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우리 또 반짝 열광할까” 박태환의 쓸쓸한 金 물살

기사승인 2014-08-25 14: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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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쿡기자] “우리 또 반짝 열광할까” 박태환의 쓸쓸한 金 물살

[친절한 쿡기자] 지난 23일 박태환(25·인천시청) 경기 다들 보셨나요? 호주에서 열린 2014 팬퍼시픽수영선수권대회 말입니다. 박태환이 주종목인 자유형 400m에서 또 한번 일을 냈습니다.

경기 시작 후 서서히 속도를 올리던 박태환은 중반쯤부터 선두로 치고나갔습니다. 점점 다른 선수들과의 거리를 벌리며 앞서갔지요. 결승지점에서는 몸 하나 정도 차이가 날 정도였습니다. 3분43초15 기록. 압도적인 기량차를 보여줬습니다.

2006년과 2010년에 이어 이 대회 3연패를 달성했습니다. 국제수영연맹(FINA) 공인 올시즌 세계랭킹 1위 기록이기도 합니다. “마린보이가 돌아왔다!” 절로 물개박수가 나오더군요.

그런데 대회가 열린지도 몰랐다고요?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만 어렴풋이 들은 것 같다고요? 그럴 만도 합니다. 국내에선 중계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승을 했다는 경기결과만 전해졌지요.

25일 인터넷에는 일본에 사는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이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 네티즌은 “(일본에서) 중계방송을 시청했는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키타지마 코우스케가 해설을 맡았다”며 “경기엔 일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하기노 코스케가 출전했지만 (해설진은) 온통 박태환 얘기뿐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따 기쁘면서도 씁쓸하다”고 했습니다. “이런 선수를 두고 한국 수영계는 도대체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요. “외국 나오면 애국심이 커진다는데 오히려 대한민국이 싫어진다”는 말로 글을 마쳤습니다. 네티즌들은 줄줄이 댓글을 달며 공감했습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의 박태환 출전경기는 지상파 3사가 앞 다퉈 중계에 나섭니다. 며칠 전부터 예고가 쏟아지죠. “박태환의 금빛 질주를 기대해 달라”며 홍보영상도 줄기차게 나옵니다. 결승전은 물론 예선경기부터 중계합니다.

반짝 관심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수영뿐 아니라 모든 비인기종목에 해당하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큰 규모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은 늘 같은 소감을 말합니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달라.” 카메라를 앞에 두고 호소하지요.

박태환은 현재 후원사도 없이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 1년간 박태환을 후원했던 SJR기획과의 계약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30일부터 진행된 마이클 볼 코치와의 호주 전지훈련도 자비를 들여 했습니다. 아시안게임보다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후원하기를
원하는 대기업들은 박태환 후원을 주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박태환은 쓸쓸히 물살을 갈라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에게 또 다른 금메달을 얘기합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박태환을 검색해보면 “인천행 금(金)물살 탔다” “AG 금메달은 떼놓은 당상” “AG 다관왕 보인다”는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집니다. 마치 “이번에도 역시 잘했구나. 근데 우리가 원하는 건 아시안게임 메달이야”라고 얘기하는 듯 합니다.

박태환은 다음달 21일 자유형 200m를 시작으로 아시안게임에 나섭니다. 개인종목은 자유형 100m·200m·400m·1500m 4개 종목에, 단체전에서는 계영 400m와 800m, 혼계영 400m에 출전합니다. 한 달 후쯤 대한민국은 마린보이 열풍으로 들썩이겠죠. 그런데 대회가 끝나고 한 달 후쯤엔 또 어떨까요.

박태환은 리우올림픽까지 도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의 네 번째 올림픽 도전이 됩니다. 수년간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안겼던 그의 마지막 도전은 쓸쓸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기사모아보기