준으로 판단 안 했다”

장애가 있는 친구 1명을 여러 명이 지속적으로 폭행해 피해자가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는데도 왜 아직도 피해자는 가해자와 함께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는 걸까.

교내에서 열린 학교폭력자치대책위원회(학폭위)에서 가해 학생에 대한 ‘전학처분’은 과하다는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재민이의 엄마는 2014년에 열린 1,2차 학폭위에서 재민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가해학생 A군의 전학과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전문의료기관 진단 및 심리치료를 요구했다. 그러나 A군에게 내려진 가장 높은 수준의 징계는 ‘출석정지 5일’ 이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S 중학교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학폭위에서 전학조치가 내려져야지만 분리배정을 할 수 있으며 교장은 학폭위의 결정을 시정하거나 번복할 수 없다”며 “당시 학교폭력이 발생한 지 1개월 뒤에야 학폭위가 열려서 증거도 없었고, 재민이도 별다른 외상이 없어서 전학 처분은 과하다는 의견이 모였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재민이 사례에는 현 학폭위 제도의 ‘허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어 관계자는 “학폭위가 열릴 당시는 재민이가 장애인 판정을 받기 전이었고 특수 학급이 아닌 일반 학급에 있었기 때문에 장애 학생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학교전담경찰, 1년에 1번 만나고 ‘멘토링?’

학교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었던 재민이 엄마는 학교전담경찰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학교전담경찰관(School Police Officer, SPO)은 학교폭력 예방과 사후 관리 업무를 전담하는 경찰관이다. 정부는 학교폭력 발생 이후 전담 경찰이 일대일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통해 피해학생의 2차 피해를 방지한다고 홍보한다. 상반기 하반기를 나눠 ‘베스트 학교전담경찰관’도 선정하고 있다.

재민이를 담당한 전담 경찰은 “매달 2번씩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뿐 아니라 인수인계 할 때에도 재민이 얘기를 먼저 하는 등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말과 달리 업무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 취재 결과 전담 경찰은 피해 아동과 학부모에게 피해자 치유 프로그램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전담 경찰은 재민이 어머니 윤모(48)씨에게 피해 학생 치유 프로그램이 있다고 소개했다. 가해학생과 함께 어울려서 놀이를 통해 치유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재민이 어머니는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지만 그 뒤로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

상담 횟수도 실제로는 1년 동안 단 3번에 그쳤다. 3번 중 전담 경찰이 재민이를 만나 학교생활에 관해 물은 것은 단 1번에 불과했다.

재민이의 특수반 담임선생님은 “1학기에 2번, 그리고 2학기에 1번 전담 경찰과 만났으며 처음에만 30분 정도 하다가 나중에는 10~15분 정도 만났다”고 설명했다. 재민이는 심지어 전담경찰을 ‘무섭다’고 표현했다.

이는 비단 개인뿐만이 아니라 제도의 문제이기도 하다.

전담 경찰 제도는 경찰 1인당 평균 10개교 이상을 맡고 있어 인력부족과 잦은 인사이동이 꾸준히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지난해 7월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12년 193명에서 시작해 2015년 정원이 1138명까지 늘어났으나 여전히 평균적으로 1인당 약 10개교를 맡는다. 일산경찰서의 경우 평균 18~19개교를 담당한다.

해당 전담 경찰은 “피해 학생 치유프로그램에 치료, 상담이 있는데 재민이의 경우 병원 치료를 진행하고 있어서 경찰은 일단 상담부터 진행한 것”이며 “이를 따로 어머니에게 설명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잘 다니고 있느냐’ ‘괴롭히는 애는 없느냐’고 물어봤지만 아이가 부담스러워하고 말을 잘 안 하기에 선생님과 상담했다”고 설명했다.

일산경찰서 측은 전담경찰이 1년 사이 3번 바뀐 것에 대해서는 “경찰 특성상 인사이동이 1년에 2번 있는데다가 인력이 충원되는 과정에서 담당자가 변경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jjy4791@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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